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과 신해철, 개념 연예인이 사라진 시대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10.2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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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과 신해철/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제동은 한때 개념 연예인이라 불렸다. 이제는 폴리테이너라 불린다. 그 사이가 까마득하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 김제동이 국감에서 화제였다. 그는 지난해 7월 한 방송에서 "방위병 근무 시절 장성들이 모인 행사에서 사회를 보던 중 4성 장군의 부인을 아줌마라고 불렀다가 13일간 영창에 갔다"고 말했다. 방송 이후 딱히 화제가 되지 않았던 이 일화가 1년 2개월 만에 화제가 된 건 국방위 국정감사장에서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이 꺼내 들었기 때문. 백승주 의원은 김제동의 이 같은 방송이 군을 모독한 행위라며 국정감사 증인으로 세울 것을 주장했다.


이에 김제동은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제동은 "만약 국정감사에서 나를 부르면 언제든지 협력하겠다. 단 나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했다. 결국 국정감사 자리에 연예인을 불러서 묻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며 김제동의 증인 채택은 무산됐다.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던 이야기는 한 시민단체가 김제동을 고발하면서 법정까지 이어지게 됐다.

김제동은 일련의 일들에 "죄는 없지만 청와대 어떤 분과는 달리 부르면 언제든 어디든 가겠다"며 다시 날을 세웠다. 그는 "주위에서 힘내라고 하는데 사실 별로 힘들지 않다"며 "앞으로도 절대 입을 다물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또 "권력에 대한 풍자는 우리 광대들의 오랜 전통이다. 그런 거까지 뺏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김제동이 화두가 되면서 폴리테이너 공방이 불거졌다. 김제동을 폴리테이너로 규정하며 그의 말에 여러 의미를 둔다. 김제동이 정치인으로 출마하려 저런 말들을 한다는 둥, 김제동이 정치적인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연예인으로 수명을 늘리고 있다는 둥, 김제동이 특정 정파에 줄을 대고 있다는 둥, 연예인 주제에 이런저런 정치 사안에 일일이 토를 다는 게 본분에 맞지 않다는 둥 여러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폴리테이너란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 작게는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는 연예인부터 더 나아가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이용하여 선거에 출마해 정치적 지위를 획득하는 연예인을 말한다. 한국에서 폴리테이너는 좀 더 좁은 의미로 쓰인다. 특정 정파의 이익에 부합되거나, 특정 정파에 해가 된다고 믿어지는 연예인을 뜻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폴리테이너는 이순재, 최불암, 강부자, 정한용 등 현실정치에 참여한 연예인이어야 정확하다.

하지만 이들에겐 폴리테이너란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특정 정파의 이익에 부합되지도, 해가 되지도 않는 탓이다. 김제동이 폴리테이너라고 불리는 건 특정 정파의 이익에 부합되거나 해가 된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김제동은 과거 개념 연예인이라 불렸다. 개념 연예인에서 '개념'은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칭하는 인터넷 용어인 '개념 있다'에서 왔다. 그러니 개념 연예인이란 옳고 바른 목소리를 내는 연예인을 뜻한다. 개념 연예인이라 불리던 김제동이 폴리테이너로 불리게 된 건, 그의 개념이 누군가에겐 이익으로 누군가에겐 불이익으로 작용된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믿어지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때 개념 연예인이 넘쳤다. 이런저런 사회 현상에 분명한 목소리를 냈던 연예인들이 제법 많았다. 유기견 돕는 일부터 쌍용차 사태까지 말을 보탰던 이효리,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 수입하다니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낫겠다”는 글을 올렸던 김규리 등등 여러 연예인들이 개념 연예인이라 불렸다. 소셜테이너라고도 불렸다. 칭송을 받았든, 비난을 받았든, 한때 개념 연예인이자 소셜테이너가 차고 넘쳤다.

그 많던 개념 연예인과 소셜테이너는 이제 대부분 사라졌다. 지난 대선 이후 사라졌다. 이들이 개념연예인이자 소셜테이너로 활동할 수 있었던 공간은 SNS였다. 트위터였다. 지난 대선 이후 분명한 목소리를 내던 많은 연예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트위터를 떠났다. 그러면서 개념 연예인에 대한 개념도 바뀌었다.

과거에 개념 연예인이 사회 현상에 분명한 목소리를 냈던 연예인을 지칭하던 것에서 지금은 봉사, 기부, 선행을 하는 연예인이란 뜻으로 바뀌었다. 그러니 지금 개념 연예인이란 좋은 일을 하되 특정 정파의 이익과는 무관한 연예인을 뜻한다. 이런 개념 연예인은 사회 현상에는,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는 가급적 입을 다문다는 특성이 있다. 과거 개념 연예인과는 분명히 다르다.

김제동이 화제가 되면서 다른 개념 연예인을 본받으라는 소리도 제법 높다.

지금 개념 연예인을 두둔하면서 지금 폴리테이너를 비판하는 건, 연예인은 정치적인 사안에 입을 다물고 그저 좋은 일을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연예인에게 선행이란 재갈을 물리는 것과 다름 없다.

김제동은 폴리테이너인가? 소셜테이너인가? 개념연예인인가? 폴리테이너라면 나쁜 것인가? 연예인은 정치적인 사안에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에선 어떤 계층이든, 어떤 계급이든, 정치 참여에 자유롭다. 연예인이라서, 딴따라라서, 정치에는 입을 다물라는 사고방식은 19세기에서나 가능한 소리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일찍이 다듬어진 나라일수록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가 자유롭다. 19살인 클레이 모레츠는 이번 미국 대선에 일찌감치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인 로버트 드니로는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에 펀지를 날리고 싶다”고까지 했다. 클레이 모레츠나 로버트 드니로는, 자신들의 정치 성향 때문에 폴리테이너라고 지탄을 받지 않는다. 어떤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든, 현실 정치에 참여하든,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란 전통이 분명하다.

한국은 다르다.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연예인이 정치적인 사안에 목소리를 내면 곧장 비판의 목소리가 날라 든다. 그런 연예인들을 특정 정파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한다. 종종 폴리테이너란 낙인을 찍으면서 활용한다.

폴리테이너가 옳은가 그른가란 논의는 무의미하다. 그런 논의는 연예인은 정치 참여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연예인들은 SNS에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걸 먹었는지를 올린다. 더 이상 SNS에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글을 남기지 않는다. 누구를 돕는 선행, 얼마를 기부했다는 미담은, 대체로 소속사를 통해서 전해진다. 가끔 도움을 받는 단체들이 직접 밝힌다. 이런 연예인들은 개념 연예인으로 칭송받는다. 의미 있다. 이미지 메이킹이든, 천성이든, 좋은 일은 널리 알리는 게 마땅하다.

다만 과거의 개념 연예인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진보 성향 연예인이든, 보수 성향 연예인이든, 사회 문제에 침묵한다. 떠드는 연예인은 폴리테이너 취급을 받는다. 떠드는 연예인은 법정 공방에 휘말린다.

떠드는 사람 입에 재갈을 물리는 사회는 건전하지 않다. 특정 정파의 이익을 따져 연예인에게 폴리테이너란 낙인을 찍고, 착한 연예인이기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건전하지 않다.

마침 27일은 신해철의 2주기다. 그는 세상을 향해 입을 열고 크게 소리쳤다. 그의 부재가 아쉬운 건, 지금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는 탓이다. 지금은 21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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