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고 다룬 '판도라' 1년째 개봉 표류..경주 지진까지 불안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9.26 11:58 / 조회 : 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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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김명민, 문정희, 정진영, 김대명, 김영애 등 영화 '판도라' 출연배우/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100억대 영화가 1년째 표류 중입니다. 100억원을 넘게 투입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1년 동안 개봉일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올해는 틀렸습니다.

'판도라' 이야기입니다. '판도라'는 '연가시'로 451만명을 동원한 박정우 감독의 신작입니다. 2015년 3월 촬영에 들어가 고생고생 끝에 그해 말 촬영을 끝마쳤습니다. 김명민 김남길 문정희 등 좋은 배우들이 두루 출연했죠.

그런데도 '판도라'는 개봉일을 1년째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규모 영화면 통상 여름 시즌이나 겨울 시즌을 잡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판도라'는 아직도 후반 작업 중이라는 게 공식입장입니다.

사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판도라'는 원자력 발전소에 위기가 닥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박정우 감독의 전작인 '연가시'처럼 미증유의 재난이 벌어지고 그 속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판도라'는 원자력 발전소에 위기가 닥친다는 설정 때문에 촬영부터 투자에, 개봉까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판도라'는 당초 부산 지역에서 대부분 분량을 촬영할 계획이었습니다. 기장군에 세트를 짓기로 했지만 포기하고 강원도를 떠돌며 곳곳에서 촬영을 해야 했습니다. 고리 원전 근처라는 게 껄끄럽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원전 근처인 다른 지역에서도 촬영장소를 섭외하는 게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껄끄러울 수 있죠. '곡성'도 영화의 어두운 이미지가 해당 지역에 안 좋은 이미지를 안길까 제목 자체에 지역명과 다른 한자를 병기했습니다. 그래도 '곡성' 촬영은 곡성에서 했죠.

'판도라'의 어려움은 그뿐이 아닙니다. 투자할 듯 했던 모태펀드에서 석연찮게 반려를 했습니다. 투자배급사 NEW 측은 "투자를 할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반려됐다"고 토로했습니다. 모태펀드는 정부가 출자하는 시드머니 성격으로 공공자금입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영화 절반 가량에 투자했죠. 2015년 초부터 투자의사결정기구라는 제도가 도입돼 개별 영화 투자 심의에 나섰습니다. 영화계에선 이 기구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 정치적인 소재 영화는 모태펀드에서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NEW는 모태펀드 대신 다른 곳에서 '판도라' 투자비용을 구해왔습니다. 우여곡절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판도라'는 촬영까지 마쳤습니다. 그간 영화계에선 NEW가 '변호인'으로 찍혔다가 간신히 '연평해전'으로 만회했는데 '판도라'로 다시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누구 눈 밖에 났는지, 주어는 없습니다.

이렇게 만들어낸 '판도라'지만 요즘 다시 고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경주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자 개봉을 과연 할 수 있을까란, 아니 개봉을 해도 되는지란, 고민에 빠진 것입니다. NEW 관계자들은 그간 경주 울산 근처에서 지진이 날 때마다 가슴을 졸였습니다. 혹시 큰 사고가 벌어지면 어쩌나란 걱정이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이번에 경주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자 이러다가 100억원이 들어간 영화를 끝내 개봉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란 걱정에 빠졌습니다.

'차이나 신드롬'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1979년 영화죠. 원자력발전소 멜팅다운 문제를 다룬 영화인데, 이 영화가 개봉한 뒤 얼마 안 돼 실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에서 유사한 사건이 벌어져 엄청난 화제를 모았습니다. 멜팅다운이란 원전사고가 일어날 때 원자로가 냉각장치 고장으로 과열돼 녹아내리면 이 때 열이 원자로가 있는 땅까지 계속 녹아내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럴 경우 그 열 때문에 서구 기준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중국까지 뚫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해 붙인 단어가 차이나 신드롬입니다.

다행히 스리마일 원전사고는 아슬아슬하게 멜팅다운 직전에 멈췄습니다. 그 사고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죠. 안전장치도 많이 만들어졌구요.

한국은 어떨까요? 원자력 발전 사고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져서 경각심을 일 게 해 안전장치에 대한 여론을 환기한다는 건,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습니다. 개봉조차 불투명하니깐요. 심지어 '판도라'에선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통령이 등장해도 그렇습니다. 김명민이 맡은 역이죠.

영화는 시대를 담습니다. 블록버스터든, 독립영화든, 사회비판 다큐멘터리든, 시대의 공기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판도라'는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블록버스터입니다. 목표는 더 많은 관객이지, 체재 비판이 아닙니다. 원자력 발전소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다면, 덤이겠죠.

그런 영화가 개봉 일정조차 불투명하다는 건 몹시 안타깝습니다. 그것 역시 시대의 공기 때문이겠죠. 경주 지진이 일어난 뒤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는 없다는 발표가 계속 나옵니다. 그만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염려가 크다는 뜻일 것입니다.

지금 '판도라'가 개봉한다면 마치 시대를 조명하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의도치 않았는데도 말이죠. 시대의 공기가, 의도치 않았던 정치적인 의도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NEW는 '판도라'를 내년 초쯤 개봉하는 걸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지진 여파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구요.

'차이나 신드롬'은 시대를 조명하는 영화가 됐습니다. '판도라'는 어떨까요? 뭐가 됐든 개봉이나 했으면 합니다. 판단은 관객이 할 일입니다. 그 판단을 다른 쪽에서 한다거나, 다른 쪽 눈치를 봐서 미룬다거나, 그럴 일이 아닙니다.

유근기 곡성군수는 '곡성'으로 지역 이미지가 나빠질 것이란 우려에 전남일보에 기고문을 보냈습니다. "'곡성'을 보고 공포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 분이라면 꼭 곡성에 와서 따뜻함이 주는 즐거움 한자락이라도 담아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판도라'를 더 늦기 전에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판도라'를 대하는 자세가 곡성 군수의 자세와 다를 바가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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