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평범함의 위대함..이토록 아름다운 대한민국

[리뷰] 고산자: 대동여지도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8.31 11:14 / 조회 :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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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지도에 미친 사람의 이야기다. 미쳐야 경지에 미친다는 이야기. 강우석 감독은 대한민국을 발로 그려낸 지도꾼 김정호의 이야기를 우직하게 그려냈다.


'고산자'는 박범신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친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이야기다.

일찍이 관아에서 나눠준 잘못된 지도로 아비를 잃은 김정호. 그 한에 평생에 제대로 된 지도를 만들고자 걷고 또 걷는다. 지도의 잘못된 한 점이,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에, 실제로 걸어본 지도와 그저 만들어진 지도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기에, 그는 조선 팔도로 발품을 판다.

3년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열여섯으로 자란 딸 얼굴조차 못 알아본다. 일찍이 어미 잃고 옆집 과부 여주댁을 엄마 삼아 자란 딸 순실이는 그런 아비가 섭섭하면서도 좋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그 동네 돌 하나라도 가져와 달라고 한다. 김정호는 딸 얼굴은 잊어도, 딸의 그 말은 잊지 않아 제주도에서 돌 하나, 백두산에서 돌 하나, 그렇게 팔도의 돌을 집에 품었다.

그저 백성을 위해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자 하는 김정호. 조각하는 옆집 총각 바우와 티격태격 목판을 만든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왕의 아비로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목판을 구입해 전국의 정보를 독점하려 한다. 흥선대원군은 전국의 군사기밀까지 정확히 담긴 지도를, 어찌 백성들에게 줄 수 있느냐고 질타한다. 자칫 외국에 기밀이 넘어가면 어쩌나며. 김정호는 "어찌 제 나라 백성을 믿지 못하겠냐"고 반문한다.


대원군에게 목줄이 잡힌 세도가 안동김씨 일문은, 그가 탐내는 대동여지도를 갈취하려 한다. 그런 그들에게 김정호는 "백성이 아니라 당신네들 권력을 위해서겠죠?"라고 반문한다.

그렇게 권력과 갈등을 빚으면서도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 마지막으로 담길 독도를 꼭 가보려 한다. 물길을 정확히 짚기 위해서다. 다시 집을 비운 김정호. 죽을 위기를 겪고 돌아온 그에게 딸의 목숨과 지도 목판을 선택해야 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고산자'는 적디적은 김정호 선생의 사료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다. 박범신 작가의 원작에, 강우석 감독의 선택이 담겼다. 김정호는 남겨진 이야기가 워낙 적은 탓에 숱한 말들이 쌓인 인물이다. 있는 지도를 그저 정리만 했을 뿐이라는 둥, 백두산까지 오르면서 실측을 했을 리가 없다는 둥, 흥선대원군이 목판을 불태웠다는 둥, 김정호 부녀가 옥사했다는 둥, 여러 설들이 덧칠해졌다. 개중에는 조선의 집권층이 무능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만든 일제 식민사관이란 이야기도 있다.

강우석 감독은 이런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다루면서, 식민사관을 피하고, 그러면서도 익숙한 이야기로 정면승부 했다. 그렇다. 정면승부다. 애둘러 가지 않고, 우직하게 밀고 간다. 그 탓에 착하고 심심할 순 있지만 오롯하다.

강우석 감독은 김정호를 지도에 미친 사람으로 그렸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지경에 미칠 수 없다고 그렸다. 한으로 지도를 마음에 품었지만, 백성을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그저 가슴이 뛰어서 지도에 미쳤다고 그렸다. 지도에 미친 예술가, 하지만 평범한 백성.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시대와 불화를 겪었다고 그렸다. 그래서 위대하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뚝심 있다. 우직하다. 그래서 심심하고, 그래서 착하다.

영화 초반 대사 없이 7~8분 가량 담아낸 대한민국 풍광은 지극히 아름답다. CG 하나 덧칠 없이, 인공조명도 배제한 채, 그저 발품으로 담아낸 풍광은, 어떤 꾸밈보다 아름답다. 제주도 앞바다부터 백두산 천지까지, 얼어붙은 북한강에, 외로이 떠 있는 섬 하나, 고산자처럼 우직하게 발품을 판 성과다. 아무런 꾸밈없는 백두산 천지 풍광은, 겸손하게 가슴을 뒤흔든다. 이 초반 풍광은 마지막 독도 풍광과 맞물린다. 촌스럽지만 울컥하게 만든다.

'고산자'는 단선적이다. 뚜벅뚜벅 길을 걸으며 길을 담아낸 사람 이야기답게 돌아가지 않는다. 지도에 미친 사람, 시대와의 불화, 천주교, 딸과 지도 사이의 선택 등등을 그저 뚜벅뚜벅 걷는다. 나열된 많은 이야기, 돌리지 않은 단선구조, 우직한 걸음, 그 탓에 갈등으로 인한 긴장감은 적다. 홀로 길을 걸었던 사람 이야기이기에, 길과 풍광과 드라마가 엮이지 않은 탓도 있다. 김정호와 대척점인 흥선대원군이, 갈등의 대척점이 아닌 것도 긴장감을 줄였다. 안동 김씨가 악역을 맡고, 정작 대척점이어야 할 흥선대원군이, 김정호의 이해자가 되니, 갈등이 분산됐다. 흥선대원군이 김정호를 박해했다는 식민사관을 피하려다 보니, 시대를 더 정확히 그리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선택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영화가 착하다.

이 착함은 '고산자'의 장점이자 약점이다. 민심을 하늘뜻처럼 그리려 했기에, 왕도 양반도 장군도 아닌 그저 필부지만 백성을 위한 사람을 그리려 했기에, 착하다. 이 우직한 착함에 녹아드는 관객에겐 '고산자'는 더없이 먹먹할 것이며, 이 착함이 아쉬운 관객에겐 심심할 것 같다.

강우석 감독은 자칫 진중하게 그려질 법한 '고산자' 웃음을 차승원과 김인권에 맡겼다. 김정호 역을 맡은 차승원과 바우 역을 맡은 김인권은, '삼시세끼' 류의 아재 개그로 쉼표 역할을 한다. 차승원은 그의 필모그라피에 분명 남을 연기를 선보였다. 괴팍하지도, 멋스럽지도, 호쾌하지도 않은, 그저 지도에 미친 평범한 남자. 평범하되 비범함을 그린다는 모순을, 그는 적합하게 담았다. 미안한 아버지되, 눙치는 예술가를, 장삼이사처럼 그렸다. 그의 최고 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선대원군 역할을 맡은 유준상은, 그의 표현력이 넓다는 걸 입증했다. 역사에 박제된 흥선대원군을 뚜벅뚜벅 걸어 나오도록 했다.

'고산자'는 촌스럽다. 우직하다. 착하다. 그렇기에 '고산자'다. '서편제' 이후 한국을 이토록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가 또 다시 찾아온 게 반갑다. 음악도 우직하다. 웅장할 때 웅장하고 비장할 때 비장하다. 잔꾀를 부리지 않아 촌스럽지만 울컥하다. 강우석 감독은 스무 번째 영화에서 비로소 평범함의 위대함을 담아낸 것 같다.

9월7일 개봉. 전체 관람가.

추신. 엔딩에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실제 대동여지도 목판이 소개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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