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그래서 감독은 독해야 한다"..'다른 길이 있다' 논란에 부쳐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1.24 11:20
  • 글자크기조절
image
정지영 감독, 다른 길이 있다 포스터/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2012년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남영동 1985' 개봉을 앞두고 정지영 감독과 인터뷰를 했다. '남영동1985'는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9월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고문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당시 대선을 코앞에 둔 11월22일 개봉했다.

'남영동 1985'는 고문의 강도를 더해가며 관객을 현장으로 몰아간 영화다. 관객을 고문에 동참시켰다. 김근태 역을 맡은 박원상이 실제 고문을 체험해가며 연기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샀다. 고문을 체험하며 연기한 배우의 열정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자자했다. 영화의 목적과 개봉 시점, 의미 등등이 더해져 박원상의 열정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가 그득했다.


하지만 실제 고문을 체험하며 연기를 했다는 건, 결국 배우의 열정과 목숨을 담보로 영화를 찍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에게 그대로 물었다. 질문을 듣던 정지영 감독은 기자에게 얼굴을 스윽 가까이 댔다. 눈을 마주치며 "그래서 영화감독은 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영동 1985'에선 고문기술자 역의 이경영이 박원상에게 고춧가루를 탄 물로 물고문을 하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담았다. 37초 분량이다. 37초 동안 박원상에게 물고문을 하는 장면을 끊지 않고 찍었다는 뜻이다. 정지영 감독은 그 장면을 세 번 찍었다고 했다.

감독은 독해야 한다는 말은, 오랜 현장의 경험을 담은 말인 것 같았다. 현장을 장악하는 힘을 뜻하는 말 같았다. 작가로서 자의식을 담은 말인 것 같기도 했다. 고난을 체험하고, 고난에 동화돼야, 고난을 그릴 수 있다는 예술가로서의 자의식.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남영동 1985'가 지닌 의미에 공감했기에, 별도로 문제는 삼지 않았다. 인터뷰에 녹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문제를 삼았어야 했다. 정지영 감독의 이야기를 다시 꺼낸 건, 최근 불거진 '다른 길이 있다' 연탄가스 흡입 논란 때문이다. 촬영 중 안전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다른 길이 있다'는 '피터팬의 공식' 조창호 감독이 어렵게 내놓은 영화다. 힘든 삶을 지우려 동반자살을 하려는 남녀의 이야기다. 주연배우 서예지가 촬영 도중 실제로 연탄가스를 마셨다는 이야기, 김재욱이 얼은 강 위를 걸었던 장면, 가짜가 아닌 실제 자동차 유리를 깬 사연 등등이 후일담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서예지가 연탄가스를 실제로 마셨다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아마도 서예지는 연기 열정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 같다. 이 일화를 부산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다른 길이 있다' 기자시사회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도, 인터뷰에서도 했다.

논란이 일자 조창호 감독은 "강압에 따른 게 아니었고, 합의를 했지만, 그럼에도 배우의 동의와 무관하게 진행하지 말았어야 했음을 크게 반성한다"고 밝혔다. 조창호 감독은 김재욱 얼음 장면도 안전장치를 마련했지만 과연 충분했는가, 당시의 판단이 옳았는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조창호 감독의 고민과 반성은 적합했다.

그럼에도, 짚어야 할 건, 연기라는 명목으로 배우의 열정과 목숨이 담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감독은 물론이거니와 배우도 마찬가지다. 영화 촬영 현장은 예술가의 자의식을 완성해 나가는 공간인 동시에 노동 현장이다. 영화 감독은 독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 독함은 스스로를 향해야 한다.

지난해 오달수 주연의 '대배우'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만년 무명배우가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연상시키는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무명배우는 캐스팅이 되기 위해, 발을 저는 장면을 찍기 위해, 남몰래 자기 다리에 망치를 휘두른다. 실제 같은 다리 저는 연기로 캐스팅이 됐다. 그렇지만 촬영장에서 반대쪽 다리를 절어달라는 요청에, 그나마 멀쩡한 다리를 망치로 때렸다가 촬영도 망치고 영화에서도 하차한다.

오달수에게 물었다. 실제 그런 경험이나 그런 마음을 먹은 적이 있냐고. 오달수는 "경험도 없고, 그런 마음을 먹은 적도 없다. 배우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름은 밝힐 수 없는 어떤 배우가 자살하는 연기를 하려는데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려 집에서 해보려다 큰일이 날 뻔 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다"고 했다. 배우의 열정과 예술혼을 착각하면 자칫 큰일이 난다. 살인자 연기를 한다고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계가 엄격한 영화 촬영현장은, 감독의 윤리와 열정이, 현장과 충돌하면서 종종 잡음이 난다. 직업윤리와 예술가의 자의식은, 둘로 나눌 일이 아니다. 감독이 배우의 동의 없이 노출 장면을 무단으로 내보낸 '전망 좋은 집' 송사도 결국 직업윤리의 문제다.

블랙리스트가 워낙 짙은 그늘을 드리웠던 시절이었다. 작은 영화, 민감한 영화, 어렵게 만들어진 영화에, 응원의 목소리가 컸던 게 사실이다. 모자람보다는 미덕에 박수를 보냈던 게 사실이다.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졌는지, 이해가 되는 탓이었다.

과거로 되돌아갔던 시계추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다. 대의는 목표가 돼야지,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미를 짚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모자람은 모자란 대로 짚어야 한다. 검열과 지적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선 안된다.

많으면 달라지는 법이다. 의미 때문에 못 본 척 했던 문제들에,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면 달라진다.

'다른 길이 있다'는, '다른 길이 있다'의 논란은 그래서 소중하다.

관련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