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몽' 장률 감독이 밝힌 '연기파 감독 3인과 영화 만들기'(인터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춘몽' 장률 감독 인터뷰

부산=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10.14 09:32 / 조회 : 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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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춘몽'의 장률 감독 / 사진=이동훈 기자


장률(54) 감독의 신작이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인 '춘몽'은 꿈결 같은 흑백영화다. '춘몽'은 재중동포 출신인 그가 늘 다뤄 온 온 경계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보는 내내 낄낄거리게 만드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여인을 좋아하는 한심하고도 사랑스러운 세 남자와 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한 여자가 이야기를 이끈다. 그 세 남자가 든든한 연기파 감독 양익준·윤종빈·박정범이요, 한 여자가 충무로가 사랑하는 뮤즈 한예리라는 사실은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영화제가 후반부에 접어든 지난 13일 오후 오후 부산 영화의 전당 비프힐에서 만난 장률 감독으로부터 그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침 이 날은 '춘몽'의 개봉일. 장률 감독은 '춘몽'의 시작은 평소 가까웠던 3명의 재능있는 감독이었다고 했다. 장편 데뷔작에서 연출력에 더해 징글징글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던 그들과 농담 반 진담 반 '셋이 같이 영화에 출연하면 재밌겠다'며 '내 영화에서 한 번 하자'고 답을 받아둔 게 몇 년 전이었다.

"그러고도 1년에 한두 번 그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러다 작년 말 어느 술자리에서 만났는데 그 셋이 '안 찍는 거냐, 농담이냐' 묻는 거예요. 나야 일단 확보를 해 놔야죠. 찍을 거라고 그랬더니 '자기네도 바쁜 사람인데 무작정 기다릴 수 없으니 시간을 정해주면 비워놓겠다'고 해요. '아 이거 정식으로 나가는구나' 했고, '추우면 힘드니 4월이 어떠냐' 해 '좋다' 하고 시간을 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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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쪽부터 윤종빈 박정범 양익준 / 사진='춘몽' 스틸컷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영화의 배경은 휘황찬란한 최신식 빌딩이 들어선 DMC 지척의 수색. 주민은 없고 직장인만 즐비한 DMC의 건물에 "이상하게도" 살고 있는 장률 감독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지하통로를 지나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옆 동네 수색을 오가며 사람 사는 느낌을 맛보던 터였다. 그 동네는 다소 거칠지언정 사람들부터가 "준비하지 않은 표정"으로 희로애락을 보여준다고 장률 감독은 말했다. 예의 바르지만 따뜻하지는 않은 DMC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는 주인공인 세 감독과 어울리는 질감을 생각하던 중 수색을 떠올렸다. 그는 "그 셋의 얼굴을 보면 그 동네에서 많이 보던 얼굴 같기도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엔 제목을 '삼인행'으로 하고 그 공간에 사는 친구들의 희로애락을 담으려 했는데, 남자 셋만 나온다 생각하니 아무래도 관객이 안 들 것 같았단다. 눈여겨보던 배우 한예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 배우 중에 김윤석과 함께 조선족 사투리를 가장 잘 한다고 생각해오던 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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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리 / 사진='춘몽' 스틸컷


"역할이 크지 않으니 며칠만 와 달라 했는데, 찍으면서 한예리 분량이 점점 늘어요. 그 셋이 '이거 우리 영화가 아니라 예리 영화네요' 그러더라고요. 한예리가 들어오니 사랑도 더 들어오지 않았겠어요. 그 공간에 사는 여자의 사연을 생각하다 우리 고향에서 오지 않았겠는가 했어요. 그렇게 딱 인물이 됐는데 그 셋이 계속 한예리를 따라다닐 것 같았고요. 어찌 보면 한예리 때문에 그 셋의 우정이 돈독해지지 않았겠나 했고요. 셋이 한예리를 쫓아다니며 의지하지만 한예리도 당연히 세 사람을 의지하죠. 그런 우정의 관계인데, 남녀의 우정에는 애매한 뭔가가 들어가잖아요. 이 셋은 아름답게 그 선을 안 넘지 않겠나 했어요. 따뜻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셋이 같이 있으면 선을 더 못 넘기도 하고.(웃음) 그렇게 사랑이야기를 만들었어요."

양익준의 영화 '똥파리' 같은 익준, 윤종빈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같은 종빈, 박정범의 '무산일기' 같은 정범은 모두 찍으면서 만들어졌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배우가 돼 뭉친 감독들이 장률 감독이 현장 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깜박하고 자기들끼리 이러쿵저러쿵하다 딱 걸린 적도 있었다. 총대를 매고 감독에게 올라가겠다는 양익준에게 무전기로 '올라오지 마'라고 했더니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죄송하다고 하더란다. "왜 불만이 없겠어요." 장률 감독은 웃으며 지난 이야기를 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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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춘몽'의 장률 감독 / 사진=이동훈 기자


"현장에서 굉장히 유쾌했어요. 너무 열심히 했고요. 제 눈엔 그렇게 보였는데 그 친구들은 다를 수도 있죠. 그 셋이 제각각 똑같은 이야기를 해요. 예전엔 감독으로 연출을 하면서 주연을 겸했던 건데 이번처럼 완전히 배우가 돼 주인공을 하는 건 다르잖아요. 셋이 똑같이 '이 영화를 하면서 너무 반성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배우들에게 너무 못했다고, 알았으면 잘해줄 걸 그랬다고요. 그래서 '나 한국말 알아듣는다, 나 욕하는 거냐'고 그랬죠.(웃음) 윤종빈이 제작하는 영화도 있고 해서 아예 찍는 데 옆에 돈까지 자기가 내고 호텔을 잡았어요. 그쪽 스태프가 왔다갔다 하면서 작업을 한다고. 그런데 그냥 연기만 하고 저녁엔 술만 먹고, 다른 자기 일이 하나도 손에 안 잡힌다는 거예요. 연기하는 동안에 다른 건 못 하는 거죠. 배우는 그런 것 같아요. 한예리도 그렇고 그 세 명도 집중력이 대단해요. 캐릭터에 완전히 들어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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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춘몽' 스틸컷


그 어떤 연출작보다 웃긴다는 이야기에 장률 감독은 "실제 저를 아는 사람들은 술 한 잔 하면 저를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서 "이전 영화들이 너무 엄숙해서 그런가 하는데, 전혀 그렇질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인터뷰에서도 내내 웃음이 터졌다. 관객들 사이에서도 가장 많은 웃음이 터진 영상자료원 영화관 신에서 세 감독 배우들이 '계란만 계속 깐다'며 씹어대던 영화는 다름 아닌 장률 감독의 첫 장편 '당시'다.

"남의 영화 씹을 수가 없어서 제 영화를 썼어요. 배우들이 엄청 좋아했어요. 내 앞에서 욕을 못 하는데 그거라도 하니까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웃기자면 자신을 희생해야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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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춘몽'의 장률 감독 / 사진=이동훈 기자


그렇게 탄생한 '춘몽'. 지하통로 하나 사이로 꿈을 꾼 듯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며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을 느끼던 감독의 경험이 제목에도 작품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영화 중간 '춘몽'이란 제목이 등장하는 장면조차 꿈결 같다. 아이처럼 자신을 쫓아다니던 세 남자를 반대로 찾으며 한예리가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부르는 그 장면에선 장률 감독도 울컥했다고. 반면 촬영 땐 늘 함께해 온 촬영감독도 감독의 고집에 찍긴 하면서도 어디에도 붙을 것 같지 않다 생각을 했단다. 장률 감독은 "촬영감독이 속으로 '우리 감독님 아무 생각이 없구나' 생각했다며 뒤늦게 술 한 잔 먹고 사과를 했다"면서 "나 욕 먹었다. 속으로 했어도 먹긴 먹은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춘몽'은 누구의 꿈이라도 될 수 있고, 다시 말해 누구의 꿈이어도 상관없어요. 제가 말하면 다 그 쪽으로만 생각하지 않겠어요. 저는 어떤 생각까지 하느냐면 '살고 있는데 이게 꿈이 아닌가' 해요. 정말 현실 같지 않지 않나요, 우리 사는 게. 꿈이나 현실이나 구분할 필요가 없어요. (다음엔 어떤 꿈을 꾸고 싶냐는 질문에) 꿈이라는 건 꾸고 싶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꿈이라도 받아들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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