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박근혜·정치검사, 한재림이 밝힌 '더 킹'의 긴 設 (인터뷰,스포有)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1.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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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과 한재림 감독/'더 킹' 제공사진


'연애의 목적'으로 데뷔해서 '우아한 세계', '관상'에 이어 '더 킹'까지 한재림 감독의 영화 세계는 점점 넓어졌다. 개인에서 출발해 사극과 현대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제작자로서도 '연애의 온도' '특종: 량첸살인기'로 역량을 발휘했다.

그런 한재림 감독이지만 '더 킹'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더 킹'은 권력을 잡고자 검사가 된 한 남자의 20여년을 녹여낸 이야기.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제작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13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 때문에 쇼박스에서 NEW로 투자배급사가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제작이 계속 미뤄졌다. 영화를 선보인 지금, 영화 속 내용들이 현실을 반영했다며 이런저런 말들도 많다. 준비 과정에선 알 수도, 짐작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다. 만일 지금 시국이 아니었다면, '더 킹'은 또 다른 '변호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의 긴 이야기를 가감 없이 옮긴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시나리오 초고와 이야기 중심축이 바뀌었다. 초고는 좀 더 조인성이 맡은 태수, 류준열이 맡은 두일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검사들의 이야기로 더 집중하는 걸로 바뀌었는데. 초고 오프닝은 지금처럼 교통사고가 아니라 두일이 태수를 쇠사슬로 감아서 바다에 빠뜨리는 장면이었고.

▶초고를 썼을 때는 캐스팅이 되기 전이었다. 지금 버전과 주인공들 이름도 다르다. 정말 한 남자의 디테일한 이야기를 쌓아서 권력에 대한 혐오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뒤로 갈수록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이 떨어지는 것 같더라. 관객이 주인공에 몰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간다기 보다는 자꾸 거리감을 두게 될 것 같았다. 그런 방식도 물론 좋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했다. 디테일을 살릴지, 아니면 관객을 끌고가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난 후자를 택했다. 초고는 검사들이 모여서 노는 장소가 룸싸롱이었다. 나조차 혐오스럽고 거리감이 생기더라. 지금은 펜트하우스다. 이렇게 설정해야 주인공이 권력을 동경하는 모습을 관객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뀐 주인공들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먼저 정우성이 맡은 한강식은 한국의 역사, 꼰대, 권력을 상징하는 듯한 이름이었으면 했다. 한국,한강,한강의 스타일, 한강식..이렇게 지었다. 조인성이 맡은 태수는 원래는 좀 더 순수했다. 난 그 역할이 껄렁껄렁한 느낌이길 바랐다. '모래시계'에서 최민수가 맡은 역할 이름이 태수이기도 하다. 배성우가 맡은 양동철은 양동+철 인 셈이다. 양동 같은 느낌과 단단한 철 같은 느낌의 결합. 그래서 명암이 다른 인물. 류준열의 두일은 묵직한 느낌이길 바래서 그렇게 지었다.

-'더 킹'을 왜 만들었나.

▶노무현 대통령 서거가 내게는 큰 트라우마였다. 어릴 적에는 막연하게 방공의 공포가 있었지 않나. 평화의 댐도 있었고. 제주도에서 살았는데 서울 친척집에 오면 서울 물바다가 되기 전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적도 있다. 그러다가 자라면서 그런 일들의 감춰진 모습들을 알게 됐다. DJ를 거쳐 노무현 대통령이 되면서 탈권위를 접하게 됐고. 나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인 성과와는 별개로 정의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그렇게 세상을 떠날 때, 뭔가 친한 사람이 거대한 벽 앞에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득권들에게 단순한 에러에 불과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점점 기득권의 삶이 궁금했다. 기득권의 삶이란 어떤 것일지, 어떻게 입문하게 되고,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궁금했다.

-왜 검사인가. 정치검사인가.

▶대통령은 바뀌어도 검사는 계속 살아남지 않을까, 그게 정말 왕이 아닐까 생각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목포에 살던 주인공이 갑자기 권력에 다가갈수는 없지 않나. 하루 아침에 재벌이 될 수도 없고. 그런데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검사가 되는 건, 다른 권력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진입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시간, 디제시스가 20여년이다. 전두환 정권시절부터 이명박 정권시절까지다. 그 시간을 2시간 몇 분 가량으로 줄이려면 선택과 집중이 중요했을텐데. '더 킹'에 세 번 등장하는 선거 장면으로 단락을 나눈 건가.

▶그렇다. 대통령이 바뀌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했다. 정치검사들이 승승장구하다가 절정에 이루는데 DJ가 대통령이 되면서 전환을 맞는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나오면서 위기를 맞고. 그렇게 대통령이 바뀌는 것과 정치검사들의 절정과 위기, 반전을 붙이려 했다.

-조인성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설정으로 나오는데. 그걸 숨기고. 앞뒤로 맞아떨어진다. 한국영화 중 검사를 그릴 때 전라도 출신이란 걸 녹이고 숨기고 부각하는 게 있었나 싶었을 정도인데.

▶뒤에서부터 왔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게 태수가 마지막에 반전을 꾀할 때 중요한 배경이지 않나. 그렇게 설정을 하고 영화 앞에는 씨뿌리기를 한 것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지역 감정이라는 게 결국 그런 것이란 걸 보여주고도 싶었다.

-'더 킹'은 마틴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더 월스트리트'와 맥락이 비슷한 점이 많은데. 권력을 탐한 사람의 성공과 좌절, 내레이션, 엘리베이터 앵글, 나부끼는 깃털 등등. '더 킹'이 15세 이상 관람가가 아니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었다면 영화적으로 더 질펀한 묘사도 가능했을텐데.

▶어떤 지점이 닮았다는 지 공감한다. 그런데 이런 다큐적인 부분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도 그렇고 '빅 쇼트'도 그렇고 전기적인 지점을 다룰 때는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 등 상승하는 이미지 같은 건, 아까 이야기했듯이 룸싸롱이냐, 펜트하우스냐를 선택하면서 결정된 것이다. 깃털은 나부낄 때는 화려하지만 금세 가라앉는다. 쓰레기처럼 곧 지저분해지고. 그게 권력의 속성이라고 생각했다.

질펀함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 선택의 문제였다. '내부자들'처럼 강한 자극으로 가는 영화도 있지만 '더 킹'은 한 남자의 선택에 대한 후회를 그리고 싶었다. 정우성과 조인성, 배성우, 이들이 펜트하우스에서 클론의 '난'을 부르며 그 춤을 춘다. 룸싸롱이었다면 질펀하게 놀았을 수 있다. 그런데 난 검사들이 이렇게 춤추고 노래하는 게 더 웃기고 황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배성우가 조인성을 정치검사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러면서 청순한 여배우의 섹스비디오가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 도구는 다시 어떤 용도로 더 활용되고.

▶실제 검사들에게 물었다. 선배 검사가 어떤 사건 빼달라고 부탁하면 들어주냐고. 그런 일도 거의 없을 뿐더러 그랬다가는 그 선배는 매장 당한다고 그러더라.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깐. 그래서 그럼 선배 검사가 무릎을 꿇고 부탁하면 어떨 것 갔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멍 해하더라. 인생이란 게 그렇게 짧지만 단순한 한 장면, 한 공간, 한 선택으로 넘어가는 게 아닌가.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여배우 섹스동영상은 실제로 검사들이 그런 걸 쌓아놓고 위기 때 터뜨리는지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그럴 것이라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에 바탕을 뒀다. 조인성을 정치검사 세계로 끌어들인 달콤한 유혹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슈로 이슈를 덮는 장치로 나중에 사용되는 오브제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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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림 감독/사진제공=NEW


-초반에는 광각과 부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펜트하우스에선 롱테이크를 사용하는 등 각 장면들과 카메라 워킹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아나모픽을 활용한 검사실의 깊이감도 그렇고. 정치검사 세계를 엿보는 쾌감을 준다. 반면 카메라란 게 결국 시선인데, 영화 전체를 끌고가는 시선으로서 앵글의 연속성은 적은 것 같은데.

▶'더 킹'에는 내레이션이 많다. 또 오브제가 중요했다. 그런 상징과 컷들이 초반에 쌓여서 후반에 터뜨리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화려한 카메라 워킹이 많은 반면 후반 몽타주 이후로는 톤이 차분하게 간다. 그런 연출 의도가 드러나도록 카메라 워킹을 설계했다.

촬영 한 달 전에 김우형 촬영감독님이 결정됐다. 그러다 보니 각 장면들은 미리 조연출, 콘티작가와 준비해 놓은 콘티랑 거의 똑같다. 김우형 촬영감독님은 그걸 기술적으로 가능하도록 구현해줬다. 예컨대 검사실 같은 경우 데칼코마니처럼 그려지길 바랬는데, 김 촬영감독님이 그럼 아나모픽을 써야 한다고 제안해주셨고 그렇게 현실로 구현해줬다. 영화의 대칭적인 이미지, 라이트, 색감 등을 입힌 건 김우형 촬영감독님의 공이다.

난 영화 초반 목포 분량을 쿠바처럼 그리고 싶었다. 강한 원색으로 담았다가 점점 이야기가 흘러가면 블랙 앤 화이트만 남기를 바랐다.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하면 스크린에 담기는 정보량이 확연히 늘어난다. 그렇기에 미술에 많은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을텐데. 20여년을 다루는 영화인 만큼 미술 구현, 미쟝센도 중요했을테고.

▶이인옥 미술감독님에게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걸 씁시다, 라고 했다. 그게 난 클래식하다고 봤다. 예컨대 검사실에서 도르래로 문을 여는 것도 그렇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문을 여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오브제와 과거, 현재를 관통하는 것들을 유기적으로 담고 싶었다.

-굿 장면이 화제다. 정우성이 첫 굿을 보고 난 뒤 하는 대사도 아주 인상 깊고.

▶굿 장면은 이렇게 화제가 될 지 몰랐다. 웃기라고 굿 장면을 쓴 건데 이렇게 현실에서 터질지는 몰랐다. 작가의 상상을 현실이 넘어섰다. 이렇게 화제가 되니 겁도 나더라. 이 영화가 어떻게 이 시국에 보여질지도 걱정이 된다.

정우성이 처음에 굿을 보고 하는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부터 있었다. 애드리브는 아닌데 워낙 잘 살려줬다. 정우성이 한 애드리브는 마지막 에필로그였다. 난 눈물을 흘려달라고 했는데, 그게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손수건을 준비해서 코를 풀더라.

-커피 타는 고아성을 비롯해 성동일 등 정말 좋은 배우들이 잠깐잠깐 등장하면서 기능적으로 사용된다. 좋은 배우들이라 해당 장면의 목표 이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한데.

▶그런 것들이 필요했다. 성동일 선배가 초반에 선생님으로 나와서 하는 대사는 성동일 선배여서 그렇게 맛깔 나게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커피 타는 여자로 나오는 고아성은 정말 우연하게 섭외했는데 진심으로 감사했다. 난 '더 킹'에서 정우성이 커피 먹는 이미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이미지였으면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됐을 때 검사들이 커피 먹는 이미지가 내겐 정말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이 커피 먹는 이미지를 익히 알고 있는 배우를 통해 알아차렸으면 했다.

원래는 들개파 세트에서 커피 먹는 장면은 없었다. 미술팀이 작업을 하고 난 뒤 컴펌을 하러 갔다가 이 장면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 촬영인데 할 만한 배우가 있는지 급하게 섭외를 시작했다. 마침 배성우가 고아성이랑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배성우에게 고아성에게 이런 역할인데 출연해줄 수 있는지 부탁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고아성이 춤추는 동영상을 보내면서 "오디션"이라고 하더라. 대뜸 "합격"이라고 했다. 다음날 고아성이 홀로 차를 몰고 현장에 왔다.

-조인성의 내레이션이 영화 전체에 깔린다. 그런데 엔딩까지 내레이션이 이어지는 건 과하지 않나. 특히 엔딩에 누가 왕이라는 내레이션은 지나치게 관객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게 아닌지. 오히려 내레이션 없이 그냥 끝내는 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싶던데.

▶그 지점을 고민 많이 했다. 배우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고. 그런데 다들 만드는 사람으로서 관객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는 데 공감했다. 우리의 작은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런 생각. 첫 장면이 전두환 대통령 카퍼레이드로 시작하지 않나. 그랬던 시대였다. 그런 권력을 우리가 주는 건데 모르고 살았다. 태수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걸 온 몸으로 겪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 사람이 관객들에게 기득권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당신들이란 걸 이야기하게 하고 싶었다. 요즘 촛불도 그래서 희망인 것이지 않나. 배우들도 지금은 위로를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

-주인공이 태수(조인성)다. 그런데 초반이 지나가면 매 장면들이 조인성이 주인공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돋보인다. 그렇다 보니 마지막에 가서야 조인성이 부각 되는데.

▶태수는 관객들이 감성적으로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이 사람에게 동화돼서 마지막까지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조인성이 미워지거나 거리감이 느껴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너무 정면에 나오면 거리를 두게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초중반까지는 계속 씨뿌리기를 했다. 그래야 조인성을 따라가면서 나중에 그 감정과 일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게 이 영화에서 조인성이 주는 이미지는 후반부에 리와인드 장면이다. 뒤로 감기면서 뒷모습을 따라가다가 결국 우뚝 선 이미지.

-후반부에서 류준열에게 달려가는 개 장면은 다 CG인데. 실제처럼 절묘한데.

▶개들이 네 방향에서 달려오잖나. 개들이 말을 안 들으니 일단 각 방향에서 한 마리씩 달리게 했다. 그런 뒤 네 방향으로 동시에 달리는 것처럼 합성했다. 그리고 다시 류준열이 누워있는 장면과 합성하고. 류준열을 흔들었다.

-그 들개파 아지트에서 벌어지는 씬들의 색감이 정말 인상 깊던데.

▶판타지처럼 보여지길 바랐다. 정치검사가 뒤에서 벌이는 그런 악한 모습들이 조인성이 그곳에 가보진 못했지만 그릴 수 있는 환상처럼 보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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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림 감독/'더 킹' 제공스틸


-한재림 감독은 많이 찍는 걸로 유명하다. 찍어놓고 통째로 날리기도 하고. 혹자는 결정장애라고도 하고, 혹자는 현장을 장악해서 그런 것이라고도 한다. 이번에도 검사들이 광화문에서 말 달리는 장면을 찍어놓고 통째로 들어냈다. 조인성은 그런 한재림 감독의 연출 방식을 아주 좋아하기도 하던데.

▶일단은 예전에는 많이 찍었다. 그런데 '더킹'은 104회차에 장소만 200여곳이 넘다보니 하루에 3곳을 옮겨가며 찍었다. 많이 찍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거의 콘티 대로 찍었다.

광화문에서 말 달리는 장면은 CG로 영화에 자연스럽게 입힐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시국과 아무런 의미 없이 너무 맞아떨어졌다. 말을 타고 달린다는 게. 몇몇 사람에게 보여줬더니 말 달리는 장면에서 너무 웃더라. 관객이 그냥 영화에서 나와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편집했다.

다시 많이 찍는 걸 이야기하자면, 어느 감독이 안 넣을 장면을 찍겠나. '관상'이나 '우아한 세계'는 배우들의 연기 몫이 중요했다. 같은 연기도 호흡에 따라 어떻게든 달라질 수 있는 영화들이었다. 그래서 정답은 있지만 여기서 한 호흡을 달리 가면 더 재밌겠다 싶었기에 계속 주문하고 더 찍었다.

'더 킹'에서 조인성도 마찬가지였다. 정답이 한 번 나오면 거기에 물을 마셔도 한 숨을 한 번 쉬고 마셔달라고 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바로 캐치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더 창의적인 작업이 이뤄졌다.

-'더 킹' 현재 상영본이 134분이다. 그런데 영등위에 157분 버전도 심의를 받았다. 사라진 23분에는 무엇이 담겼나.

▶아무래도 풍성함이 있다. 태수의 목포 분량도 있고, 가족 이야기가 더 있다. 두일과 관계 장면 설명도 있고, 동철과 태수의 분량도 더 있다. 그런데 그 장면들을 넣으니 리듬이 늦춰지는 것 같더라. 현재 버전처럼 달려가는 이야기의 리듬과는 안 맞는 것 같았다. 157분 버전을 공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버전과 리듬이 다른 만큼 전체 편집과 호흡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모그가 음악감독인데. 클래식하면서도 전형적이진 않는데.

▶자자의 '버스 안에서', 클론의 '난' 같은 노래들은 이미 콘티 과정에서 선곡을 해놨다. 음악감독님에게 이 영화 감정이 경쾌하게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력들이 노는 장면들이 즐겁게 묘사돼야, 그걸 동경하는 태수의 마음을 관객이 이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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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림 감독/사진제공=NEW


-조인성은 어땠나.

▶배우의 외적 이미지가 이미 잘생겼지 않나. 선입견으론 까다롭고 어려울 것 같았고.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털털하고 농담도 잘하고 넉살도 좋더라. 사실 쇼박스에서 NEW로 바뀔 즈음, 심적으로 힘들었다. 조인성에게도 이야기는 해야했고. 그랬더니 "아무런 상관 없다"고 하더라. 그러다가도 다른 투자배급사를 알아보면서 계속 마음이 힘들 때마다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인성이 여기 있어요. 잘 있어요. 걱정 마세요"라고 했다. 울컥했다. 신뢰를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잘 생긴 스타들이 하는 연기 패턴에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힘을 빼면서 정말 잘했다. 정답이 나왔는데도 추가로 주문하면 그걸 재밌어 했고 다시 잘 표현했다.

-후반부에 정우성과 배성우가 조인성을 찾아오는 장면에서 헤드라이트에 비친 조인성의 표정이 무척 인상 깊던데.

▶나도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다. 콘티를 짤 때부터 그 장면에 감정이 이입됐었다. 데이빗 린치의 '트윈픽스'가 떠올랐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듯한 풍경. 조인성에게 꿈처럼 연기해달라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캐치하더라.

-정우성은 어땠나. 정우성에게 기대하는 어떤 이미지를 차용하면서도 배신한 게 영화에 아주 적합했는데. 여느 영화 속 검사 이미지와도 다르고. 몇몇 장면에서 손가락 끝을 세우며 커피 마시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고.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감동했다. 감독과 스태프 하나하나를 다 배려했다. 일단 한강식은 태수가 꿈꾸는 권력의 상징이자 워너비 잖나. 조인성이 꿈꾸는 워너비인데 시각적으로 어떤 배우여냐 할까, 정우성일 수 밖에 없다. 정우성은 드라마상 필요한 존재일 뿐더러 자신의 이미지를 비틀면 비틀수록 즐겼다. 우아함과 망가짐 간의 간극을 정말 잘 보여줬다. 커피 마시는 장면은 촬영 당일 갑자기 만든 장면이다. 들개파가 처리하는 걸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 의도를 설명했더니 딱 알아차리고 그 장면을 표현하더라. 나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라이트를 켰다가 끈 것 밖에 없다. 그 장면 촬영이 끝나고 다들 박수쳤다.

-배성우는 자칫 뜰 수 있는 조인성 정우성의 검사 이미지를 땅에 뿌리 박히도록 한 장본인인데.

▶맞다. 첫 팬트하우스 장면의 에너지는 배성우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의 에너지가 현장을 장악했다. 영화에 긴장과 이완을 안겨준 장본인이다.

-에필로그에서 배성우가 한 대사는 고승덕 변호사 패러디인가.

▶원래는 국민에게 사과한다 정도였다. 그런데 배성우가 애드리브로 그렇게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그래서 손은 들지 말자고 했다.

-류준열은 어땠나.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다. 섬세하고. 항상 음악을 물어본다. 어떤 음악이 쓰일지. 그걸 캐치하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 들개파 첫 장면에서 다른 사람들이라면 움찔 할텐데 그걸 순하고 담담하게 그린다. 그러니 잔인한 것과 순수한게 더해져서 새로운 모습을 그려내더라. 태수의 또 다른 자아처럼 묘사해달라고 했는데 잘 표현했다. 조인성과 친구로 나오는데 처음에는 서로 나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마를 따라가면 점점 그 간극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들개파 보스로 나오는 김의성은 대사 두 마디로 확실하게 장악하는데.

▶'관상'에서도 너무 잘 해줘서 또 같이 하고 싶었다. 정치인을 맡길까 했는데 그건 너무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역할이다 했는데 너무 표현을 잘해줬다. 그 후반부에 돈이 빈다며 가방을 여는데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까딱이지 않나. 정말 좋았다.

-감찰 검사로 나오는 김소진은 '더 킹'의 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더 킹' VIP시사회에 김지운 감독님이 왔다. 그러면서 저 배우는 누구냐고 하더라. 오디션을 보고 뽑았다고 했더니 "여자 송강호"라고 하더라. 저렇게 장악하냐며. 김소진은 역할을 너무나 창의적으로 만들어줬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걸 받아서 전혀 다르게 만들어줬다.

-조인성 부인 역으로 김아중이 나오는데.

▶너무 미안하다. 연기가 너무 좋아서 미안하다. 항상 현장에서 질문을 던진다. 아주 섬세한 것까지 묻고 그걸 다시 만들어냈다. 분량이 편집된 게 너무 연기를 잘했기에 미안하다.

-후반부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웃고 있는 장면을 삽입했는데. 지금 시국이 아니었다면 과연 들어갈 수 있었을까 싶더라.

▶그 장면은 내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기도 하다. 20년 동안의 대통령을 다 영화에 담았는데, 물론 그 때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찍고 있을 당시 대통령인 건 분명했다. 시국에 따라 바뀔 장면은 결코 아니었다. 영화적 장치기도 하고. '국제시장'에서 구두를 닦는데 알고보니 정주영이었다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는 영화적 장치다. NEW에서도 마지막 시사를 할 때 이게 진심인 거죠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렇다라고 했더니 "네, 알았습니다"라고 하고 별 말 안했다.

-다음 영화는.

▶'관상'은 정공법적인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킹'은 일부러 비틀고 싶었다. '더 킹'을 하고 나니 지금은 스릴러든 우주 공간을 다루든 서스펜스가 강한 영화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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