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약물 스타'들의 약진..'명예의' 아닌 '치욕의 전당' 될라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7.01.2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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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 본즈./AFPBBNews=뉴스1


로저 클레멘스와 배리 본즈가 명예의 전당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발표된 미 야구기자단(BBWAA)의 2017 명예의 전당 후보 투표결과에 따르면 클레멘스와 본즈는 각각 239표와 238표를 얻었다. 총 442명이 투표했고 득표율은 클레멘스가 54.1%, 본즈가 53.8%였다. 지난해 투표에서 이들의 득표율은 각각 45.2%와 44.3%였는데 이번에 상당히 올라가 처음으로 두 선수 모두 50% 선을 넘어선 것이다.


명예의 전당 입성에 필요한 기준인 75%와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아있지만 현지에서는 경기력 향상 약물(Performance Enhancing Drug- PED) 사용이 난무했던 메이저리그의 '스테로이드 시대'를 대표하는 이 두 명의 슈퍼스타가 마침내 득표율 50%선을 넘어선 것을 이들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현실화된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약물 스타’들에 대한 강경한 자세가 갈수록 누그러들고 있는데다 이들의 경우는 지난 2년간 득표율에 탄력이 붙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면 2~3년, 늦어도 5년 안에는 본즈와 클레멘스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 유력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BBWAA 득표율이 50% 이상을 넘어선 선수들의 경우 대부분 궁극적으로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본즈와 클레멘스에게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새롭게 명예의 전당 투표권을 얻은 투표인단 14명을 살펴보면 이중 13명이 본즈와 클레멘스에게 표를 줬다. 투표인단도 세대교체가 이뤄진 상황에서 새롭게 투표권을 얻은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약물스타’들에 대해 훨씬 관대한 생각을 갖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을 얻은 매니 라미레스가 23.8%(105표)의 표를 얻은 것도 그동안 PED 의혹을 받은 선수로는 후보 첫 해 최고 득표기록이다. 라미레스의 경우 이런 출발이라면 충분히 명예의 전당 입성이 가능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본즈와 클레멘스 등 ‘약물 스타’들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 모든 사람들이 다 완화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그들의 이름이 명예의 전당과 함께 언급되는 것조차 거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한 가지 걸리는 문제는 ‘스테로이드 시대’에 정확히 누가 PED를 사용했고, 누가 사용하지 않았는지 정확히 식별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본즈와 클레멘스가 전성기를 보냈던 시기에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PED에 노출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적발된 선수는 전체 비율에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메이저리그가 본격적으로 도핑 테스트를 시작한 것이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PED 사용 의혹은 있지만 운이 좋아 한 번도 적발된 없는 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선출되고 ‘재수가 없어’(?) 걸린 선수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은 공평치 않다는 의식이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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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명예의 전당 입성 배그웰-레인스-로드리게스(왼쪽부터)./AFPBBNews=뉴스1



당장 이번 투표에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이반 로드리게스와 제프 배그웰 역시 현역시절 단 한 번도 약물검사에서 적발된 적은 없지만 PED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물론 선수 커리어가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지만 커리어 숫자만 놓고 보면 본즈와 클레멘스에 비교될 수는 없다. 일각에서 똑같이 PED를 사용하고도 누구는 걸리지 않아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누구는 운 나쁘게 걸려 고려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마크 맥과이어와 함께 공포의 ‘배시 브라더스’를 이뤘던 슬러거 호세 칸세코가 바로 그런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과거 메이저리그 클럽하우스에서 이뤄지는 PED 사용실체를 폭로한 ‘Juiced'(약물에 젖은)라는 책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으며 메이저리그의 약물시대를 공식적으로 까발려놨던 칸세코는 당장 이번 명예의 전당 투표결과가 나오자 자신의 SNS를 통해 투표인단의 ‘위선’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어떻게 제프 배그웰은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데 마크 맥과이어는 안되는지 정말 구역질이 난다” “명예의 전당 투표의 엄청난 위선이 기막히다. PED 사용 선수를 올리려면 다 올리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올리지 마라”는 글을 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BBWAA의 일부 멤버들은 이처럼 PED 사용선수들에 대해 달라지는 시각에 대해 명예의 전당이 ‘좋은 사람’을 선출하는 곳이 아니라 야구 잘한 사람을 꼽는 곳이고 명예의 전당 멤버 중에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던 선수들도 다수 있는데 굳이 자신들이 PED 사용을 이유로 선수들의 인격을 판단해 명예의 전당 포함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엉뚱한 변명을 내놓고 있다.

또 사회 전체적으로 약물사용에 대한 인식이 계속 완화되고 있는데 야구에서만 유독 유난스럽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그러면서 그들은 명예의 전당이 스테로이드 선수들에 대한 명확한 선출기준을 마련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PED 사용으로 공식 적발된 적이 없는 스테로이드 시대 선수들을 평가해야 한다는데 부담을 느끼고 책임을 회피하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견에 대한 비판의견도 만만치 않다. USA 투데이의 크리스틴 브레난 기자는 “명예의 전당에 선출되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면서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 본즈의 명예의 전당 입성 자격을 거부하는 것은 본즈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가 특권을 얻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만약 본즈와 클레멘스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면 랜스 암스트롱과 마리온 존스, 그리고 88 서울올림픽 때 1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가 도핑적발로 메달을 박탈당한 벤 존슨 등도 명예의 전당에 올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정말 말도 안되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런 목소리가 점점 파묻혀가고 있는 분위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쿠퍼스타운의 명예의 전당엔 PED 사용 스타들의 흉상이 상당수 등장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본즈와 클레멘스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날은 어쩌면 명예의 전당 역사상 가장 떠들썩한 날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한쪽 구석에는 ‘치욕의 전당’(Hall of Shame)이라는 플래카드를 든 항의시위대가 등장할 것이 벌써 눈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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