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영비법 개정안 발의, 교각살우? 현실 대안?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11.0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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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국민의 당 공동대표/사진=홍봉진 기자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배급업 겸업을 규제하는 법안 2건이 동시에 발의됐다. 법안이 시행되면 CJ E&M, 롯데시네마 등 배급업과 영화상영업을 겸임하는 대기업들이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한다. 산적한 문제들이 남아 있어 시행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법안 발의로 이 문제가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지난달 31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대기업의 영화상영업과 배급업 겸업을 규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도 안 의원의 입법과 유사한 내용의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 법안은 대기업이 배급과 상영을 겸할 수 없게 하는 한편,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점 방지, 예술 독립영화 전용상영관 지원 확대 등을 골자로 한다. 안철수 의원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제협)와, 도종환 의원은 참여연대와 이번 법안을 같이 준비했다.

대기업 영화상영업과 배급업 겸업을 규제하는 영비법 개정안은 2013년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협의 의뢰로 발의하려 했으나 영화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발됐다. 이후 제협은 꾸준히 영비법 개정안을 위해 애를 써왔다. 이번 영비법 개정안은 유력 대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는 점에서, 실제 발효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영화계에선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두 중견 의원이 영비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기에, 어느 때보다 예의주시하고 있다. 상징적인 발의에 그칠지, 실제 법안이 개정될지, 개정된다면 어느 정도 파급력이 있을지, 설왕설래하고 있다.


영비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CJ E&M은 CGV를 매각하거나 영화 배급업을 포기해야 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도 롯데시네마를 매각하거나 영화 배급업을 포기해야 한다. 한국영화산업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안철수 의원 등이 발의한 영비법 개정안은 미국 파라마운트 판결을 모태로 한다.

파라마운트 판결이란 1948년 미연방 대법원이 메이저 스튜디오의 극장 소유에 대해 수직적 통합은 독과점 우려가 있다고 판단, 이를 금지하고 소유 극장을 매각하도록 명령한 판결을 말한다. 이 판결을 되짚는 이유는, 이 판결 이후 미국영화산업에서 벌어진 일이, 한국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을 짚기 위해서다.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 미국 영화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당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화가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TV도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영화 외에 즐길 거리가 많아진 것. 이런 상황에서 파라마운트 판결은 영화산업 위기에 방아쇠 역할을 했다. 스튜디오들이 안정적인 상영망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안전한 장르 영화에 집중, 제작편수가 줄었다. 투자가 줄었다. 극장을 사들인 측에선 수익을 늘리기 위해 극장요금을 올렸다. 제작편수 감소와 티켓 가격 상승은, 사람들이 TV로 이탈하는 속도를 가속화 했다. 영화산업은 크게 위축됐다.

지금 한국에서 영비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롯데 엔터테인먼트는 극장 대신 배급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롯데그룹이 부동산 매각에는 워낙 신중한 탓이다. 배급업을 포기하게 되면 자연스레 투자도 접게 된다. 배급을 못하는 데 투자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4대 메이저 투자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극장업 외에는 활동을 접을 가능성이 있다.

CJ E&M은 콘텐츠 사업에 더 주력하기에, 투자배급업을 포기하는 대신 CGV를 매각할 확률이 높다. 이 경우 CGV가 덩치가 크기에 조각조각 내서 팔거나, 통째로 팔게 된다. 조각 내서 팔 경우, 장사가 잘 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의 편차가 크다. 때문에 장사가 잘 되는 곳은 구매처가 제법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부동산으로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으로 매각되는 극장 직원들은 해고된다. 대기업이 남 주기는 아깝고 가지고 있기에는 부담스러울 때 쓰는 행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CJ 오너 일가 혹은 임원이 펀드를 조성해 장사가 잘 되는 일부 CGV만 구입해 별도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 경우 대기업 겸업 금지 실효는 사라진다.

CGV를 통째로 매각할 경우, 한국 기업에서 사기란 마땅치 않다. 기업이 거금을 들여 유통(배급)을 포기하고 매점(극장)만 갖고 있을 만큼 극장사업이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기업, 특히 중국기업에서 눈독을 들일 수는 있다. 미국 극장을 사들이고 있는 완다 그룹 같은 중국기업이 한국 영화시장 진출을 위해 CGV를 살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사든, 중국 기업이 사든, 극장 요금 인상은 자연스런 수순이다. 돈을 들인 만큼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극장 요금은 세계 각국보다 싸다. 2013년 스크린 다이제스트 미디어 리서치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극장 요금은 일본과 호주,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미국보다도 낮다.

영비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한국 영화산업이 과거 미국처럼 위기를 겪을지는 미지수다. 환경도 다르고, 변수도 많다. 다만 어느 정도 위축되는 건 불가피할 전망이다. 투자가 줄고, 극장요금이 오르는 게 불가피한 탓이다.

파라마운트 판결이 새드엔딩은 아니다. 침체기를 겪던 미국 영화산업은 활로를 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다가 아메리칸 뉴시네마라는 전기를 맞았다.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어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영비법 개정안을 찬성하는 한국 영화인들 중에선 한국영화산업도 위기를 겪겠지만 뉴시네마라는 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미국 영화 산업 규모와 한국 영화 산업 규모가 달라 위기를 극복할 여력이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다.

한편으론 미국 영화산업이 다시 성장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80년대 중반 파라마운트 판결이 사문화돼 대기업이 배급업과 상영업을 다시 겸업할 수 있게 된 것도 빼놓을 순 없다.

영비법 개정으로 이런 대 변혁을 겪게 되지만 정작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느냐면, 그것도 확신할 수 없다. 오히려 흥행이 잘 되는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현상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도 대기업보다 개인사업자가 스크린 몰아주기를 더 많이 한다. CJ E&M이 투자배급한 '인천상륙작전'이 개봉한 첫 주 토요일인 2016년 7월30일, CGV 직영점에서 '인천상륙작전' 스크린 점유율은 22.1%였다. 위탁점은 25.3%였다. 같은 날 롯데시네마 직영점 '인천상륙작전' 스크린 점유율은 20.6%, 위탁점은 21.2%, 메가박스 직영점은 19.0%, 위탁점은 20.3%였다.

대기업 직영점이 위탁점보다 더 많기에 두드러져 보이진 않지만, 스크린 몰아주기는 개인 사업자가 더 많이 한다. 큰 규모 사업을 할 수 없는 개인이, 돈을 벌 수 있을 때 한 몫을 챙기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도 그런데 극장을 매각하게 되면, 사들인 쪽에선 수익을 올리기 위해, 흥행몰이를 하는 영화에 더 많은 스크린을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 영비법 개정안에는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점을 방지하고, 예술 영화 및 독립영화 전용상영관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스템에서 이런 방안을 쓰지 않고, 왜 굳이 대기업의 배급업과 상영업 겸업을 금하면서 그렇게 해야 할지 의문이 남는다. 스크린 독점 방지와 예술영화 전용관 지원은 영화계 합의도 쉬워 실행 가능성이 큰 반면, 대기업 배급업과 상영업 겸업 금지는 시행까지 넘어야 할 산이 워낙 많다. 큰 걸 바로잡으려다 정작 발밑을 놓치게 되기 쉽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의원이 발의한 영비법 개정안에는 고용 승계에 대한 배려가 없다. 예컨대 CGV가 매각될 경우, 직원들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대책이 없다. 안 의원이 발의한 영비법 개정안은 소유권을 제한하기에 상위법과 충돌 여지가 있다. 위헌 소지가 있다. IMF 시절 빅딜이란 예외가 있었기에 이 부분은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고용 승계에 대한 대책이 없는 법안은 아쉽다.

안철수 의원의 영비법 개정 발의에 제협은 반긴다. 그간 대기업의 배급업과 상영업 겸업 금지를 꾸준히 논의해온 제협 관계자는 "이번 발의가 공정한 영화 시장 환경 조성에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CGV와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은 "아직 발의만 됐을 뿐 법안이 발효된 게 아닌 만큼 지켜보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안철수 의원은 유력 대선주자다. 그런 대선주자가 대표 발의한 만큼 이번 영비법 개정안은 어느 때보다 무게감이 실린다. 그런 만큼, 더 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자칫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영비법 개정안이 발효될 수 있을지,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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