편안해서 더 무서운 '재심'의 악덕경찰..한재영의 다짐(인터뷰)

영화 '재심'의 배우 한재영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3.0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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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재영 / 사진=홍봉진 기자


한재영(39)는 '재심'을 봐야 발견할 수 있는 배우다. '재심'은 목격자가 범인이 되어버린 2000년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바탕이다. 억울하게 감방살이를 했던 현우(강하늘 분), 그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재심을 준비하는 변호사 준영(정우 분). 그리고 영화관 객석에 앉아서야 확인할 수 있는 한재영의 형사 백철기가 있다. 비중으로 따지면 3번째, 캐릭터로 따지면 가장 강렬한 악역이다. 한재영으로서도 스크린에서 맡은 가장 묵직한 배역이었다.

"제 몫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코미디라면 악역을 해도 좀 귀엽게 봐주실 여지가 있죠. 이건 장르가 다르니까요. 하지만 악역이라고 막 고문을 하면 안된다고 봤어요. 만약 백철기를 잘못 하면 이 영화도 이상해질 수 있다고요. 제대로 하지 않으면 준영이나 현우의 관계들에 믿음이 가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가 연기한 백쳘기는 무고한 10대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무지막지한 인물이다. 경찰서도 아닌 허름한 여관방에서 고문 비슷한 강압수사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겁에 질린 소년의 심정이 절로 이해가 될 정도다. 오죽하면 '변호인'에서 곽도원이 맡았던 차동영이 떠오른다는 평까지 나왔을까. 따져보면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확신이라도 있었던 차동영과 달리 '재심' 속 한재영의 백철기는 변호해 줄 거리조차 없는 악역이다. 현우 역 강하늘에게 거침없이 손찌검을 하는 장면에선 기가 질릴 정도지만 "과장된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한재영은 "사실적으로, 도리어 편안하게 연기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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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재영 / 사진=홍봉진 기자


"오히려 그 상황에서 주도권이 제게 있으니까 편하게 하면 더 살벌하게 느껴질거라 생각했어요. 하늘이는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제대로 때려서 테이크가 많이 가지는 않았어요. NG는 거의 나지 않았고요. 하늘이는 하늘이의 연기를 하고, 저는 언제 때릴지 이야기도 하지 않은 상태였죠. 아무리 의식을 안 해도 사람이 타이밍을 알면 맞을 준비를 하게 돼 있거든요. 또 가만히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뭔가가 날아와야 무섭잖아요. 실제로도 그렇게 할 것 같았어요. 느닷없이. 그게 조금 맞아들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야 빛을 봤지만, 한재영은 25살 처음 연극을 시작해 꾸준히 무대와 스크린을 오간 잔뼈 굵은 배우다. 2003년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시작으로 '말죽거리 잔혹사', '썸', '친구2', '황제를 위하여', '강남 1970', '검사외전', '좋아해줘', '사냥' 등에 출연했다. 거친 상남자 캐릭터를 거푸 맡았지만 드디어 마주한 한재영은 한결 편안하고 부드러운 인상이다. 연극 무대에 설 시절엔 자상하고 부드러운 캐릭터들을 훨씬 자주 했단다.

하지만 스크린에 진출한 중견들에겐 거친 조폭이 통과의례나 다름없는 캐릭터다. 특히 한재영에겐 의리와 낭만이 있던 그 시절 조폭으로 분했던 '강남 1970'이 새로운 기회가 됐다. 6~7회차 등장하는 작은 역할을 맡았다가 점점 배역이 커지며 20회차 나오는 중간 보스가 됐고, 실감나는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현 소속사에서 황정민, 강하늘, 박정민, 정상훈 등과 한솥밥을 먹게 된 것도 그 이후였다. 오랜만에 나타난 남성미 엄치는 새 얼굴에 충무로도 반색했다. 이후 한재영은 쉴 새 없이 달렸렸고 '재심'으로 뜨겁게 주목받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스크린에 나온 제 모습이 실망스러웠단다.

"제가 봤을 땐 조금 나사가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 하는 데만 정신이 빠져서 실제론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년 동안 내가 뭐 했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치열함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한 5개월을 쉬었어요. 그래고 '재심'에 임했죠…. '재심'으로 알아봐주시는 분도 많아졌는데, 사실 저는 많이 실망했어요. 제가 생각하고 느낀 감정이 스크린에는 제대로 안 나오더라고요. 내가 했는데 왜 안 나왔을까, 이래가지고 뭘 하겟나, 아직 멀었구나. 선수들이 보시면 고만고만하게 생각하실 거예요. 이번 작품으로 많이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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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재영 / 사진=홍봉진 기자


이 만족을 모르는 배우는 시사회 뒷풀이에 왔던 송강호가 칭찬을 했다는 일화, '변호인' 곽도원이 떠오르더라는 평가에 휘휘 손사래를 쳤다. 남들이 이야기해주기 전엔 생각조차 안 했던 비교 포인트였다고. 사실 '재심'은 공분을 샀던 실화가 바탕이란 점에서 주목받았던 작품이지만 한재영은 어떤 사건도, 어떤 사람도 떠올리지 않고 그저 시나리오에 집중해 연기를 펼쳤다. 실화도 굳이 의식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비교해 주신 것이 감사하고 황송할 뿐이에요. 존경하는 배우고 또 대단한 배우시잖아요. 지금 돌이켜보니 그래도 가장 잘했다 싶은 게 아무 것도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상적인 캐릭터가 있으면 아무래도 그걸 머리 속에 담게 되잖아요. 연기할 때도 의식하게 되고요. 그런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았어요. 사람이 단순하니 그렇겠죠?(웃음)"

최근 다음 영화 '대립군' 촬영을 마친 한재영은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로도 시청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그 다음, 또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 고민되고 무섭기도 하다"는 한재영은 연기를 하는 모든 순간 순간 꼭 지키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데 덜 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아요. 내 능력이 그것밖에 안 돼서 어쩔 수 없다면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 후회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서 연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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