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감독 "한때 '야구 한량'..이젠 야구로 행복한 사람"

[김재동의 만남] 4년연속 PS 진출 눈앞에 둔 승부사의 이야기②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6.09.05 13:00 / 조회 : 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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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방 탁자위엔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이란 책이 놓여있었다. “무슨 책입니까?”했더니 팬이 선물한 책이란다. 묘하다. 책 제목 13글자가 마치 그를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그는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며 승부사로 정평난 감독이고 별명은 ‘염갈량’이다. 넥센 염경엽감독을 2일 SK전을 앞두고 고척돔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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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고척돔= 이기범 기자


<이어서>

“항상 거기서 머물려 하지마라. 우리팀에서 경기 나가는데 만족하지 말고 리그의 탑이 돼라.”

염경엽 감독이 늘상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대목이다. 강정호 박병호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서건창 김민성등의 귀에도 딱지가 돼 내려앉을 말이다.


그가 ‘최고’를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제가 그렇게 실패했잖아요. 사람들이 선수시절 제가 야구 못했다는데 저 나름 엘리트로 달려온 사람입니다” 한다. 실제로 광주일고-고려대 거쳐 태평양 돌핀스까지 그는 승승장구한 편이다. 대학가야지해서 야구 명문 고려대 갔고 대학 3학년때 해태 경기 보고 멋있어 보여 프로가야겠다 마음먹어 태평양에 입단했다. 기왕 들어온 거 주전하자 해서 계속 주전으로 뛰었고. “근데 딱 거기에 만족한 거죠. 김기태 이종범이 스타로 막 뜨고 했지만 그게 부럽진 않았어요. ‘걔들은 야구 아주 잘하는 애들, 그렇지만 나도 똑같이 주전으로 경기 뛰잖아’하면서 만족하고 산거죠”

그는 소질 하나만 가지고 손 한번 안 까져보고 타이어 한번 안쳐보고 필요할 때마다 잠깐 잠깐씩 노력해서 원하는 지위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야구가 참 쉽더라구요. 근데 프로에서 1년을 뛰어봤더니 체력이 참 약한 걸 알겠더군요. 학원스포츠야 경기도 띄엄띄엄 있어 그런 걸 전혀 못 느꼈었는데. 그러다 보니 4월까진 3할 치는데 5월부터 타율이 뚝뚝 떨어져요. 그래도 수비가 되니까 주전으론 계속 나갔죠.”

팀이 현대로 넘어가고 1996년 초대형 유격수 박진만이 들어오면서 그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개막전엔 항상 내가 그라운드에 있었는데 벤치에서 애국가를 들으니 감정이 확 복받치더군요. 그때가 결혼하고 1년 지나 첫 애가 있을 땐데 집에 와서 아내와 애기 자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지더라구요. 내가 아버지 그늘에서 컸듯 우리 딸도 내 그늘에서 커야될텐데, 나 따라서 그들 인생도 달라질텐데.. 그래 노력 안해서 실패했으니 이제부턴 노력해서 성공해보자 맘 먹었죠.”

그날 이후 그는 그간 안해온 노력이란걸 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손가락 까지도록 심야 스윙도 시작하고 벤치에 앉아서 플레이도 분석하며 메모를 시작하고 ‘야구가 이렇게 어려운 운동였구나’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상대팀 움직임도 나름대로 평가하게 되고 코치들 가르치는 것도 집중해서 들으며 좋은 것 같다, 아닌 것 같다, 나라면 이걸 이렇게 이해시킬텐데 하는 식으로 메모를 하며 지독하게 야구공부를 시작했다고.

그는 그렇게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에게 기회는 좀체로 오지않았다. 결국 2000년까지 선수생활을 유지한 후 2001년 정명원과 함께 은퇴를 할 때까지 그는 백업요원으로서 벤치서 야구공부를 제대로 하게 된다.

은퇴 후 이것저것 생각해 봤지만 그에겐 여전히 ‘야구’밖엔 답이 없었다고 한다. 캐나다 이민을 생각한 것도 영어와 야구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한창 국내에 메이플 배트가 소개되고 있을 즈음이라 그 총판을 따서 돈 벌면서 야구 공부하자는 계획이었지만 서류심사과정에서 탈락하고 만다.

결국 LG 트윈스의 스카우트-운영 팀장을 거치면서 그의 지독한 야구공부는 계속됐고 넥센 히어로즈 작전·주루코치를 맡아선 2012시즌 팀 도루 1위를 이끈 데 이어 김시진 감독 후임으로 넥센사령탑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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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행복하다는 염경엽감독.


야구인생 전반기를 ‘야구한량’으로 살았다면 후반기는 ‘야구중독자’로 살고있는 셈이다.

그래설까 “취미가 뭡니까?”란 질문에 그는 살짝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에..그.. 잠자는 거?”한다. “수면이 항상 부족하신가요?” “그런건 아닌데 깨있으면 항상 ‘뭘해야 되는데’란 강박관념이 있어서요”

궁금하다. “예전 인생이 행복하세요? 지금 인생이 행복하세요?”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얻고 싶은 걸 얻고 있잖아요.”

“힘들진 않으세요?” “왜 힘듭니까? 행복한데 힘들기도 한가요? 전 한번도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태평양시절 한때 그의 별명은 톰 크루즈였다. 닮기도 했고 멋도 좀 부릴 줄 알아서란다. 여유 있는 부모님 슬하에서 바로 위의 형과 10살 차이 나는 4남매 중 막둥이 염경엽은 인생을 즐긴다고 즐겼을 테다. 그는 야구를 좋아했고 소질도 있었고 그때그때 성취감을 맛보며 행복했었을 테다. 그리고 치열하지 않은 죄로 어느 순간 야구로 인해 좌절을 맛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남은 건 여전히 야구밖에 없었을 때 그의 야구엔 독함과 치열함이 배어들었다.

4년차 감독 염경엽은 요즘 부쩍 혼잣말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정신 차려라. 염경엽, 옛날을 생각해봐’라고. “감독 4년 차쯤 되니까 아무래도 좀 게을러 지더라구요. 이 야구판 떠날 때까진 게으르지 않으려구요”

아마도 그는 아주 오래도록 부지런을 떨어야 될 팔자로 보인다. 그의 제자들은 덩달아 톱이 되기 위해 바빠져야 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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