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가 말하는 '밀정'의 시작과 끝.."두렵고, 울컥했다"(인터뷰)

김미화 기자 / 입력 : 2016.08.30 08:43 / 조회 : 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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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배우 송강호(49)의 도전은 끝이 없다. 송강호는 맡는 역할마다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 듯 그 역할에 몰입해 관객을 만난다. 완벽한 연기에 송강호 특유의 표정과 말투는 '송강호 아니면 안 되는' 대체불가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송강호는 전작 '변호인'과 '사도'에 이어 이번 '밀정'에서도 특정시대의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든 인물을 연기했다. 특히 이번에는 일제 강점기 시대를 다룬 만큼, 더욱 섬세하고 예민하게 접근했다.

밀정'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일본 요인을 암살하려는 의열단 단원과 그를 쫓는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송강호는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 역할을 맡았다. 지난 29일 송강호와 만나 그가 직접 말하는 '밀정'의 시작과 끝, 그리고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에 대해서 들어봤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가 많다. 특별히 '밀정'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 일제시대 배경으로 한 영화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밀정'은 좀 다르다. 영화를 촬영할 때도 새로운 세상에 대해 본다기보다는 조금 다른 시선을 가지고 그 시대를 바라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김지운 감독이라는 사람이의 차별화된 시선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변호인', '사도'에 이어 '밀정'까지. 역사적 사건 속 실존인물 역할을 맡고 있다. 특별한 선택의 기준이 있나?

▶ 배우로서 수많은 소재의 이야기와 배경을 접하는데 나는 가볍지 않은 시대에 대한 경외감이 있다. 그게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경외감이 있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밀정'을 촬영하러 상해에 갔는데 첫날 너나 할 것 없이 뿔뿔이 흩어져서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다녀왔다. 누가 가라고 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그곳을 꼭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나도 작품 제작자, 엄태구씨와 함께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갔다. 돌아보니 숙연해지더라. 이 좁은 공간에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제작사 대표가 방명록에 "누가 되지 않는 작품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적는데 처음에는 덜컥 겁이 났다.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거창한 이야기를 할 만큼 적을 만큼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물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나중에는 뿌듯했다. 그런 무게감과 경외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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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김지운 감독과는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네번째 호흡이다. 달라진 게 있었나.

▶ 기본적으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는데 김지운 감독도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제작비에 대한 부담보다는 이 이야기 자체에 대한 무게감 이런 것이 다른 영화에 비해 컸다. 테크닉적으로는 예전보다 빨리빨리 진행됐다. 해외 촬영이니까 한 번 더 찍고 싶어도 충분히 나왔다고 생각하면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전보다 조금 편했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 만큼, 찍으면서 여러 감정이 들었을 것 같은데 울컥했던 장면이 있었나.

▶ 서대문 형무소에서 연계순(한지민 분)의 시신을 보는 장면이 가장 그랬다. 시신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그랬다. 그날이 하필 지난해 가장 추웠던 날이었다. 가장 추운 날 새벽 5시 도착해서 서대문 형무소에 갔다. 그때가 처음 가본 것이었다. 내가 촬영 했던 그날보다 오히려 세 배, 네 배, 열 배 더 춥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평생을 여기서 지내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니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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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 사진제공='밀정' 스틸컷


-조선인 일본경찰 이정출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며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 이정출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았던 알 수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실감 나게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가짜 같지만 진심이고, 진심 같지만 가짜라는 것이 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내가 다음에 만날 때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른다'라는 말이 그것을 보여준다. 사실 이정출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정출의 마음이 안 정해졌다기보다는, 본인도 힘들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이고 한 시대 관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일제 강점기가 배경이고 독립운동을 소재로 다뤘다는 점에서 '암살'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 맞다. 심지어 상해에서 찍은 세트 장면은 '암살'과 비슷한 게 몇 장면 나온다. (역사적 배경이 비슷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암살'은 지난해 VIP 시사 때 봤다. 너무 재밌게 봐서 배우들과 새벽까지 같이 이야기 나눴다. 하지만 '밀정'과는 분명히 다르다. 두 영화가 바라보는 각도와 시선이 다르다. 똑같은 시대와 똑같은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조명 하지만 그 조명의 초점 자체가 처음부터 다르지 않나 생각한다.

-이병헌과 박희순이 특별 출연했는데, 같이 호흡 맞춘 소감이 어땠나.

▶ 이병헌과 박희순은 워낙 친한 후배들이고 두 사람 모두 김지운 감독과도 친분이 돈독하다. 두 사람 다 바쁠 텐데 너무 흔쾌히 바쁜 시간을 빼서 열연을 펼쳤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기분 좋게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이병헌과는 세 번째 호흡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로 8년 만에 났다. 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갑기도 하고 생경하기도 했다. 처음에 만나자마자 농담으로 '오랜만이다 박창이' 그러면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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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 사진제공='밀정' 스틸컷


-함께 연기한 공유와의 호흡은? 공유는 송강호가 '괴물' 같은 선배라 말했다.

▶ 내가 괴물 같다는 것은 아마 영화 '괴물'을 찍어서 그런 것 같다.(웃음) 공유는 너무 성실한 배우다 그 열정이 대단하다. 굉장히 열심히 했고, 분투했다. 공유에게 공다슬기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공유는 대중적인 인상이 강한데, 밝은 느낌이라기보다는 맑고 깨끗한 느낌이 있다. 실제로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심성이나 영화 대하는 태도가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과 흡사하다. 1급수에 사는 다슬기 같은 친구다. 그리고 생김새도 다슬기 같이 생겼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로 데뷔한 후 연기 인생 20주년을 맞았는데 소회가 어떤가.

▶ 지난해에는 영화 촬영을 기준으로 20주년이었는데 올해는 영화 개봉 기준으로 20주년이다. 20년이라는 숫자가 우려먹기가 좋다. 배우의 마음가짐이라는 게 20년이든 30년이든 다르지 않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하는 시간은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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