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의 트럼프 저격..아, 거긴 블랙리스트 없죠?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1.09 18:07 / 조회 : 2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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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BBNews=뉴스1


9일 오전(미국 현지시각으로는 8일 오후) 미국 LA 비버리힐즈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4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가 주최하는, 아카데미와 쌍벽을 이루는 권위있는 시상식입니다. 메릴 스트립(69)이 세실 B. 데밀 상을 수상했습니다. '십계', '삼손과 데릴라' 등을 연출한 감독 세실 B. 데밀의 이름을 딴 이 상은 골든글로브의 공로상입니다. 할리우드의 연기신 메릴 스트립의 수상에 이견이 있을 리 있나요. 더 멋졌던 건 대배우의 품격이 고스란히 드러난 수상 소감입니다.

"휴 로리가 그러더군요. 당신과 이 곳의 우리 모두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이 욕을 먹는 일당이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영화인(Hollywood), 외국인(Foreign), 언론인(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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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BBNews=뉴스1


곳곳에서 폭소가 터졌습니다. 하지만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메릴 스트립은 뼈있는 농담으로 만족할 뜻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입니까. 할리우드가 뭡니까.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의 집단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한 그녀는 다양한 나라, 지역에서 태어난 배우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할리우드는 이방인과 외국인들이 가득합니다. 만약 그들을 모두 추방한다면 예술이 아니라 풋볼이나 이종 격투기 말곤 볼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숨기지 않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메릴 스트립은 '트럼프'란 이름을 단 한차례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그를 겨냥한 날선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장애인 기자를 흉내 내며 조롱한 순간을 꼬집으며 "그걸 본 순간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혀 장내를 숙연하게 했습니다.

"공공의 영역에 있는, 권력을 지닌 사람이 본보기로 보이는 조롱의 본능은 모두의 삶에 스며듭니다. 다른 이에게 똑같은 짓을 해도 된다는 허락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무례는 무례를 부릅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습니다. 권력자가 지위를 남용해 남을 괴롭히면 우리 모두가 패자가 됩니다."

그녀는 원칙 있는 언론이 필요하다고, 그런 언론이 진실을 수호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배우라는 공감의 연기를 펼칠 특권과 책임을 서로에게 상기시켜야 한다"면서 "할리우드의 작업에 대해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라고도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론 지난 연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스타워즈'의 히로인 고(故) 캐리 피셔를 언급해 듣는 이들을 더욱 먹먹하게 했습니다. "나의 친구, 세상을 떠난 레아 공주는 내게 이렇게 말했죠. 무너진 가슴으로 예술을 만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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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BBNews=뉴스1


역대급 수상소감이었습니다. 할리우드 또한 메릴 스트립의 개념 수상소감으로 들썩입니다. 수많은 영화인과 할리우드 인사들이 SNS를 통해 "메릴 스트립 최고"를 외치고 나섰습니다. 저는 되려 걱정이 됐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좀 있으면 트럼프가 대통령 자리에 오를 텐데 메릴 스트립 언니는 괜찮으려나.

그 순간 또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아참, 거긴 블랙리스트 같은 거 없지요? 안타깝게도 이곳은 한국입니다. 메릴 스트립의 수상과 '라라랜드'의 7관왕 소식이 전해진 오늘의 TV엔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 생중계도 나옵니다. 주무 장관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했습니다. "그간 논란이 된 블랙리스트 문제로 문화예술인은 물론 국민들에 심대한 고통과 실망을 야기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정치·이념적인 문제로 특정 예술인들을 지원에서 배제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미 분노했고 이미 짐작했던 일이지만 실토를 듣고 나니 허탈하고 씁쓸합니다. 개념소감을 개념소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걸 어쩌나 마음졸이던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남의 나라 시상식을 챙겼나 자괴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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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록|roky@mtstarnews.com 트위터

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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