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가 블랙리스트 희생양? 아카데미 후보 선정 뒷이야기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1.03 15:30 / 조회 : 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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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가 정말 블랙리스트의 희생양이었을까요? '아가씨'가 미국 각종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자 영화계 안팎에서 말들이 많습니다. 영진위에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한국 후보작으로 '밀정'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밀정'이 외국어영화상 예비 후보에도 못 오른 반면 '아가씨'가 미국의 각종 시상식에서 잇따라 수상소식을 전하자 이래저래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밀정'보다 '아가씨'가 더 좋은 영화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한 번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조차 오른 적이 없었기에, '아가씨'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는 아쉬움 탓입니다. 영진위가 소통의 부재와 정책의 실종, 위원장과 특히 사무국장의 전횡으로 도마에 올랐기에 더욱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가씨'가 박찬욱 감독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소리까지 나옵니다.

글쎄요? 아쉬움이 남더라도 불필요한 오해까지 덧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당했다면 정작 '밀정'은 뽑힐 수조차 없었을 겁니다. '밀정' 제작자 최재원 워너 브라더스 로컬 프로덕션 대표가 '변호인'을 만든 사람이니깐요. 그 '변호인'입니다. 누구 눈 밖에 나서 여러 사람 잡았다는 그 '변호인' 입니다. '밀정' 주인공 송강호는 '변호인' 주인공이기도 하죠. 그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고 알려졌죠.

만일 정권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뽑았다면 '인천상륙작전'이 됐을 것입니다. 이번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영화 후보로 신청한 영화들은 '밀정' '우리들' '아가씨' '인천상륙작전' '4등' '부산행' '덕혜옹주' '철원기행' 계춘할망' '돌연변이' 등 총 10편입니다. '곡성' '터널' 등은 신청을 안 했습니다.

이들 영화 중에서 심사위원 다섯 명이 '밀정'을 선택했습니다. 영진위가 '밀정'을 정한 게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정한 것이죠.

심사위원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학순 감독('연평해전'), 박현철 촬영감독('미스터고', '국가대표', 한예종 교수), 원동연 대표('광해' '미녀는 괴로워' 제작) 김선엽 교수(영진위원.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노혜진 기자(스크린인터내셔널 아시아부국장).

심사위원들은 심사과정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씁니다. 때문에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이번 심사과정을 살폈습니다. 먼저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면 각 신청작들의 스크리너와 미국 배급 계획 자료를 받습니다. 검토를 하고 오는 심사위원도 있고, 그냥 오는 심사위원도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튼 이번 심사위원들은 신청작들 중에서 '밀정'과 '우리들'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합니다. 합의 과정에 따라 다르지만 심사를 할 때 합의를 통해 결정하고 배점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고, 배점표를 작성한 다음 합산해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전자였던 것 같습니다.

'밀정'과 '우리들'로 의견이 갈렸지만 '우리들'이 한국에서 5만여명 밖에 관람을 안 한 게 지적됐답니다. 반면 '밀정'은 독립운동을 다뤘고, 무엇보다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한 게 높은 점수를 받았답니다. 송강호가 아카데미 회원인 점도 플러스 알파가 됐다고 합니다. 한국 최고 영화를 가리는 게 아니라 미국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접근성이 높은 영화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아가씨'는 처음부터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는 전언입니다. 한국영화 후보로 올리기에는 왜색이 짙다는 점, '핑거스미스'가 원작이라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진다는 점 등이 지적됐답니다. 심사위원들의 속내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아가씨' 레즈비언 코드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속내를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그랬답니다. 김민희의 스캔들도 논의조차 없었답니다. 심사위원들의 성향과 박찬욱 감독, 또는 '아가씨'가 안 맞았다는 게 중론인 것 같습니다.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말들이 쏟아지는 건, 영진위의 불투명한 행정 탓입니다. 영진위는 그간 아카데미 외국어상 한국후보 심사위원을 선정작 발표와 동시에 공개했습니다. 그랬던 것을 2012년부터 비공개로 바꿨습니다. 불통의 시대와 신기하게도 겹칩니다.

영진위에선 개인정보 공개와 관련된 요건이 강화되고 심사위원들이 사후에 항의를 많이 받는다는 이유로 비공개로 전환했다고 밝혔습니다. 말이 안 되죠. 심사위원을 사전에 공개한다면 청탁 의혹을 받을 수 있겠지만 사후에는 공개하는 게 투명한 절차인 게 분명합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시나리오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시'가 당시 영진위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에서는 0점을 받아 탈락하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서도 떨어지지면서 이런저런 논란이 일자 그 뒤부터 비공개로 슬그머니 바꾸려 했다는 말들도 흘러나옵니다.

사실 심사는 심사위원을 선정하면 바로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결과가 예측됩니다. 공통된 성향을 가진 심사위원들이 과반수를 넘으면,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심사위원이 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론 다수의 뜻을 쫓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만큼 심사위원 선정이 중요합니다.

영진위는 그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영화 심사위원들을 각 영화단체와 내부 추천으로 선정했습니다. 매해 추천된 사람들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구요.

그런데 지난해부터 심사위원 후보 온라인 등록 시스템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영화산업 관련 분야 5년 이상 경력자, 박사학위 소지자, 석사(학사) 이상 소지자로 3년 이상 경력자면 본인이 직접 온라인에 심사위원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입니다. 본인이 심사위원을 하겠다고 직접 등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데이터베이스는 제로 베이스로 만들었구요.

심사위원을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등록하는 사람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쌓인 데이터베이스를 제로로 만들고, 자발적으로 등록하는 사람들만을 심사위원 풀로 활용하면, 아무래도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등록된 사람들 중에서 무작위로 돌려서 번호가 나온 순서대로 전화를 해서 참여 의사를 묻습니다. 그렇게 심사위원으로 선정을 합니다. 기계적이죠. 기계적인 공정함을 추구합니다. 이런 방식은 권위를 쌓기도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니 투명성 논란도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영진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기로 방침을 바꿨다고 합니다. 오비이락이겠지만, 마침 문제의 사무국장도 해임됐습니다.

합리적인 절차와 투명성, 그리고 시스템. 결국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운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사람입니다.

부디 2017년에는 이런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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