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환 감독 "1R는 통과해야 ..인지도 제고만으로도 의미"

3일 부산 기장에서 2016 WSBC(국제야구소프트볼연맹) 세계여자야구월드컵 조별예선의 막이 오른다. A조에 속한 우리나라 대표팀(감독 이광환)은 9월 3일 오후 1시 파키스탄, 4일 오후 6시 반 쿠바, 5일 오후 6시 반 베네수엘라와 차례로 경기를 치른다. 여자야구월드컵은 이번이 7회 대회로 국내 유치는 처음이다. 세계랭킹 상위 12개 팀이 출전, 3개조로 나뉘어 조별예선을 치른 후, 각 조에서 2위 안에 들면 슈퍼라운드에 진출해 우승컵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KBO육성위원장이면서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이광환(68) 감독을 만났다.

여자야구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 ./KBO=이기범 기자

농사란게 그렇다. 모를 심어 싹이 트고 자라면 이삭 대가 올라와 눈을 내고 꽃을 피운다. 그 이삭이 양분을 쟁여 알곡으로 영글어 고개를 숙이면 비로소 추수를 하게 된다.

처서가 지났으니 이미 가을에 접어든 8월말 만난 이광환 감독을 보면 문득 ‘농부를 닮은 야구인’이란 생각이 든다. 그가 국내에 첫선을 보였던 선발투수예고제나 세칭 ‘스타시스템’으로 불리는 투수분업화는 이미 KBO리그에 안착했다. 비록 6년 운영 끝에 금년 들어 문을 닫긴했지만 그가 만든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 부설 베이스볼 아카데미도 500~600여명의 야구지도자를 길러냈다. 그리고 2006년 그가 발의해 2007년 2월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한 한국여자야구연맹도 월드컵이란 세계대회를 국내 처음으로 유치하면서 결실을 보려한다.

대회를 앞두고 있으니 당연히 첫 질문은 예상 성적이다. 이감독은 “1라운드는 통과해야 안되나? 2라운드 진출 못하면 앙꼬없는 찐빵되는건데. 주변에선 감독 유능하니까 될거다고 놀리는 목소리가 많아”하고 웃음을 보인다.


하지만 1라운드 통과라는게 마냥 쉬운 일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원래는 8개국이 참가해온 월드컵인데 우리가 그 랭킹이 안돼. 우리가 11위거든. 개최국이다 보니 12개팀으로 확대한 거지.”라며 우리 대표팀의 현주소로부터 설명을 시작한다. 이감독에 따르면 이번 대표팀 최종엔트리 20명엔 야구선수뿐 아니라 소프트볼 선수가 절반 포함돼 있다. 여자야구쪽에서는 투수 위주로 선발했고 소프트볼 선수들은 야수쪽으로 치중해 뽑았다고 한다.

한국대표팀 명단.

이유를 묻자 소프트볼은 전국체전 종목이라 중고등학교때부터 다져온게 있어 체력과 기본기가 탄탄한데 비해 여자야구는 주로 직장인들이라 토요일 일요일만 연습하다보니 체력도 기본기도 미진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연습상황도 녹록치않았던게 이예지 전대림등 대표팀에 선발된 소프트볼 선수들이 지난 24일부터 27일까지 대만서 벌어진 제1회 아시아소프트볼대학선수권에 참가하는등 경기일정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실제로 이광환 감독이 대표팀 전원을 한자리서 본 것도 한번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성적을 크게 기대하는 건 아니고 우리가 이렇게 국제대회를 유치함으로써 여자야구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저변 확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 나름대로 좋은거지 뭐”한다. 2007년 출범후 현재 여자야구연맹에 등록된 팀은 47개, 선수는 1162명에 이른다. 이번 대회가 여자야구 활성화에 기폭제가 돼줬으면 하는 바람을 이 감독은 밝히고 있다.

그가 여자야구연맹 창설을 주도할 당시 주변에선 ‘의미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왜 여자야구에 집착했을까. “두가지 이유가 있어. 첫째 내가 생각할 때 야구 인프라 측면에서 저변을 늘리려면 여자들이 야구를 좋아해야겠다 싶었고 두 번째 야구가 올림픽에서 자꾸 쫓겨나는 이유중 하나가 성차별이란 거지. 그러다보니 궁여지책으로 나온게 소프트볼과 합치자 이래 된거거든. 소프트볼은 야구가 아니잖아. 그래서 여자야구가 전세계로 확산만 된다면 남녀 야구가 같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 거라 본거지.”

여자야구연맹 창설당시를 돌아보며 이감독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말마라. 홀대 억수로 받았다. ‘여자가 무슨 야구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 해가면서 하이고 참. 그래서 정진구 회장한테 ‘니가 좀 도와라’해서 같이 움직였지. 연맹회장은 명분도 있고 힘도 있어야겠다 해서 김영숙의원, 전여옥 의원, 김을동 의원등을 모셨었고 근데 정치하는 분들 회장 모시는것도 만만치않더라고.” 그리고 그 부담은 다시 정진구 현 연맹회장에게 돌아갔다.

이광환 감독은 정진구 회장에 대해 ‘존경하는 친구’라고 지칭한다. “인간미 있고 경우 바르고 정확해. 좋아하는 친구는 많아도 존경할만한 친구는 별로 없는데 그 친구는 내가 정말 존경하는 친구야”한다. 두 사람은 중학교 시절 야구 라이벌로 만나 반백년 넘게 우정을 쌓아오고 있다. 대구중(이광환)-경산중(정진구)부터 대구상고 및 중앙고(이광환)-성남고(정진구), 고려대(이광환)-기업은행(정진구)등 한팀 생활은 군대서 잠깐 같이 했을뿐이지만 젊은 날 배낭 메고 떠나는 무전여행의 단골 파트너로 우정을 다졌다. “우리 살만큼 살았고 니도 야구하고 내도 야구하고 우리 마무리도 함 같이 해보자”로 의기투합해 함께하고 있다.

이번 대회만 해도 약 14억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기장군과 LG가 많은 부분 후원을 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비용은 모자라는 상황. “훈련비도 없고 합숙은 하고싶어도 못한다. 연맹에 일할 사람도 모자라고 늙은이 둘이 동동거리고 있는기지 뭐”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 열릴 기장 야구장에서 지난 20일 열린 국가대표팀과 일본실업 아사히트러스트팀과의 친선경기 모습. /사진=한국여자야구연맹 제공

여자야구연맹의 경우를 보면 선발투수예고제와 투수분업화 도입과정이 오버랩된다. 85년 OB베어스 타격코치직을 마친후 이광환감독은 일본 세이부 라이온스(1986)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87)연수를 다녀오게 된다.

“그때 내가 테마로 잡은게 마운드운영였어요. 당시 일본은 12개 구단, 미국은 26개 구단였는데 매일같이 전구단 투수운용하는걸 전부 다 기록을 해봤지. 그거 정리만 하는데도 2~3시간 걸리더라구. 그래 보니 미국은 선발-롱릴리프-셋업-마무리 이게 딱 폼이 갖춰져있는기라. ‘아, 이게 연간 160게임하는 스타일이구나’ 알았지.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일본이 한 50, 우리는 10% 정도나 될까 했지.”

장기레이스에서 투수분업의 의미와 효과를 꿰뚫어 본 이 감독이 이것을 선수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킬까 궁리해서 교육용으로 만든게 ‘스타시스템’이다. 왼선발 둘, 오른선발 둘과 제 5선발로 오망성 안쪽을 구축하고 셋업맨 둘과 롱릴리프 둘, 마무리 하나로 오각뿔을 그려놓은 스타시스템은 언제나 해당선수 이름과 함께 감독실에 걸어두었다. “그렇게 선수들이 시스템을 아니까 선발이 초장에 무너지면 롱릴리프들이 알아서 스파이크 고쳐 신고 준비하더라고” 자율야구의 시작이었다. “또 이렇게 보직을 정해놓으니 스프링캠프때부터 그에 맞는 훈련을 해나가거든. 선발은 지구력이 있어야 되고 셋업은 제구력과 순발력이 강조되야되고 보직따라 훈련이 다 달라진다고”

이 시스템과 관련해 이감독은 밖의 냉담한 시선보다 정작 선수들을 납득시키기까지 애를 먹었다고 회고한다. “선발투수 4일 쉬고 올라온다했더니 애들이 찾아오더라고. ‘감독님 저 4일씩 쉬는거 못견딥니다’ 그럼 내가 그래. 너 야구 한두해 할래? 그리고 오늘 던졌다 안되면 슬그머니 내려왔다가 내일 나가고 내일도 안되면 또 내려오고 야구 그렇게해서 되겠냐고 혼을 내지. 또 마무리 맡은 김용수 경우도 그때 허리가 안좋았는데 마무리를 못하겠다더라고 그래서 공 딱 20개만 던져라. 그게 한번에 100개씩 던지는거보다 허리에 무리 덜간다 설득도 하고. 그거 자리잡는데도 힘들었어”

선발투수예고제에 대해서도 목소리 높인다. “선발투수예고제 하자 했더니 다 안한다 하더라고. 그래? 그럼 나나 할게 해서 시작했지. 장기레이스인데 어차피 속일 수 없어요. 상대팀 속인다고 자기네 로테이션 흔들어봤자 장기적으로 팀에 좋을 것도 없고. 어쨌든 그때도 좋은 소리 못들었지 뭐.”

그랬다. 그가 시도했던 많은 일들이 냉소속에 시작됐다. 하지만 그가 외롭게 뿌려놓았던 씨는 어느새 영글어 한국야구에 그 열매를 나눠주고 있다. 여자야구월드컵. 첫 수확이 좋을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어떤 경우던 한국야구 발전의 의미있는 자양분으로 기능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