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컨텐츠 강원FC로 '대한민국 행복 리셋' 꿈꾼다"

[김재동의 만남] 강원FC 조태룡 대표..이근호부터 정조국까지 '영입 퍼레이드'의 주인공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7.01.0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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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FC 조태룡 대표./사진= 김창현 기자


피카소가 말했다. “I am not strange. I am just not normal.(난 이상한게 아니다. 평범하지 않을 뿐이다).” 피카소가 항변할만큼 그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강원FC 조태룡(52) 대표이사도 말한다. “전 당연한 일을 하는 겁니다. 근데 파격적이라니 저도 좀 헷갈리네요.”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탄핵정국속에서도 프로축구단 강원FC가 독자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4년만의 클래식 복귀보다, ‘낯선 이’ 조태룡 대표의 ‘낯선 행보’때문이다. 이근호부터 정조국까지 이어진 알짜 선수 10인의 영입 퍼레이드. 2016년 12월의 아침 7시를 강원 FC의 ‘오피셜 타임’으로 각인시킨 강원FC와 조대표의 행보는 ‘시도민구단’이란 태생적 한계탓에 우려의 비중이 높은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17시즌 프로축구판의 가장 핫한 인물로 기대되는 조태룡 대표를 2016년 12월 23일 만났다. 초면의 그는 친근했다. 다변(多辯)이고 달변(達辯)이었으며 웃음이 투명했다.

-영입퍼레이드가 놀랍다. 아울러 예산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문제가 생기리라곤 보지 않는다. 챌린지에서 보낸 2016시즌 예산이 86억원이었다. 그리고 아직 마감이 끝나지 않았지만 그중 약 65억원 전후로 쓴 걸로 알고있다. 2017년엔 클래식이란 큰 시장에서 뛰게 된다. 챌린지적 예산의 두배만 돼도 170억 수준이다. 현재로서는 내년도 150억원 수준이면 탈없이 보낼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예산에 대한 우려는 기우일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구체적인 예산 조달 계획을 들을 수 있나?

상대방이 있는 문제다 보니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분명한 것은 신발 닳도록 스폰서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으며 성과를 거두고 있고 그래서 ‘예산에 대한 우려는 기우’라고 장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10건의 영입을 두고 현장의 반응은 어떤가

최윤겸 감독님께서 고맙게도 재무적 측면을 많이 걱정하신다. 그래서 ‘이런 선수 어떠십니까?’ 여쭤보면 ‘그런 선수도 가능합니까?’라고 반문하시는 편이다. 감독님께는 누차 경기에만 신경쓰시면 된다고 말씀드린다. 최감독님은 지난 9일부터 19일까지 파주NFC에서 AFC의 P급 지도자 교육을 받으셨다. AFC가 내년 시즌부터 P급 자격증이 없는 이들의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을 제한하기 때문인데, 한동안 못뵙다가 최근에 뵈니 ACL 감독급의 아우라를 뿜고계셨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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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FC 선수단.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강원FC의 2017시즌은 어떨 것이라 보는가? 그리고 K리그 전체의 전망은?

우리는 ACL을 간다. 그리고 감히 말씀드리지만 강원FC가 시발이 돼서 K리그 전체도 많이 발전하리라 본다. 강원 때문에 관중이 늘 것이고 우리 구단을 벤치마킹하려는 구단이 늘것이며 그런 식으로 시장이 계속 커질 것이다. 앞으로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안에 프로야구를 따라잡을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그렇게 K리그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는 근거는?

시장이 크다. 야구는 수출지가 미국 일본 정도로 한정되지만 축구는 아프리카 시장까지도 확장성이 있다. 각 구단이 스포츠 컨텐츠 제작자로서 각성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이런 사업이 없다. 넥센이 박병호를 150억원에 팔았는데 일반 기업의 경우 150억원의 순이익을 내려면 1조 규모의 매출을 달성해야한다. 함부르크가 첫해 연봉 9억원으로 추정되는 손흥민을 레버쿠젠으로 넘길 때 이적료로 1000만유로(당시 약 136억원)를 챙겼다. 2년후 레버쿠젠도 3000만 유로(당시 약 408억원)를 받고 토트넘에 손흥민을 넘겼다. 신용장도 필요없는 사업이다.

-참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이력을 간단히 소개해준다면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서 동부제강에서 무역업무를 보았다. 30대 초반 과장 무렵였는데 당시 연봉이 1800만원였다. 그보다는 더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몸값이 궁금했다. 그러다 푸르덴셜측과 연이 닿았다. ‘자신의 연봉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대목이 맘을 움직였다. 이미 결혼을 했을 때고 당연히 집에선 난리가 났지만 설득해서 1997년 이직했다. 제일 먼저 한 게 남대문시장에서 침낭을 산 것이다.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주말에만 집에 갔다. 내가 죽도록 일했을 때 내 몸값이 얼마나 될지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 몸값이 얼마나 됐는지?

많았다. 월급이 일반 연봉자 몇 년 치 정도 됐다. 그전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알기 쉽게 보험설계사로서 세무조사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것도 죽음을 담보로 한 종신보험 하나만 팔아서 거둔 성과였다. 6년간 2000 여 명에게 20년 할부 2억 정도의 상품을 팔았다. 보험업계 최단기 최다매출인 것으로 안다.

-적을 옮긴 1997년이면 IMF 때다. 있는 보험도 해약하던 시절에 그런 성과를 낸 게 놀라운데 비결이 있다면?

별건 없다. 1대1로 만나 고객이 살아온 삶의 얘기 다 듣고 ‘당신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로부터 시작해 그 사람이 가족 안에서 사라졌을 때 그 가족을 보호하는 내용을 설명한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과 틀려요’란 반응들을 보였다. 물론 무엇이 다르다는 건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푸르덴셜 이후엔?

2003년 어느날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푸르덴셜 생명 조태룡입니다”고 언제나처럼 답했더니 뜻밖에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님이셨다. ‘당신을 뽑고싶다’는 말을 듣고 교보생명 압구정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년후엔 다시 삼성생명으로 옮겼다. 교보와 삼성으로의 이적은 국내 업계최고인 회사의 시스템은 어떠한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성에서 2년을 보낸후 대학동기인 이장석씨의 요청으로 프로야구에 발을 디뎠다.

-지난 3월 넥센을 떠나 낯선 축구단에 발을 디딘 배경은?

같은 일을 7년쯤 하다 보니 지루해진 측면이 있다. 축구라는 장르가 궁금하기도 했고 사실은 구단 인수에 관심이 있었다. 강원FC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을 내렸을 때 최문순지사님으로부터 경영정상화를 시켜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렇게 강원FC를 맡아 경영 정상화하는 데는 4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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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FC 조태룡 대표./사진= 김창현 기자


-승승장구한 인생으로 보인다. 만면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인생에 뼈아팠던 순간은 없었나?

항상 제가 생각한 대로 세상이 바뀌었던 것 같다. 보험으로 옮기니 '방카슈랑스(프랑스어로 은행(banque)과 보험(assurance)의 합성어, 2003년부터 국내 도입된 종합금융서비스)의 시대'가 열렸고 넥센에 400만 관중 때 왔는데 이후 중계권료는 10배 이상 늘고 관객도 두배 이상 늘었다. 강원FC를 맡고 나선 한 시즌만에 클래식으로 다시 복귀도 하고.. 하지만 아픈 시절이 왜 없었겠나. 서른아홉이던 2003년 임파선암 말기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유서를 썼고 7시간 수술을 받았다. 다음 해에 다시 재발해 또 수술대에 올랐다 (그의 목부위엔 20여cm 정도의 수술자국이 남아있다). 1년 사이에 두차례나 인생이 리셋된 셈이다. 고통이 없을 순 없었다. 2년간의 투병기간은 너무 괴로웠다. 목부터 머리까지 오른쪽은 신경을 다 뜯어내서 감각이 없다. 아내에게도 뽀뽀는 왼쪽 볼에만 하라고 한다. 이렇게 인생이 리셋 되고 보면 웃음이 흔해질 수밖에 없다. 발병 전엔 '죽도록 일하자. 죽도록 했을 때 내 몸값이 얼마까지 오르는지 보자'가 인생을 대하는 자세였다. 그리고 '죽도록 일하면 죽을 수 있구나'를 확인했다. 그 다음엔 '죽도록 즐기자'로 바뀌었다. 2000년대 초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45세 은퇴를 천명했었다. 내가 넥센으로 옮긴 것은 나로선 은퇴였다. 은퇴해서 넥센의 구단주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지금도 난 은퇴상황이라 생각한다. 난 여생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야구도 그렇고 축구도 그렇고 은퇴 후에 특히 스포츠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는가

스포츠는 참 행복한 게임이다. 리셋되기 전의 삶에 대해 난 불만이 없다. 하지만 내 주변조차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대학 다니는 딸아이의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을 난 알지 못한다. 당연히 관계도 매끄럽지 않았다. 넥센 단장으로 있으면서 딸아이와 처음 야구를 보았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우린 나란히 앉아서 같은 팀을 응원했다. 끊임없이 눈을 마주쳤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박병호가 홈런을 쳐 경기가 역전됐을 때 한목소리로 소리쳤고 부둥켜안았다. 해묵은 어색함이 그렇게 한순간에 스러져가는 걸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그날 이후 우리 부녀는 아주 가까워졌다. 그전에 몰랐던 가족애를 이제는 절절히 느낀다. 그래서 예전보다 훨씬 풍부하고 충실한 행복을 누린다. 이런 컨텐츠를 대한민국에 전파하고 싶다. 컨텐츠 제작자로서 최선을 다해 시민과 국민들에게 전파할 생각이다. 이 컨텐츠를 키워 대한민국 전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지수 높은 국가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 아무리봐도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가장 큰 효과를 줄 수 있는 게 스포츠인 것 같다.

-인생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다양한 경험을 많이들 했으면 좋겠다. 세상은 너무 재밌는 게 많다. 매일같이 좋은 노래와 좋은 영화가 나온다. 좋은 걸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100세 시대를 맞아 직업도 한 10가지쯤 가져볼 생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서른 살에 의사 돼서 100살까지 의사만 한다면 너무 지루할 것 같다. 왜 태어났을까 묻는다면 전 즐기러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항상 “놀아. 6시면 다 퇴근해. 취미가 직업이 아니면 그만두고”라고 말한다.

-마침 그 대목에서 조대표의 핸드폰이 울린다. “어, 그래?” 반색하더니 송신구를 막고 내용을 일러준다. “오늘 하루만 연간회원권이 350장 팔렸다네요. 6시 현재. 지난 시즌내 100장밖에 못팔았었거든요” “어 수고했고, 근데 지금 6시 넘었잖아. 왜 아직까지 남아있어. 빨리 들어가”한다. 인터뷰어까지 찔끔하게 만드는 단호함. 조태룡대표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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