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한시즌 70타석 더친다면?.. '슬러거 1번' OK!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7.01.17 08:03 / 조회 : 3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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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 슈와버. /AFPBBNews=뉴스1




월드시리즈 챔피언 시카고 컵스의 조 매든 감독은 지난달 메이저리그 윈터미팅 때 슬러거 카일 슈와버를 다음 시즌 팀의 1번 타자(leadoff hitter)로 기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주에도 이 발언을 되풀이해 슈와버를 1번 타자로 기용하는 것이 잠시 스쳐가는 생각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사실 슈와버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상적인 1번 타자는 아니다. 지금까지 1번 타자라면 대개 파워히터가 아닌 단타형 타자로 선구안이 좋아 볼넷을 많이 골라내 출루율이 높고 빠른 발로 많은 도루를 뽑아내 상대 수비를 흔들어놓는 선수들이었다. 파워히터들이 버티고 있는 중심타순 앞에서 밥상을 차려주는 선수라는 의미로 ‘테이블세터’(table-setter)로 불리기도 한 이들은 대개의 경우 중견수나 중앙 내야수(2루수, 유격수) 중 한 명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 기준에 비춰보면 거구의 파워히터로 발도 그리 빠르지 않은 슈와버는 1번 타자 감이 아니다. 만약 컵스가 아메리칸리그 팀이라면 지명타자가 유력한 그는 5번이나 6번 타순이 가장 적합해 보이는 선수다. 그렇기에 슈와버를 1번 타자로 쓰겠다는 매든 감독이 생각은 일종의 ‘역발상’이자 고정관념 깨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하듯이 전통적인 1번 타자의 개념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사실 슈와버를 1번 타자로 고려하는 매든 감독의 역발상도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컵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펼쳤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테리 프랭코나 감독은 이미 지난해 팀의 지명타자 겸 1루수인 슬러거 카를로스 산타나를 86경기에서 1번 타자로 내보냈다. 그리고 산타나는 1번 타자로 출루율 0.385와 장타율 0.502를 기록하며 19홈런과 41타점을 뽑아냈는데 이는 그가 지난해 기록한 34홈런과 87타점의 절반가량이 1번 타순에서 나왔음을 의미한다. 그는 또 1번 타자로 총 67개의 볼넷을 골라냈는데 이는 다른 타순에서 얻어낸 볼넷(32개)의 두 배가 넘는다.

사실 프랭코나 감독은 팀에 마땅한 1번 타자 감이 없었기에 궁여지책으로 산타나를 내보낸 감도 없지 않다. 대개 오른손 선발투수를 상대로 산타나를 1번 타순에 배치한 그는 왼손선발을 상대할 때는 발 빠른 중견수 라자이 데이비스를 주로 1번으로 내보냈는데 데이비스는 1번 타자로 11홈런과 35타점을 뽑아냈으나 출루율은 0.312에 그쳤다. 데이비스의 출루율이 신통치 못하자 오른손 투수를 상대론 산타나를 내보냈는데 산타나의 뛰어난 선구안으로 인해 기대이상의 효과를 얻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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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벅 쇼월터 감독 /AFPBBNews=뉴스1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벅 쇼월터 감독도 전형적인 1번 타자라고 할 만한 선수가 전무한 상황에서 팀의 중심타자 중 한 명인 애덤 존스를 108경기에 1번으로 내보냈고 존스는 타격슬래시라인 0.282/0.320/0.471에 24홈런을 기록했는대 이는 그가 다른 타순에서 기록한 성적보다 월등히 좋았다.

이밖에 미네소타 트윈스의 2루수 브라이언 도저도 지난해 친 42홈런 중 27개를 1번 타자로 나서 뽑아냈을 정도로 이제는 1번 타순에 슬러거들이 배치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 감독들이 예전 같으면 4, 5번에 배치됐을 선수들을 1번으로 끌어올리는 실험에 갈수록 열린 마음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이야기를 컵스 쪽으로 돌려 보면 매든 감독은 슈와버보다 훨씬 더 1번 타자감으로 보이는 벤 조브리스트를 4번 타자로 쓰기를 원하고 있다. 조브리스트는 지난해 7번과 8번을 제외한 모든 타순을 다 경험했는데 그중 4번 타자로 가장 많이 출전했고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는 5차전까지 계속 4번 타자로 나선 뒤 6, 7차전에선 5번 타자로 배치됐고 시리즈 MVP도 차지했다. 시즌 전체적인 성적에선 5번 타자로 나섰을 때가 가장 좋았으며 1번 타자로 나섰을 때의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못했다.

물론 매든 감독이 타순을 정하는 원칙은 슈와버나 조브리스트 등 선수 개인 위주가 아니라 팀 전체를 보는 것이다. 그는 내셔널리그 MVP인 크리스 브라이언트를 2번에 고정시키고 앤서니 리조를 3번, 벤 조브리스트를 4번에 배치하는 타순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매든 감독은 “크리스(브라이언트)는 지난해 2번을 치며 내셔널리그 MVP가 됐다. 또 앤서니(리조)에게 물어보면 3번을 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면서 “그리고 조브리스트의 경우 모두가 그를 4번이 아니라고 했지만 월드시리즈 7차전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고 말했다.

사실 컵스는 지난해 전반기엔 주로 제이슨 헤이워드가 2번을 치고 브라이언트와 리조는 3, 4번을 맡았으나 헤이워드가 계속된 부진으로 2번에서 빠져나가면서 브라이언트와 리조가 2, 3번으로 올라선 것이었다. 또 조브리스트가 월드시리즈 승리를 안겨준 7차전 연장 10회 결승타도 4번이 아닌 5번 타자로 때린 것이다. 조브리스트는 하비에르 바예스가 주전 2루수로 떠오르면서 사실 정규적으로 나설 포지션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매든 감독은 이 같은 세부적인 문제점보다는 큰 그림에서 슈와버-브라이언트-리조-조브리스트로 이어지는 타순에 마음을 빼앗긴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슈와버가 1루에 배치된 컵스의 어마무시한 상위 타선은 매 경기마다 1회부터 상대팀들은 긴장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1번 타자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야구경기의 근본적인 변화에 따른 것이다. 과거에는 선두타자가 어떤 형태로든 출루한 뒤 2루를 훔치고 중심타자의 안타로 홈에 들어오는 소위 ‘득점 제조’ 방식의 공격이 대세를 이뤘지만 현대 야구는 타순에 관계없이 홈런으로 점수를 뽑아내는 비율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중심타자들이 언제라도 펜스를 넘길 파워가 충분한데 앞의 타자가 도루를 시도할 필요가 점점 더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뛰어난 파워히터를 앞에 두고 괜히 도루를 시도하다 실패할 경우 오히려 찬스를 날릴 확률만 높아지기에 전통적인 리드오프 히터의 가치가 갈수록 감소하는 것이다. 단순히 출루해 찬스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해결사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선수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선두타자 개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유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1번 타자의 경우 타석에 들어서는 횟수가 4, 5번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시즌 전체로 환산하면 상당히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지난해 컵스의 경우 1번 타자는 총 772차례 타석에 들어섰으나 2번은 753회, 3번 735회, 4번 721회, 5번 703회로 1번과 5번의 타석 수 차이가 시즌 전체로 가면 거의 70타석에 달했다. 슈와버 같은 강타자가 1년에 70번이나 많은 타격 기회를 얻는다면 그 효과는 팀 전체적으로도 훨씬 커질 수 있다.

물론 이상적인 1번 타자 타입의 선수가 팀에 있고 그가 뛰어난 출루율로 계속 찬스를 만들어준다면야 굳이 파격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팀의 베스트 히터를 중심타순 대신 1, 2번에 전진 배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인식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슈와버가 아니더라도 전통적인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1번 타자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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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바티스타. /AFPBBNews=뉴스1



그런 흥미로운 케이스중 하나가 최근 친정팀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다시 계약협상에 불이 붙은 것으로 알려진 프리에이전트 거포 호세 바티스타(36)다. 바티스타는 자타공인의 거포 중 하나지만 지난 7년간 0.387에 달하는 높은 출루율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런 높은 출루율로 인해 예전 같았으면 4번, 또는 5번에 고정됐을 그가 지난해에는 40게임에서 1번 타자로 등장했었다. 그의 나이를 감안할 때 파워는 감소추세로 돌아설 것이 유력하지만 출루능력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해 새로운 선두타자의 개념에 적합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평이다. 스피드가 빠르지는 않지만 높은 타율과 출루율, 그리고 평균 이상의 파워를 보유한 팀의 베스트히터들이 점차 타순의 앞쪽으로 전진 배치되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추세로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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