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지 "가출소녀보다 10대 연기가 더 어려웠어요"(인터뷰)

제21회 BIFF '올해의 배우상' 수상자, '꿈의 제인'의 이민지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10.21 07:21 / 조회 : 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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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꿈의 제인' 배우 이민지 / 사진=이동훈 기자


"20대의 마지막 운이 다 여기에 쓰였나 봐요."

1988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29살. 부산에서 만난 이민지는 물결치는 갈색머리가 영화 속 깜장 단발머리와는 딴판이었다. 하지만 아이처럼 뽀얀 얼굴은 여전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BIFF) 주요 한국영화 초청작 중 가장 돋보이는 배우에게 선사하는 '올해의 배우상' 주인공. 하지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민지는 올해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주인공.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출품된 조현훈 감독의 '꿈의 제인'에서 가출소녀 소현 역을 맡아 극을 이끌었다. 누군가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가출팸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무표정한 소녀다. '응답하라 1988'에서 혜리의 친구이자 안재홍과의 로맨스 주인공인 '장만옥' 미옥이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그녀는 정반대나 다름없는 또 다른 10대가 되어 보는 이들을 아프게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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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꿈의 제인' 배우 이민지 / 사진=이동훈 기자


지난해부터 몇몇 드라마에 출연해 인지도가 크게 오르긴 했지만, 이민지는 이미 화려한 이력을 지닌 독립영화계의 스타다. 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 황금종려상을 탄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2013)', 벤쿠버영화제와 로테르담영화제에 초청됐던 조성희 감독의 첫 장편 '짐승의 끝'(2010), 베를린영화제 단편경쟁에 진출으며 부산영화제 선재상 수상작인 이우정 감독의 '애드벌룬'(2011) 모두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조연을 맡은 양효주 감독의 단편 '부서진 밤'은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 이번 '꿈의 제인' 또한 부산영화제 CGV아트하우스상 수상작이다.

"그래도 부산에서 제가 상을 탄 적은 없어요. 전혀 실감이 안 나요. 단편영화가 상을 받을 때는 대부분 기사로만 접하고 '축하드립니다' 했었는데 이게 제가 상을 탄다고 하니 현실감각이 사라진 느낌이에요. 큰 상인 줄 아는데 그만큼 실감이 안 나요. 이러다 못 받는 것 아닌가 싶어 '저 맞아요? 저 맞아요?'하고 계속 묻고 다녔어요. 더욱이 남자배우상은 ('꿈의 제인'에서 함께 한) 구교환이 받는다고 해서 불안했어요. 감독님은 감독님대로 '배우에게 상을 두개나 줬으니 나는 안 주겠구나' 해서 시상식에 안 가려고 하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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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꿈의 제인' 배우 이민지 인터뷰 / 사진=이동훈 기자


앳된 얼굴의 그녀도 이제 두 달 후면 서른이란 나이를 받아든다. 이민지는 "이전에 '짐승의 끝'을 찍으며 상대가 박해일이라 해서 '내 20대 운을 여기서 다 썼구나' 했는데, 이번엔 30대의 운을 여기에 다 쓴 게 아닌가 불안한 게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극 중에선 어디까지나 여고생뻘 10대다.

"가출 청소년을 연기하는 것보다 10대를 표현하는 게 힘들었어요. 지금은 제 나이대로 느껴지는데, 20대 초반엔 목소리에서 연륜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요. 가출청소년이고 다 필요없고 소현이가 10대로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감독님과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냈어요. 목소리를 아이처럼 내 보려고 연습도 많이 하고 앵앵거리는 느낌으로 톤도 좀 높였어요. 다행스러운 건 당시 '응답하라 1988'을 찍고 있었던 때라 머리스타일이 많이 도와줬어요. 그나마 외적으로 그렇게 접근할 수 있었죠."

교정기를 끼고서도 늘 당당하고 유쾌했던 '응답하라 1988' 속 미옥이와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 늘 이리저리 치이는 '꿈의 제인' 속 소현이 같은 시간 만들어졌단 건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민지는 "다행히 '응답'도 '꿈의 제인'도 10대라 심적으론 큰 부담이 없었는데 체력적인 부담이 컸다"면서 "'꿈의 제인' 현장에 가면 컷 하자마자 바로 드러누워 자곤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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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꿈의 제인'의 이민지 / 사진=스틸컷


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만은 없는 작품이었다. 조현훈 감독이 직접 조사한 가출팸(가출+패밀리의 합성어. 모여 사는 가출청소년 집단)의 실태는 어쩌면 영화 만큼, 혹은 그보다 더 암담했다. 이민지는 이를 연기로 표현하는 한편 함께 한 제인 역의 구교환이나 지수 역 주영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현이란 캐릭터는 감정 표현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다 표정도 무미건조한 인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나오는데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우려도 컸다.

"감독님이 '일부러 많이 자르고 민지씨 언굴로 다 때웠어요' 하는데 왜 그러셨냐 하니 '괜찮아요, 이해하실 거예요'라는 거예요. 걱정 많이 하면서 봤는데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참 못나게 나오는구나', 두번 째 든 생각은 '그래도 지루하지는 않겠다 다행이네' 였어요. 감독님이 컨트롤을 잘 해주셨어요. 지루해보이지 않고 무난하게 가는구나 싶더라고요. 상업영화 관객이 보시기엔 밋밋한 역할이잖아요. '이게 연기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 사이의 감정을 봐주셨구나 생각하니 안도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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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꿈의 제인'의 이민지(사진 왼쪽)과 구교환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민지는 함께 한 구교환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구교환은 소현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동반자인 트랜스젠더 제인 역을 맡아 '올해의 배우상'을 함께 수상한 터다. 단편 '뎀프시롤:참회록'에 각기 출연한 적이 있고 단편을 쭉 해오며 친한 교집합들이 생겼는데도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출작이나 배우로 출연한 영화가 너무 좋아서 한번쯤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 '꿈의 제인' 연락이 왔을 때도 상대가 교환 오빠라고 해서 무조건 같이 하고 싶다고 했어요. 같이 하며 친해지고 상도 같이 받아 너무 기분이 좋아요. 개인적으로 너무 팬이에요. 독립영화의 주성치잖아요."(웃음)

아직 차기작을 정해놓지 않은 이민지는 앞으로도 독립영화, 단편영화에 꾸준히 출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간 주목받은 여러 작품에 출연한 건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자신을 찾아주는 단편이 줄어 아쉽다고도 했다. "앞으로도 영화를 하고 싶지만 딱히 작품을 가리지 않는다"며 "이젠 '꿈의 제인'처럼 내적인 연기보다는 살짝 표출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이민지. 그녀의 또 다른 다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민지에게 '올해의 배우상'을 안긴 조민수의 심사평을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버려지는 게 두려워 겉으로 자 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림자처럼 맞춤형 인간으로 살아가는 소현을 만 들어 낸 이민지에게선 터져나올 앞으로의 연기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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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꿈의 제인' 배우 이민지 인터뷰 / 사진=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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