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ML주최 WBC의 태생적 한계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7.01.13 08:15 / 조회 : 2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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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의 김현수가 WBC출전을 고사했다./AFPBBNews=뉴스1


“야, 그래도 스프링 트레이닝보다는 재미있잖아”(Hey, it’s better than spring training.)


최근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한 칼럼니스트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대한 일반적인 미국 팬들의 반응을 표현한 말이다.

제4회째를 맞는 WBC가 3월에 막을 올리는 가운데 세계 야구에서 단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에서 WBC에 대한 열기는 아직도 뜨뜻미지근하다. 메이저리그가 주관하고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다수 출전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미국팬들 사이에선 이 대회에 대한 관심을 느끼기가 힘들다. 지금 미 언론에서 나오는 WBC 관련기사들(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는다)을 살펴보면 초호화 팀을 만들어가고 있는 미국이 이번에는 과연 우승을 할 수 있을까하는 하는 기대 섞인 전망이나 흥분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어느 팀의 어떤 선수가 이 대회에 출전하기로 했다, 아니면 불참을 결정했다는 동정 기사 정도가 대부분이다.

팬들은 물론 선수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중남미 야구강국(도미니카공화국,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베네수엘라) 출신 선수들과 한국, 일본, 대만 등 극동 출신 메이저리거들은 대부분 WBC에 나가는 문제가 개인적으로나 해당 국가대표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선수 입장에선 국가를 대표하고 모국의 명예를 위해 뛰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대표팀에 발탁될 경우 그로 인한 자부심이 매우 크다.

반면 미국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그런 생각이 훨씬 덜하다. “개인적으로 시즌 준비에 지장이 된다면 뛸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명감 의식은 아예 없거나 아니면 부차적인 문제다. 부상 우려로 결국 출전이 불발됐지만 가장 먼저 출전의사를 밝힌 선수 중 한 명인 미국의 수퍼스타 에이스 맥스 슈어저(워싱턴 내셔널스)는 당시 미 대표팀 합류를 결심한 이유로 사명감이나 국가관보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 감독이었던 짐 릴란드 대표팀 감독과의 관계를 먼저 거론했다. 릴란드 감독과 함께 뛰고 싶어 출전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 선수들의 정신자세를 탓할 수는 없다. 우선 자국팬들부터 WBC를 진정한 국가대항전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선수들에게만 이 대회에 대해 흥분해주길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연봉이 수백~수천만달러에 달하는 선수들에게 몸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산인데 그 몸을 다칠 수도 있는 위험성을 무릅쓰고 대회에 나가 무조건 국가를 위해 뛰어주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렇기에 한국이나 일본은 대표팀이 멤버를 ‘선발’하지만 미국의 대표팀은 선수 후보들을 접촉해 대회 출전을 ‘부탁’해야 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미국 대표팀은 워낙 선수층이 두텁기에 선수 입장에선 자신이 나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선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스타라도 WBC 출전이 대표팀 차원에서 그리 절실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면 굳이 부상과 시즌 준비 차질 등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하고 대회에 나가려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WBC 입장에서 볼 때 선수들의 대회에 대한 인식보다 더 큰 문제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출전 반대다. 이 문제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출전국에 공통으로 해당되는 사안이다. 구단 입장에서 선수들은 엄청난 투자 자산인데 이들이 WBC에 나가 다치거나, 다치지 않더라도 대회 출전으로 인해 다가올 시즌에 대한 적절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때문에 대부분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자기팀 선수들의 WBC 출전을 내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걸 잘 아는 선수 입장에서 구단의 의사를 거스르고 대회 출전을 고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구단에서 허락을 해주더라도 개인적으로 부상과 시즌 준비 차질은 물론 팀내 주전경쟁에서 밀릴 위험성 등 여러가지 위험요소를 각오해야만 한다. 구단과 맞서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수의 초특급 선수가 아니라면 구단 반대를 정면 돌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수 입장에서 출전하고 싶어도 엄청난 걸림돌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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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시 WBC마운드를 국내파로만 꾸리게 생겼다. 다저스의 마에다 켄다. /AFPBBNews=뉴스1



당장 이번 대회에도 소속팀의 반대로 한국의 경우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의 출전이 힘들 전망이다. 일본도 마에다 겐타(LA 다저스), 다르빗슈(텍사스 레인저스),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우에하라 고지(시카고 컵스) 등 메이저리거들의 출전이 불발될 것으로 보인다.

WBC는 메이저리그가 주최하는 대회다. 그런데 정작 이 대회 성공을 위해 가장 앞장서야할 주최 측인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소속팀 선수들을 이 대회에 내보내지 않기 위해 막고 있으니 완전한 이율배반이자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 각국의 최고 야구스타들의 경연장이어야 할 WBC에 주최 측인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반대로 선수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WBC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WBC의 태생적 한계다.

‘지구촌 축구축제’로 불리는 월드컵을 생각하면 그 차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FIFA(국제축구연맹)가 월드컵 본선 출전국 수를 종전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대폭 늘리기로 결정하자 당장 유럽 메이저 클럽들에선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도 많은 소속선수들이 월드컵 예선과 본선 경기를 위해 수시로 해당 대표팀에 차출당하고 부상도 많이 당해 클럽들의 손실이 엄청난데, 월드컵이 더 확대하면 그것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선수 혹사 문제와 함께 월드컵 예선과 본선의 기간 연장 가능성에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불만이 있다고 클럽들이 실력행사에 나서기는 힘든 것이 축구의 월드컵이다.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은 FIFA라는 강력하고 독립된 국제기구이고 그런 FIFA의 넘버 1 이벤트인 월드컵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국가를 대표해 월드컵에서 뛰고자 하는 축구선수들의 열망은 WBC에 대한 야구선수들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구단이 막을 수도 없지만, 막으려고 시도한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월드컵과 WBC의 차이는 우선 대회를 개최하는 주체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축구의 월드컵은 FIFA라는 강력한 독립기구가 존재하기에 ‘지구촌의 축구축제’가 될 수 있었다. FIFA가 세계 축구계에서 유일한 관리기구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세계 각국의 모든 리그는 FIFA의 월드컵 시스템을 존중하고 함께 공존하는 길을 찾아왔다. 실제로 세계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 이벤트인 월드컵으로 인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등 세계 각국의 리그들 역시 엄청난 혜택을 누려왔기에 클럽들이 FIFA와 월드컵에 대한 다소간의 불만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야구에서는 FIFA와 같은 강력한 국제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야구란 스포츠가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해왔고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극히 제한된 수의 국가에서만 플레이되고 있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활성화된 자국 프로야구리그가 있는 국가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로 인해 WBC에 출전할 16개국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WBC의 선수 자격 규정이 해당 선수의 국적과 상관없이 조부모까지 거슬러 올라가 어떤 연결고리만 있어도 출전자격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축구의 월드컵처럼 엄격한 국적조건을 적용한다면 WBC에 경쟁력이 있는 팀을 내보낼 수 있는 참가국 수는 10개국도 되지 않을 것이다.

당장 3월 WBC 1라운드에서 한국과 격돌할 이스라엘의 경우 나라 전체에 야구 전용구장은 단 1개뿐이며 이번 대표팀에도 실제 이스라엘 국적을 지닌 선수는 하나도 없고 대부분은 한 번도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 유대인계 미국인 선수들로 짜여 질 전망이다. 이스라엘은 이달 초 이런 선수 10명을 초청, 이스라엘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을 대표할 선수들에게 조상들의 나라에 대해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조부모 중 한 명만 유대인일 경우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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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쿠바와의 '프리미어12' 8강전(7-2 한국 승) 후 모습.


이런 상황에서 WBC같은 대회를 개최할 능력이 있는 기구는 사실 메이저리그 외에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가 WBC를 주최하는 것은 축구의 월드컵을 EPL이 주최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만약 EPL이 월드컵을 주관한다면 EPL을 위해 월드컵의 글로벌 영향력을 제한시키고 소속팀 선수들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 나설 수 있다. 이해상충 요소가 발생할 경우 EPL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FIFA의 경우는 그런 이해상충 측면이 없고 세계 축구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기에 월드컵 발전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WBC는 메이저리그가 개최하는 한 영원히 이런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메이저리그 입장에서 WBC는 메이저리그의 브랜드를 돋보이게 해주는 조연 성격의 보조이벤트일 뿐 절대로 메이저리그를 능가하는 메인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야구가 전 세계적인 스포츠로 확산되고 명실상부한 국제기구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WBC는 단지 ‘맛보기’ 차원의 국제적 이벤트 일뿐 축구의 월드컵과 같은 진정한 세계인의 축제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메이저리그 일정에 맞추다보면 실제로 대회를 열 시기조차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직 선수들의 몸도 채 만들어지지 않은 시기에 벌어지는 경기가 진정한 진검승부가 될 수 없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국제 시범경기 대회’일 뿐이다. WBC가 미국팬 들에게 그냥 '시범경기보단 조금 더 흥미로운 이벤트'밖에 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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