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차갑고 감각적인 독립운동 영화..장점이자 한계

[리뷰] 밀정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8.26 11:10 / 조회 : 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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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독립운동. 쿨 한 독립운동.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그간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다른 영화들과 사뭇 다르다. 화려한 꽃놀이패 같다. 장점이자 한계다.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 25일 기자시사회로 첫 선을 보였다. '밀정'은 김지운 감독이 '악마를 보았다' 이후 6년 만에 한국영화 메가폰을 잡아 화제를 모았다. 송강호와 공유 등 화려한 출연진에,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까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공개된 '밀정'은 과연 김지운표 영화였다. 감각적이다. 차갑다. 유려하고 때론 아름답다. 그 탓인지, 감정은 쉽게 끓어오르지 않는다. 고스톱으로 치자면 오광을 들고 시작했다가 삼 점 스톱 한 것 같다.

'밀정'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의열단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문화재를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중인 의열단원 김장옥(박희순). 그만 누군가의 배신으로 일본 경찰에 쫓긴다. 한 때 상해 임시정부 통역으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일본경찰이 된 이정출(송강호)은 과거의 동료를 자기 손으로 잡으려 한다.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을 잡기 위해서다.

작전은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이정출은 경성에서 고미술상으로 활동 중인 김우진(공유)이 사건의 배후란 사실을 알아낸다. 조선총독부 경무국 부장 히가시(츠루미 신고)는 의열단원들이 중국 상해에서 폭탄을 준비 중이란 정보를 입수한다. 그는 이정출에게 김우진에게 접근, 의열단장 정채산을 잡으라 지시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일본경찰 하시모토를 합류시킨다.

김우진은 일본 경찰이 수사망을 조여오자 상해로 도피한다. 이미 의열단 조직에는 일본과 내통하는 밀정이 있는 상황. 그를 쫓아 상해로 온 이정출과 하시모토는 각자의 방법으로 의열단의 동향을 쫓는다. 이정출이 접근하자, 오히려 정채산은 김우진에게 그를 포섭하자고 역제안한다. 이정출을 반간으로 삼자는 것.

의열단에게 포섭 당했는지, 그들을 이용하려는지, 결국 이정출은 김우진을 비롯한 의열단 대원들이 폭탄을 들고 경성에 잠입하는 일을 돕는다. 이정출마저 의심하는 하시모토가 그들을 쫓는다. 과연 이 거사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의열단원을 잡으려 기와지붕을 타고 달리는 일본 경찰과 박희순의 총격전, 추격전은 리드미컬하다. 카메라가 종횡으로 내달린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는 듯 하다. 여느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와 다르다는 김지운식 인장 같다.

김지운 감독은 '밀정'을 클래식 영화로 만들려 했던 것 같다. 종종 등장하는 원신 원컷, 비장한 장면 위로 흐르는 재즈, 화려한 모던풍의 의상과 미술, 빈틈 없이 꽉 채우는 구도. 고문장소마저 차가운 색감이 빛난다. 멋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멋들어짐은, 정작 밀정 간의 긴장감이 실종된 탓에, 빛이 바랬다. 이중간첩이라는 송강호의 선택이 지나치게 빠르다. 영화 안에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역사적인 당위에 맡겼다. 그렇기에 송강호가, 송강호로, 속고 속이며 잔뜩 쪼여야 할 긴장감이 실종됐다. 김지운 감독은 '밀정'을 속고 속이는 고전 스파이물처럼 만들려 한 것 같지만, 겉모습만 그렇다. 그런 탓에 가장 긴장감이 넘쳐야 할 기차 안 장면은 화려하지만 느슨하다.

'밀정'은 김지운 감독의 세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놈놈놈'의 기차 액션, '악마를 보았다'의 신체훼손, '장화홍련'의 미감 등등. 멋스럽지만 새롭진 않다. 인물의 등을 쫓는 카메라와 카메라로 돌진하는 인물. 액션과 카메라의 합은 조화롭지만 감정을 끌어 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문 이후 송강호가 거울을 보는 장면 등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은 짧게 짧게 끊는다. '밀정'의 톤 앤 매너다. 보여주되 거리를 둔다. 차갑다.

이런 '밀정'의 태도는, 필연적으로 민족의식을 자극하기 마련인 여느 독립운동 소재 영화와 구분된다. 마치 '밀정'은, 독립운동을 다루지만, 민족의식을 강요하진 않는다며, 짐짓 멋스러워하는 것 같다. 신체훼손도 마찬가지. 이유를 드러내기 위해 신체훼손의 이유를 두 번씩 강조하지만, 인물의 고통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다. 다르기 위해 다른 장치 같다. 엔딩 내레이션 마저 건조하다. 이런 차이가, '밀정'을 구분 짓지만, 역사적인 당위 외에 영화 안에서 인과는 종종 아귀가 맞지 않는다.

'밀정'은 배우들에게 많은 걸 빚졌다. 어긋난 영화 속 톱니바퀴를, 배우들이 채운다. 송강호의 건조함과 유머는 화려한 미쟝센보다 더 빛을 발한다. 공유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녹여냈다. 박희순과 이병헌은 특별출연의 좋은 예로 남을 것 같다. 등장만으로 몰입을 더한다.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는 송강호에 밀리지 않는다. 왜 엄태구가 주목받아야 할 기대주인지 입증한다.

'밀정'은 차갑다. 건조하다. 아름답다. 끝까지 간다. 그래서 다르다. 영화 안의 인과로 먹먹함을 느끼진 쉽지 않다. 다만 역사적인 이유로, 배우들로, 그 건조함에, 감정에 이입된다면, 여느 독립 운동 소재 영화와 다른 울림을 줄 것 같다.

9월7일 개봉. 120분. 15세 관람가.

추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스태프보다 투자한 사람들 이름이 먼저 오르는 여느 한국영화와 달리 '밀정'은 워너브라더스 로고가 등장한 뒤 오프닝 크레딧에 스태프 이름이 곧장 소개된다. 투자한 사람 명단은 본편 상영 전에 검은 화면 위로 스치듯 등장한다. 한국 투자배급사 영화들에선 안 되는 일이, 할리우드 직배사인 워너브라더스에서 만들면 가능하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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