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진땀나는 1인칭 스릴러..누구도 믿지마라①

[리뷰]'해빙'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2.2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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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해빙' 스틸컷


영화 '해빙'(감독 이수연)은 비밀 하나쯤 감추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떤 비밀은 마취제에 취해 웅얼거릴 때나 드러난다. 뜻하지 않게 끔찍한 비밀을 들은 남자는 진땀 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강남에 차렸던 병원이 도산하고 아내와도 이혼한 의사 승훈(조진웅 분)은 신도시 변두리에 있는 선배의 병원에 취직한다. 한때 미제 연쇄살인사건으로 악명을 떨쳤던 곳이다. 정육식당 건물에 세 들어 혼자 살던 승훈은 집주인 성근(김대명 분)의 아버지 정노인(신구 분)에게 수면내시경 시술을 하다 마취가 덜 풀린 노인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팔다리는 한남대교에, 몸통은 동호대교에, 머리는 아직 냉장고 안에…." 치매에 걸린 노인은 아무 것도 기억 못하는 눈치지만, 승훈은 그 소리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정육식당에 놓인 수상한 검정 비닐봉지에도 자꾸 눈길이 간다. 아버지를 챙겨줘 고맙다며 친절하게 구는 성근도 어딘지 꺼림칙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의심만 키워가며 지내던 어느 날, 인근에서 머리 없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설상가상 승훈을 찾아왔던 전부인이 실종된다. 승훈은 미칠 지경이 된다.


'4인용 식탁'의 이수연 감독은 한강의 얼음이 녹을 때 가장 많은 시신이 떠오른다는 한강 관리인의 이야기, 그리고 '수면내시경을 하면 안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해빙'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취가 덜 깬 가수면상태에서 저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 사람들 중 하나가 살인을 고백한다면 어떨까' 섬뜩한 상상에서 출발해 시나리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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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해빙' 스틸컷


'해빙'은 홀로 그 고백을 듣고 만 승훈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심리 스릴러다. 긴박한 추격전을 흔히 담는 여느 연쇄살인마 스릴러와는 완전히 전개가 다르다. 자극과 공포는 승훈의 상상 때문에 강도가 더해진다. 하지만 그의 시선에 포착된 연쇄살인마는 제가 뭘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치매 노인이며,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나다시피 변방에 흘러 온 신세다. 문제의 노인은 새로 만난 이웃인데다, 딱히 증거도 없다. 누구도 믿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가위에나 눌리는 사이 그의 말 못할 공포심은 계속 커져간다. 그 진땀나는 긴장과 불쾌감이 승훈을, 영화를 스멀스멀 지배한다.


중반부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막바지에 이르면 추격 스릴러가 안기는 짜릿한 쾌감과는 전혀 다른 서스펜스를 맛볼 수 있다. 승훈의 시선으로 차곡차곡 쌓은 복선들이 일거에 풀린다. 이런 장르의 작품들이 흔히 남겨두는 해석의 여지를 말끔히 해소한 꽉 닫힌 결말이 되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단순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건 영화 곳곳에 담긴 단서들, 그리고 아슬아슬한 늬앙스를 세심하게 그려낸 배우들이다. 무심히 드러나는 망해버린 중산층과 그들의 허세, 논밭 너머 아무 것도 없는 땅에 멀뚱히 올라가는 고층아파트는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은 대한민국의 병폐를 슬그머니 드러내 보인다.

배우들은 그간의 이미지를 훌륭히 역이용한다. 남성미 넘치는 거친 캐릭터에서 벗어나 예민하고도 무력한 의사가 된 조진웅은 멱살잡이 하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축이다. 믿을 수 없는 부자로 분한 신구와 김대명은 그간의 친숙한 이미지를 한 방에 날린다. 착하고 똘똘한 아가씨 역을 즐겨 맡던 이청아 또한 돋보인다.

'해빙'은 얼었던 한강이 슬슬 녹는 시기 개봉한다. 진땀나는 여름날 개봉했다면 좀 더 무서웠을 것 같다.

3월 1일 개봉. 러닝타임 117분. 15세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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