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인성甲' 노장 어틀리..다저스 재계약 효과

장윤호 기자 / 입력 : 2017.02.17 08:10 / 조회 : 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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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틀리./AFPBBNews=뉴스1


LA 다저스가 올해 만 38세가 된 노장 2루수 체이스 어틀리와 이번 주 연봉 200만달러에 1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이번 오프시즌 동안 다저스가 선수 계약에 투입한 액수의 합계가 2억달러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냥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도 되는 뉴스처럼 들린다. 오히려 어떻게 생각하면 “커리어가 거의 끝나가는 선수를 왜 200만달러나 주고 붙잡았을까” 라는 생각까지 드는 계약이다.

다저스는 이번 오프시즌 내내 2루수 보강을 위해 노력했고 미네소타 트윈스로부터 브라이언 도져를 영입하는데 실패한 뒤 탬파베이 레이스에 특급 유망주 투수인 호세 데 레온을 내주고 로건 포사이드를 데려왔다. 확실한 2루수 주전을 확보한 것이다. 여기에 백업요원 겸 유틸리티 플레이어로는 키케 에르난데스가 있다. 한 마디로 굳이 어틀리를 붙잡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가 들어오면 나중에 25인 로스터를 결정할 때 고민거리가 하나 늘어날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 다저스는 오프시즌 내내 어틀리와 꾸준한 연락관계를 유지했고 결국 스프링캠프 개막을 앞두고 그와 재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그의 계약 소식이 전해지자 다저스 스프링캠프인 애리조나 글렌데일의 캐멀백 랜치에선 바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모두 입을 모아 구단 수뇌부가 어틀리를 붙잡은 결단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어틀리가 올 시즌 ‘벤치 워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경기력과 무관하게 어틀리의 존재감과 팀 내 역할에 대해 선수와 구단이 모두 최상의 평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저스의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는 “그가 경기를 잘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클럽하우스에서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내가 본 것 중 단연 최고”라고 어틀리의 복귀를 반겼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아들이 있다면 체이스(어틀리)가 경기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고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철저하게 자신보다 팀을 앞세우는 플레이를 하며 승리를 위해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그를 구단과 동료들이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를 알 수 있는 예다.

어틀리가 과연 어떤 선수인지를 말해주는 예로 최근 화제가 된 스토리가 있었다. ESPN과 MLB닷컴에서 메이저리그 전문가로 활약하는 피터 개몬스는 최근 MLB닷컴에 다저스 코치들로부터 들었다면서 어틀리에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다. 스토리에 따르면 다저스가 큰 점수 차로 앞서가던 경기의 8회초 공격에서 다저스의 한 젊은 선수가 2루를 훔쳤다. 그 다음 이닝 다저스 공격 때 타석에 들어선 어틀리는 상대 포수에게 “내 몸통에 빠른 볼을 던지라고 투수에게 전해라. 이렇게 해서라도 동료들에게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을 할 경우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지를 이해하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속 90마일(145km)을 상회하는 메이저리그 투수의 강속구를 상대방에게 부탁해서 얻어맞겠다고 나섰다는 이 일화는 즉각 화제가 됐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틀리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선수”라고 입을 모았다. 그만큼 어틀리의 인성에 대해 모두가 인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을까. 다저스의 스태프 중 한 명인 존 와이즈만은 이 스토리가 일어난 경기가 어떤 경기였는지를 찾기 위해 팀 기록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어틀리가 다저스 소속으로 나온 경기에서 몸 맞는 볼을 기록했던 모든 경기 기록을 찾아봤다. 하지만 그는 개몬스의 스토리로 추정되는 순간을 찾을 수 없었다. 베이스볼-레퍼런스닷컴은 지난해 다저스가 8회에 도루를 시도한 경우가 단 두 번뿐이었고 두 번 모두 압도적인 리드가 아닌 2점차 리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또 어틀리가 다저스가 리드를 잡은 경기에서 7회 이후에 투수 공에 맞은 경우도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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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몬스의 스토리에 어틀리가 상대 투수의 공에 맞았다는 말은 없다. 단지 상대에게 자신에게 공을 던지라고 요청했다는 것뿐이다. 이에 따라 와이즈만은 “아마도 상대팀이 어틀리의 요청을 듣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에게 공을 던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또 이 장면이 정규시즌이 아닌 스프링 트레이닝 경기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개몬스가 소개한 어틀리에 관한 일화는 또 하나가 있었다. 한 경기에서 주심은 다저스 선발 커쇼의 투구에 대해 지나치게 ‘짠물’ 판정을 이어갔다. 지독하게 스트라이크를 잡아주지 않자 포수 A. J. 엘리스는 이닝 교대 후 덕아웃으로 돌아가며 주심에게 큰 소리로 항의했고 어틀리는 곧바로 엘리스에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하지 말라고 만류하고 자신이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바로 배트보이의 헬멧을 빌려 쓰고 재킷까지 얻어 입은 뒤 새 야구공을 들고 주심에게 전달하러 나갔다. 주심이 그를 알아보고 사유를 묻자 그는 “누구도 배트보이가 나인 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라면서 “공개적으로 항의해 당신을 망신시키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하기 위해 나왔다. 커쇼의 투구에 대해 너무 짜게 하지 말고 스트라이크를 불러 달라”고 요청한 뒤 야구공을 전해주고 보통 배트보이처럼 덕아웃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 스토리 역시 실제 일어났던 일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 두 스토리가 실화인지 여부를 떠나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틀리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에서 어틀리의 단면을 이해할 수 있다. 개몬스에 따르면 커쇼를 비롯, 코리 시거, 저스틴 터너, 리치 힐 등 많은 다저스 선수들이 프론트 오피스에 어틀리와 재계약을 해줄 것을 로비했다고 한다. 또한 앤드루 프리드먼 사장과 파한 자이디 단장 역시 어틀리의 인격과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던 차에 선수들과 스태프들의 요청까지 들어오자 결국 그와 재계약 결단을 내렸다.

어틀리는 지난해 사실상 다저스의 주전 2루수 겸 1번타자로 나서면서 총 138경기에서 타율 0.252, 14홈런, 52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엔 뜨겁게 출발했지만 후반기엔 체력 저하 조짐을 보이면서 성적이 많이 떨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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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오프시즌을 통해 다저스 프론트 오피스가 선수들로부터 확실하게 신뢰를 얻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동안 다저스 선수들은 오프시즌 때마다 클럽하우스 내에서 모두가 좋아하는 선수가 트레이드되고 키 플레이어가 재계약을 오퍼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통계와 분석만을 앞세우고 클럽하우스내의 정서를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았던 프리드먼 사장과 자이디 단장 등 수뇌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여 왔었다. 당장 우승에 도전하기보다는 팜시스템을 향상시키는데 더 주력하는 것 같다는 불평도 있었다. 심지어는 프리드먼이 선택한 데이브 로버츠 감독에 대해서도 선수들은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고 한다. 확실하게 선수들 편에 서 있던 전임 돈 메팅리 감독을 내보내고 허수아비를 감독으로 앉힌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지난 시즌 확실하게 선수들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고 프론트 오피스는 이번 오프시즌에 선수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고 구단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다저스는 이번 오프시즌 2억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해 팀의 주요선수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시 붙잡아 선수들에게 구단이 미래가 아니라 당장 올해에 우승을 향해 올인했음을 보여줬다. 여기에서 어틀리처럼 클럽하우스 내에서 조용한 리더이자 롤 모델 격인 선수를 다시 불러오면서 선수들의 감정과 팀 문화에도 둔감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번 오프시즌 FA로 나섰던 잰슨과 터너는 모두 타 구단으로부터 다저스의 오퍼보다 더 큰 액수를 제시받았음에도 다저스에 돌아오는 것을 선택했다. 어틀리 역시 200만달러의 다저스 오퍼보다 더 많은 돈을 제시한 구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돈을 조금 덜 받더라도 다저스로 돌아오는 쪽을 선택했다. 선수들이 클럽하우스에서 하나로 뭉쳐 있고 팀이 우승으로 가는 코스에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팬그래프닷컴은 다저스가 올 시즌 최다승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고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의 PECOTA 예측시스템은 다저스의 올 시즌 예상 승수를 99승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런 통계 수치보다 다저스 선수들의 움직임과 분위기에서 이번 시즌이 다저스 팬들에게 뭔가 특별한 시즌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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