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50대 앞두고 주인공..60대엔 상 받길 바란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8.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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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사진=이동훈 기자


박지영(48)이 '범죄의 여왕'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타이틀롤이다. 한국영화계에서, 여배우에게, 그것도 중년에게, 쉽지 않은 기회다. 박지영은 기회를 잡았다. 배우게도, 감독에게도, 함께 한 이들에게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범죄의 여왕'(감독 이요섭)은 오지랖 넓은 시골 미용사가 사법고시 2차 시험을 앞둔 아들에게서 수도요금이 120만원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들바보 엄마는 허름한 고시원을 찾아 수도요금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친다. '반칙왕'으로 독립영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 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의 신작이다.


박지영이 아니었다면, 오지랖 넓은 그냥 아줌마였을 수 있다. 그냥 여느 아들바보 엄마였을 수 있다. 하지만 박지영은 '범죄의 여왕'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엄마고, 아줌마고, 오지랖 넓지만, 사랑스러웠고, 귀여우며, 매력적이다. 스무살 넘게 차이 나는 조복래와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연스럽다. 박지영이기에 가능했다.

-'범죄의 여왕'은 왜 했나. 출연료도 적고, 신인감독인데. 독립영화고.

▶원래 B급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배우로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건 새로운 감독을 만나는 기회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타이틀롤이 아니었더라도 크든 작든 새로운 역할에 갈증이 있었다. '범죄의 여왕' 시나리오를 읽고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지 머리 속에 다 그려졌다. 가족들이 VIP시사회에 와서 보고 진짜 내 얼굴을 봤다고 하더라.


-조복래와 극 중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관객이 그렇게 느꼈다면 고민이 적절하게 표현된 것이라고 했었는데.

▶그렇다. 처음 감독과 그런 이야기를 나눴을 때는, 그럼 복래랑 나중에 같이 사는거야? 내가 밥도 해주고? 그럼 잠은? 이렇게 이야기도 했다. 내가 복래 또래 아들이 있는 엄마 역할인데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고. 영화 속에서 처음에는 고아인 복래에게 엄마 해줄까부터 시작 하잖나. 그게 그 여자의 매력인 것 같다. 아들바보지만,사랑이 많은 여자라는 점.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강조해서 어떻게 연기하려 하진 않았다. 그런 영화도 아니고. 원래 몇몇 장면에선 더 '러브러브'한 게 있었는데 다 편집됐다.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런 뉘앙스를 관객이 봐줬으면 감사할 뿐이다.

-아들 바보 역할인데.

▶오지랖이 넓고 사랑이 많은 여자 역할이다. 나와 다르다. 난 오지랖은 적고 사랑은 깊다.

-타이틀롤을 맡은 데 대한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일전에도 독립영화 '외계인이다'를 했었다. 난 속된 말로 잘 나갔던 20대에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됐다. 27살에 결혼을 했으니깐. 당시는 내가 능력이 뛰어났다기보단 젊음으로 주인공을 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니 그게 모든 게 내가 잘못한 것처럼 밀려나게 되더라. 배우란 게 금방 띄우기도 하고, 자기 잘못도 아닌 데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잖나.

그러다가 아이 둘을 낳고 '꼭지'에서 원빈이랑 멜로 연기를 했다. 다시 주목을 받게 되더라. 인생이란 게 그렇다. 30대 중반에 '우아한 세계'로 영화를 했다. 그렇기에 주연과 조연, 그런 건 큰 의미가 없다. 얼마나 새롭고 다른 나를 보여줄 수 있으냐가 중요하지.

-B급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오 그레이스' 같은 영국영화를 좋아한다. 한 마을 사람들이 한 데 뭉쳐서 이런저런 소동극을 벌이는 이야기. '범죄의 여왕'은 딱 그렇다. 게다가 캐스팅이 너무 사랑스럽다. 어디서 이런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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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사진=이동훈 기자


-한참 어린 배우, 감독, 스태프들과 같이 작업 했는데. 어느 분야든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게 되는 법인데.

▶그렇지 않다. 그러면 내가 새로워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편하게 지시해야 내 새로운 모습을 같이 만들수 있다고 믿는다. 최대한 맞추려 노력했다. 그건 서로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난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현장이 좋다. 아무리 모니터를 봐도 나는 똑같아 보이는데 계속 컷을 하고. 그렇게 톤을 만들어주는 현장. 이번에는 그런 점에서 너무 좋았다. 배우들도 너무 좋았다. 복래가 하는 목소리 톤 변화가 너무 좋아서 듣다가 '나중에 나도 한 번 써먹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피드백이 오고가는 정말 좋은 현장이었다. 물론 내가 출연료보다 회식비로 쓴 게 더 많긴 하다.(웃음)

-원래 설정은 경상도 아줌마였다가 박지영이 캐스팅되면서 미스 춘향 출신으로 설정이 바뀌었다던데.

▶미용실에 일부러 미스 춘향 화관을 가져다 놨다. 연기하면서 억척스런 아줌마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에서 아줌마 역할이란 대게 천편일률적이지 않나. 그리고 이 영화 속에서 난 계속 '양미경'이란 이름을 말한다. 누구 엄마가 아니라 양미경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여자란 것이다. 나도 그렇다. 누구 아내, 누구 엄마가 아니라 박지영이라 불리는 이 직업이 그래서 좋다. 우리 또래가 되면 아무리 공부 잘했고, 잘 나갔던 여자라도 자기 이름으로 불리기가 쉽지 않다.

-엔딩부터 여러 장면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보이는데.

▶감독은 내가 자동차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끄덕이는 게 정말 좋았다고 하더라. 난 전혀 의식을 안 한 것이었는데. 그랬다면 내가 힘을 정말 빼고 연기했던 것 같다. 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 땀을 때려본 적도 없는데, 그런 역할들을 주로 했다. 한 때는 왜 그런 것만 들어올까 고민했지만, 그렇게 세게 보이는 얼굴을 주신 것에도 감사하게 됐다. 그래도 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건 연기자로서 당연하다.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결국 영화 속에서 아들보다 정의를 택하는데.

▶나는 딸만 둘이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들 가진 엄마들은 "아들, 아들"하고 부르는 것 같다. 딸은 강하게 키우려 하는데, 아들 엄마들은 자지가 다 해줄께, 이런 심리를 갖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마마보이로 키우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이 영화 속에선 비록 아들바보인 엄마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그리고 남도 못지 않게 사랑하는 엄마로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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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사진=이동훈 기자


-주인 의식이 많고, 박지영이란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난 나중에 죽을 때 두 딸들에게 '(우리 엄마)괜찮은 인간 아니었나'란 소리를 듣고 싶다. 그래서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기에 포기한다. 좋은 엄마, 좋은 배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것들을 포기한다. 난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나도 희생하고 싶지 않다. 그런 점에서 '범죄의 여왕'은 너무 좋았다.

큰 애가 대학교 2학년이고, 둘째가 고3이다. 큰 애가 자기도 다 컸으니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하더라. 둘 째는 '범죄의 여왕' 시사회에 다녀와서 편지를 남겼더라. "우리 엄마(외할머니)가 영화 속 나를 보는 눈이 너무 좋았다며 자기도 나중에 엄마가 나를 그렇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더라.

-유머 연기도 능숙하게 소화했는데.

▶고량주를 먹는 사무실에 쳐들어 갔다가 나오면서 그 병을 쓰러뜨리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런 아이디어를 스스로 낼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다. 관객이 웃어주길 바랐고. 정극 연기를 주로 하다가 그런 연기를 하는 게 정말 재밌었다.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얼마나 재밌을까 싶더라. 그런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감사했다.

-'범죄의 여왕' 포스터는 올해 한국영화 포스터 중 최고일 것 같은데.

▶B급 특유의 정서가 녹아있다. 그 돈에 그 퀄리티라니 믿기지 않는다. 이요섭 감독이 첫 작품이니 십시일반으로 다들 도와준 것이다. 십시일반은 두 번은 없다. 그래서 첫 번째에 잘 해야 한다. 이요섭 감독은 너무 잘했다.

일단 제목부터 너무 좋다. 제목을 바꾸면 안 할 것이라고도 했었다. 처음 그렇게 의상을 입히고, 가발까지 쓰니 너무 '여자여자' 같아서 맞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입고 나니 딱 그 사람이 된 것 같다.

'범죄의 여왕'은 고시생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삶을 끝자락에 있는 바로 지금 사람들 이야기다. 그런 점도 이요셉 감독이 정말 잘 그린 것 같다.

-'범죄의 여왕' 개봉도 앞두고 있고, '보보경심'도 방영되고, '질투의 화신'도 찍고 있는데.

▶원래 한 번에 한 작품만 하는데 드라마 방영이 지금 결정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난, 잘 기다리면 기회가 늦게 오긴 해도 언젠가 올 것이라 믿는다. 기차가 늦게 와도 나중에 특급열차가 올지 어떻게 하냐. 50대를 앞두고 주연영화를 찍었으니 60대에는 상을 탔으면 좋겠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카데미 상을 탔을 때 모두가 박수쳤던 것처럼 나도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합당한 상을 그 때쯤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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