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무비]'너의 이름은', '모아나'와 비교하니 더 아쉬운 까닭은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1.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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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너의 이름은.', '모아나' 포스터


일본과 미국의 강력한 애니메이션 두 편이 한국 극장가를 찾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그리고 디즈니의 신작 '모아나'입니다. 둘 모두 청량한 푸른 빛이 눈을 사로잡는 수작인 데다 이미 자국에서 대박을 낸 흥행작입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다른 점도 있습니다.

'초속 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연출한 '너의 이름은.'은 자고 일어나면 몸이 뒤바뀌는 도쿄 소년 타키와 시골 소녀 미츠하의 이야기입니다. 청춘 로맨스물은 외피일 뿐 거대한 재난이 이들에게 닥칩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붉은 무스비(結び, 매듭)로 이어진 두 사람이 결코 만날 수 없던 서로를 그리워하며 찾아가는 과정이 아름답고도 뭉클하게 그려집니다. 일본에선 신드롬 가까운 열풍 속에 1717만 관객을 동원,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2위에 올랐습니다. 한국에서도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며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 6개국 박스오피스 1위란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빼어난 만듦새에 동의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싶습니다. '빛의 감독'이란 별명이 절로 나온 게 아님을 입증하는 감독 특유의 영상미가 눈길을 붙듭니다. 거리와 자연을 정교하게 옮겨 수채물감 같은 맑은 색채를 더한 곳곳의 풍경은 찾아가고 싶을 만큼 영롱합니다. 어디 비주얼뿐인가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이야기 또한 흡인력이 강합니다. 무력하게 수백의 목숨이 수장되는 걸 지켜본 트라우마를 지닌 한국의 관객이 이에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습니다. '너의 이름은.' 속 소년 타키와 소녀 미츠하는 너무나 예전에 많이 본 모습입니다. 바꿔 말해 오래 보아 온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농구를 잘하는 시크한 도시 소년 타키, 섬세하고 다소곳한 미츠하는 틀에 박힌 남녀 캐릭터를 답습합니다. 미츠하가 타키 덕에 거친 모습으로 동성들의 선망을 받고, 반대로 타키가 미츠하의 아기자기한 면모로 이성에게 어필하는 대목마저도요. 드라마가 급물살을 탄 이후에도 그 역할엔 큰 변화가 없습니다.

'너의 이름은.'과 '모아나'를 나란히 두고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합니다. 과거 왕자님 기다리는 공주님 이야기를 열심히 만들었던 디즈니는 이후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며 달라진 시대, 성 역할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모아나'는 그 최신작입니다. 다갈색 피부의 다부진 소녀 모험가는 왕자와의 로맨스를 거부했던 '겨울왕국' 속 마론인형 같은 백인 공주님에서 한 발 더 나갑니다.


모아나는 태평양의 섬에서 태어나 모험을 꿈꾸는 여성입니다. 섬에 머물며 살라는 아버지 때문에 좌절도 겪지만, 저주에 걸린 섬을 구하기 위해 미지의 바다로 떠납니다. 나서길 망설이는 전설의 영웅 마우이를 다독이고 설득하는 것도 모아나입니다. 자신은 공주가 아니라면서 "난 모투누이의 모아나다"라고 거듭해 스스로를 선언하는 모아나에게선 바다의 진취성과 땅의 생명력이 넘실댑니다. 그런 모아나의 멘토 또한 여성인 할머니입니다.

'모아나'의 감독 론 클레멘츠와 존 머스커는 앞서 디즈니에서 '인어공주'(1989)와 '알라딘'(1992)을 공동 연출했습니다. '인어공주'의 에어리얼은 왕자님을 만나려고 목소리까지 내어 주고 고향 바다를 떠났습니다. '알라딘'의 자스민은 디즈니의 공주이면서도 히로인에 머물렀습니다. '모아나'는 이들과 확연히 다릅니다. 같은 감독이 묘사한 애니메이션 속 여성의 모습이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바뀌었습니다.

혹자는 '너의 이름은.'에서 보인 전형적인 남녀 묘사가 일본 청춘 애니메이션 특유의 설정 혹은 문법일 수 있다고도 하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렇게만 해야 하나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원령공주',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등, 디즈니뿐 아니라 재패니메이션도 그간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들을 여럿 탄생시켰습니다. '너의 이름은.' 속 전형성에 갇힌 여성 묘사는 실로 오랜만에 나타난 흥행 재패니메이션이기에 더 아쉽습니다. 포스트 하야오로 평가받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라지만 이 부분에선 아직 멀었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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