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뫼비우스'가 15세, '그물'이 청불이었으면"(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9.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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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사진제공= NEW


의외다. 김기덕 감독이 선뜻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 한동안 은둔의 기인처럼 활동했던 그가 대중 앞에 섰다. '뉴스룸'에 출연하고, '컬투쇼'에도 나왔다. 그간 김기덕 감독이 대중 앞에 섰을 땐, 날선 이야기를 앞세웠다.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을 비판하고, 영화 등급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더러는 그의 영화에 대한 비평을 지적했으며, 때로는 관객에 한탄하기도 했다. 그의 몸부림은, 그의 영화와도 닮았다.

그랬던 김기덕 감독이 달라졌다. 여유롭다. 부드러워졌다. 10월6일 개봉하는 그의 새 영화 '그물'은 엔진고장으로 남쪽으로 흘러온 북한 어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과정을 담았다. 직접적이다. 거친 우화 같던 예전 영화들과 다르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영화는 메시지가 직접적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담았던, 개봉은 못한, '스톱'과도 닮았다. 그는 달라진 걸까? 나이를 먹은 걸까? 아니면 여전할까?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한동안 자기를 짙게 담아내더니 남북 문제를 다룬 '그물'로 돌아왔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남북 문제를 다룬 건 아니다. 원래 시나리오를 많이 쓴다. 아이템이 10개 정도 늘 있다. 이 시나리오를 쓰다가 지겨우면 다른 시나리오를 쓰곤 한다. '그물' 이야기는 3~4년 전에 고민했던 것이었다. 내 사고가 한 곳에 머물지는 않는다. 남북 문제 뿐 아니라 인류, 개인 등 여러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물'은 그런 내 챕터 중의 하나다. 그러다가 류승범을 만나면서 '그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류승완 감독을 만났는데 "동생이 한국에서 꼭 같이 작업을 하고 싶은 두 명의 감독 중 한 명이 김기덕 감독"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류승범과 같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그물'을 생각했다. 투자배급사 NEW가 붙은 건 그 다음이다.

-그간 여러 톱스타들과 작업을 많이 했는데. 류승범과 같이 하는 게 '그물'을 결정할 만큼 큰 의미였나.


▶그렇다기 보다는 내 영화에는 톱스타들이 별로 출연을 안 한다.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 이나영 등 그런 배우들은 먼저 참여의사를 밝혀온 경우다. 내가 먼저 배우에게 뭔가를 같이 하자고는 안 한다. 당연히 초창기에는 내가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도 보내고 했지만 다 거절 당하곤 했다. 그러면서 아 이게 당연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내 영화에 출연하면 이미지도 안 좋아지고, 개런티도 낮아진다는 위험 부담이 있구나 싶었다. 그러니 배우가 출연 제안을 해오면 이야기를 꾸려 나가게 된다.

-예전에는 거친 우화에 가까웠다면 최근작들은 갈수록 직접적인데.

▶글쎄, 개봉은 못했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스톱'이란 영화를 찍고 남북 문제를 다룬 '그물'을 찍어서 그렇게 보는 것 같긴 하다. '나쁜 남자'나 '악어' 이런 초창기 영화들과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예전에는 내 세상이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러니 영화를 찍을 수 있었고, 내면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후쿠시마 원전 사태도 그렇고, 남북 문제도 그렇고 내게 불안과 고통을 안긴다. 그러다보니 그쪽 이야기들이 담긴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들만 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인간은 왜 이런 구조인가, 개인이 악하다기 보다는 처한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악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 그런 원형적인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 할 생각이다.

-'뫼비우스'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서 한동안 떠들썩 했는데. '그물'은 누드와 섹스신이 있는데도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는데.

▶두 영화 등급을 바꾸고 싶다. '뫼비우스'가 15세고, '그물'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길 바랐다. '뫼비우스'는 청소년들이 보고 성 정체성에 대해 논의해보고 싶었고, '그물'은 이데올로기 문제이기에 이념적인 혼란이 있을 수 있으니 성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청소년들에게 체제 공포를 주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런 게 오히려 정직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문제 제기를 하면 쇼로 보일까 싶어서.. 한편으로는 영등위에서 성과 폭력에 대한 잣대는 엄격하지만 체제 이념에는 관용적인가 싶기도 하다.

-과거보다 유해진 것 같은데. 스크린 독과점을 날 서게 비판했는데 이제는 좀 달라졌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물'도 과거였다면 어느 한쪽에 더 선명한 비판이 있을 수 있었는데, 남과 북 모두의 문제를 짚기도 했고.

▶유해졌다? 나이를 먹어서 유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일 대 일로 인간이 악하다기 보다는 처지, 환경, 시스템으로 그렇게 된다는 원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과거 한국영화계와 서로 상처를 주고 받을 때와 생각이 바뀐 것도 있고. 인간을 좀 더 이해하게 됐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내 영화가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22편을 찍었는데, 그동안도 어떤 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다. '나쁜 남자'도 제목은 그렇지만 과연 이 남자가 나쁜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나. '그물'도 남과 북으로 균형을 잡은 것 같지만, 결국은 국가가 얼마나 개인을 희생시키느냐는 이야기다. 최근 탈북한 식당 종업원 분들도 그런 공포와 두려움이 있지 않겠나.

-김영민이 맡은 국정원 조사원 캐릭터는 김기덕 감독의 전사가 느껴지기도 하던데. 가족사랄지.

▶그렇다. 내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이 나온 것이다. 이 남자는 6.25 때 북한군에 의해 부모님이 죽었다. 그 상처로 간첩을 어떻게든 잡으려 하고, 만들려 한다. 실제로 우리 아버지가 6.25에 참전하셔서 총알을 4발 맞으셨다. 잡혀서 고문 후유증도 있었고.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어릴 적부터 "빨갱이 새끼들은 믿으면 안된다"는 말을 달고 사셨다. 그 분노가 그대로 내게 쏟아졌고. 그렇게 각인됐다. 아버지의 분노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있었다. 그런 채로 난 해병대에 입대했다. 거기서도 그런 분노들을 배웠고. 그러다가 내가 영화감독이 되면서 그 주관적인 분노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려 했다. 내 영화 '수취인불명'을 보면 집 마당에서 시체가 나온다. 그게 실제 내 경험이기도 하다. 일산에 살던 지역이 실제로 옛날에 포로 수용소였기도 했다. '그물'에 김영민 캐릭터는 내가 그 나이에 가지고 있었던 분노, 보복심리가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물'에선 류승범을 빼고는 등장인물이 모두 전형적인데.

▶맞다. 그런데 그런 전형성조차 전형에 둘러싸인 개인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여러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려다보면 이야기가 흩어진다고도 생각했고. 그리고 영화에서 한 명도 입체적으로 그리기가 쉽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류승범에 집중했다.

-류승범이 선물 받는 곰 인형이 영어를 말하는데. 의도한 것인가.

▶의도한 건 아니다. 연출부가 갖고 온 곰 인형인데 누르면 영어를 이야기하더라. 나름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이 미국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지 않나. 그런 영어를 말하는 곰 인형을 북에 갖고 돌아간다면, 류승범이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까. 영어에 대한 공포를 주는 시너지를 낳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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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사진제공=NEW


-결말에서 꼭 류승범을 죽였어야 했나.

▶그 장면을 쓸 때부터 테오도로스 앙겔로플로스 감독의 '안개 속의 풍경' 엔딩이 떠올랐다. 안개 속으로 남매가 걸어간 뒤에 들리는 총성. 그게 연상이 됐으니 그걸 피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물'에 엔딩은 그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류승범이 그 고생을 하고 다시 북에 돌아와 어부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어업권은 박탈 당하고 체제의 감시 대상이 된다. 그러니 그가 총을 맞기 전 북에 한 번 절규하고 다시 남을 향해 돌아서서 절규한다. 체제의 폭력과 감시 아래 죽어가는 개인을 그리려면 그래야 했다.

-체제의 감시를 그리기 위해 '그물'에는 그렇게 CCTV 영상이 많은가.

▶당연히 그렇다. 휴대전화로 CCTV를 보는 건 내가 만든 설정이긴 하지만 그런 게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류승범이 두 번의 섹스 장면이 있다. 앞부분과 뒷부분. 새벽에 제일 멋있어 보이는 남자가 돌아와선 제 구실을 못한다. 그래서 아내가 오열하고. 노골적이지 않나.

▶삶의 의지가 사라진 걸 그리고 싶었다. 그 고생을 겪고 발기가 안되는 건 그런 의미다. 인간에겐 식욕과 성욕, 그리고 수면욕이 있지 않나. 류승범이 연기한 그 남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 다음 그 모든 걸 잃는다. 체제에 갇혀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죽었고, 그 다음 육체적으로 죽은 것이다. 그걸 아내의 오열로 표현하고 싶었다. 체제 안에서 더 이상 기능을 잃은 남자를, 아내의 오열로 그리고 싶었다.

-'그물'에는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을 비롯해 당연히 여러 사건들을 참고했다. 드라마니깐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간첩을 잡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지나친 애국주의와 성과주의로 없는 걸 만들어내기도 한다. 실제 사건에서 빌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민통선에서 촬영을 했다면 더 달라졌을텐데.

▶허가를 안 해준다. 뉴스들에는 가능한 영상을, 영화는 못 찍게 한다. 예전 '해안선' 때도 요청했지만 다 거절 당했다. 그래서 세트를 지어서 찍었다. 그런 부분이 영화를 빈약하게 만든 아쉬움을 준다.

-'그물'에도 명동 장면을 중요하게 썼는데.

▶'나쁜 남자' '피에타' '해안선' '그물'까지 4편에 명동 장면을 넣었다. 명동은 내게는 화려함의 상징이다.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상징이고. 또 옥상에서 찍으면 대규모 몹신을 그냥 찍을 수 있다. 바로 그 명동 장면이 '그물'을 찍은 이유기도 하다. 찍으면서도 슬펐고, 편집하면서도 슬펐다.

-바로 그 명동 장면 때문에 류승범은 북에서 고통을 받는다. 언론이 그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영상을 공개했는데. 탈북한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간 언론에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감독의 비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건 너무 과한 생각이다. 그걸로 나에 대한 언론의 비평적 섭섭함을 비판한 건 아니다. 다만 언론의 잔인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알리는 게 일인 언론의 잔인한 속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영화세계가 과거보다 부드러워지는 건 사실인데.

▶난 내 영화들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데.(웃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빛과 어둠의 대비가 극명한 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난 심각하게 욕을 먹으면서 던지고 관객은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생각한다.

-차기작인 '무신' 상황은 어떤가. 중국에서 워킹 비자를 안 내줘서 진행이 어렵다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 이제는 말하면 안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1년 동안 중국을 여러 차례 오가며 준비했었다. 결론적으론 중국에서 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현재 중국쪽 파트너와는 끝이 났다. 다른 중국 회사들이 제안을 많이 하긴 했는데 현재로선 쉽지 않다. 이탈리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이면 중국에서 못 할 것 같다고 한 게 통역 오류로 중국에서 안 하겠다고 기사가 나왔다. 그걸 중국에 영향력이 큰 홍콩신문에 나왔고, 다시 한국에서 그대로 번역했다. 정정 자료를 내긴 했지만 누가 관심이 있겠나. 그런 부분을 중국에서 곱지 않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워킹 비자를 받으려 했는데 중국 대사관에서 내가 뭘 했는지, 뭘 하려 하는지 다 알더라. 한국은 내가 어떤 주제로 영화를 해도 자유롭다. 반면 중국에선 내가 체제를 비판하는 게 아닐지 걱정할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도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다.

현재 중국쪽 파트너는 초청장을 보내도 비자를 받지 못하는 회사다. 그 비자는 중국 상공회의소에서 허락한 회사만 가능하다. 그러니 그런 부분이 쉽지 않다. 또 '무신'은 신에 대한 이야기다. 중국에선 민족, 종교, 정치, 안보, 폭력과 섹스는 영화 소재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신' 시나리오를 수정해서 심의를 통과는 했다. 그런데 다 찍어놓고 난 뒤에 심의가 통과되지 않을 수도 있다. 수백억원을 들여서 찍었는데 그러면 큰 일 나지 않나. 또 워킹 비자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되면 감독 책임이 된다. 계약 조항에 그런 것도 있다. 그런 게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에서 찍을 수가 없다. 그래도 '무신'은 어느 나라에서라도 꼭 만들 생각이다.

-한 때 한국에서는 더 이상 영화를 개봉시키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정확하게는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일 대 일' 때 CGV를 찾아가서 스크린을 50개만 달라고 했다. 그런데 점유율이 채 1%도 안나오더라. 극장이 없어서 안 된다는 게 핑계 밖에 안 되더라. 극장만 주면 해결될 게 아니었다. 모든 게 연결된 구조지. 그런 점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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