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환 감독 "승부조작은 용서안되는 일..교육이 중요하다"

[김재동의 만남] 2016 WSBC 세계여자야구월드컵을 앞두고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6.09.01 11:17 / 조회 : 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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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부산 기장에서 2016 WSBC(국제야구소프트볼연맹) 세계여자야구월드컵 조별예선의 막이 오른다. A조에 속한 우리나라 대표팀(감독 이광환)은 9월 3일 오후 1시 파키스탄, 4일 오후 6시 반 쿠바, 5일 오후 6시 반 베네수엘라와 차례로 경기를 치른다. 여자야구월드컵은 이번이 7회 대회로 국내 유치는 처음이다. 세계랭킹 상위 12개 팀이 출전, 3개조로 나뉘어 조별예선을 치른 후, 각 조에서 2위 안에 들면 슈퍼라운드에 진출해 우승컵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KBO육성위원장이면서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이광환(68) 감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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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분업화, 선발투수 예고제를 정착시키고 베이스볼 아카데미 창설들 한국야구발전에 여념없는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KBO=이기범기자


<이어서>

“월화수목금금금이다”

KBO육성위원장은 뜻밖에 일이 많았다. “전국적으로 아마추어 창단팀 지원해 줘야지, 사후관리 해줘야지, 세미나 필요하다면 해줘야지, 여기저기 열리는 대회 한번씩 가봐야지”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맡을 사람 없다니 어짜겠노”해서 대표팀 감독직도 맡았다.


그 외에도 그는 덜 알려진 직함 하나를 갖고 있다. 서울대 야구팀 감독. 이에 대해 이감독은 “말이 감독이지. 도우미다. 선수애들이 평균 25명선에 매니저하는 여학생 4명 정도로 한 30명되는데 1년 예산은 150만원이다. 공, 방망이, 유니폼, 내가 다 얻어다 주는거지 뭐. 그래도 동아리 35개 있는데 학교마크 달고 나가는 대표팀인건 맞아”하며 허허 웃는다.

그렇게 바쁘다면서 일견 의미없어 보이는 그 보직을 왜 맡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인프라라는게 시설, 제도 뭐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냐. 인적인프라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반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인적인프라를 키우고 싶은 거지. 제발로 야구하겠다고 들어오는 학생들 놀도록 만들어줘야지. 그게 다 야구의 자산이 될 거란 말이지. 그 애들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서 다 대한민국 야구 발전에 서포터가 될거라니까.”

그래서 그가 바쁜 와중에도 빼놓지 않는 행사가 매년 여름 학생들 데리고 정규규격의 야구장을 찾아 캠핑가는 것이다. 일정이래 봤자 밥 해먹고 야구 하는 것이 전부지만 학교 연습 때 좁은 운동장 탓에 허구헌날 외야에서 만세나 부르던 학생들에게는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 된다고. 이감독은 금년에도 8월말에 경주로 캠핑을 다녀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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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야구부 이광환 감독.


이광환 감독의 야구에 대한 열정에 관해 말할 때 1995년 제주도 하귀리에 사재를 털어 건립한 야구 박물관을 빼놓을 수 없다. “야구로 번 돈 다 털어넣었다. 그래서 집사람은 제주도를 별로 좋아 안해”하며 웃고 마는 이감독. 1998년 제주도 서귀포시에 정식으로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건립되자 그 소장품 3,000여 점을 모두 기증했다. “당시 우리나라에 스포츠는 있는데 스포츠 문화는 없더라고. 야구는 있는데 야구 문화는 없고. 그래가 나래도 한번 해보자 한거지 뭐”

이쯤 되면 열정 정도로도 이해하기가 버겁다. “혹시 야구에 빚진 거 있으세요?”란 질문은 당연해 보였다.

“있지. 항상 야구 아녔으면 내 인생이 과연 이래 흘러왔을까 생각 들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이광환 감독은 고등학교를 두 군데 다녔다. 대구상고와 중앙고. 대구상고 1학년때 야구부장이 감독을 쫓아내고 자기가 감독을 맡는 일이 벌어졌다. 1학년 중 유일하게 학교대표로 경기에 나갔던 소년 이광환은 부당하다고 생각해 선배들과 의견을 모아 스트라이크를 벌인다. 등교를 거부했던 건데 나중에 알아보니 다들 포섭 당해 등교를 하고 있었고 고집 세다고 정평 난 이광환만 남겨진 채였다. 그때 그는 “너희들이랑 야구 안해”하고 학업조차 포기하려 했었던 모양이다. 그는 당시 대구에선 우범지역으로 꼽히는 남산동에 살았었고 중학교 때까진 남산동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러다 깡패로 풀리면 어쩌나” 걱정됐던 전 감독이 친구인 중앙고 감독을 연결해 주었고 그렇게 중앙고에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내가 최초로 야구 박물관 만들면서 야구에 빚진 건 다 갚았다 생각한다”는 이광환 감독. 하지만 야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는 여전하다.

그런 그에게 최근의 승부조작에 관해 물었다. “마 얼굴 따가와 죽겠다. 유소년 학부형, 대회관계자, 지자체 관료들 만나는 게 일인데 부끄럽지 뭐”라고 말을 꺼낸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공자도 용서할 일이 있고 용서가 안되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는 승부가 생명인데 그 승부를 조작한다는 건 스포츠의 의미를 지워버리는 일 아닌가”며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또 이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 위해선 교육, 특히 스포츠지도자들을 상대로한 교육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학생야구는 코치가 핵심이고 훌륭한 코치는 훌륭한 선생이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가 6개월 공들여 서울대와 MOU를 체결해 2010년 만든 베이스볼 아카데미는 그런 차원에서 의미있는 시도였다. 주5일, 하루 6시간씩 총 120시간의 교육은 서울대교수 절반에 외부 강사 절반 비율로 꾸려진 강사진에 의해 진행됐다. 현직 검사와 법무부 공직자가 강사로 나서는 비리예방교육 커리큘럼도 있고 야구사, 야구심리학, 운동역학, 야구경영, 스포츠마케팅, 야구윤리경영, 트레이닝 방법론, 마운드 전략, 야구 기술분석과 평가 등 야구현장의 실제적 문제들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 함양을 위한 커리큘럼까지를 망라하는 교육과정이었다. 그러나 2015년까지 유지되던 베이스볼 아카데미는 문체부가 2억원의 지원금을 철회하면서 금년 들어 문을 닫았다.

이에 대해 이광환 감독은 “니들 교육은 니들이 알아서해라 하는게 그쪽 말인데 어차피 토토자금 쓰는 건데 구단들엔 펑펑 주면서 교육지원을 안한다는 게 이해는 안간다. 교육은 양보하면 안되는건데.. 어쨌거나 없는 강의실 내줬던 서울대도 아쉬울 것 없고 나도 편해졌다”면서 “근데 아직도 그 과정 언제 다시 개설되냐고 묻는 친구들 전화가 많다”는 말을 덧붙이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제주도에 조그만 아파트 하나 장만해 두었다는 이광환 감독 “집사람은 제주도 싫어하지만 내 할 일 다하면 내려가서 말년을 보낼란다”고 노후계획을 밝힌다. 하지만 야구가 그를 쉽게 놓아줄진 두고볼 일이다.

모도 그렇다. 싹만 트고 꽃이 피지 않거나, 꽃은 피었어도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이 북돋워 주고 솎아주고 해야 결실이 풍부해진다. 현명한 늙은 농부의 손길은 언제라도 필요하다. 한국야구라는 들판엔 이광환이란 늙은 농부가 여전히 필요해 보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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