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덕혜옹주']

관련기사 4

'덕혜옹주' 손예진이라 가능했던 덕혜의 삶과 광기 ①

[리뷰] 덕혜옹주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7.28 12:17 / 조회 : 2577
  • 글자크기조절
image


조선의 마지막 황녀 이덕혜. 한 때 조선의 희망이였지만, 일본인과 결혼한 뒤 모두에게 잊혔던 여인. 덕혜옹주는 나라를 버린 여인일까, 나라가 버린 여인일까.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로 묻는다.


'덕혜옹주'는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을 각색한 영화다. 사실과 허구로, '덕혜옹주'의 삶을 재구성했다.

망국을 맞았다. 예뻐라 했던 아버지 고종은 독살됐다. 조선과 일본은 하나라는, 일제의 선전용 왕족 신세가 됐지만, 여전히 덕혜옹주는 조선의 희망이었다. 일찍이 아비를 여윈 가련한 마지막 황녀. 어여쁜 아기씨.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암울한 세상에 허덕이던 조선 사람들에게 낙이었다.

이씨 왕가를 일제의 입맛에 맞게 조정하던 한택수는 기모노를 공식석상에 입는 것조차 거부하는 덕혜옹주가 눈에 가시다. 한택수는 덕혜의 어머니 양귀인을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그녀의 일본행을 종용한다.

어미의 안전 때문에 덕혜옹주는 기모노를 입고 13살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떠난다. 곁을 지켜주는 나인 복순이가 없었다면 버틸 수 없었던 시간이었을 터. 그녀의 바람은 오직 고국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랬던 덕혜옹주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어릴 적, 아비가 미래의 남편으로 점찍어놨던 장한이다. 장한은 일본군복을 입었다. "일본군복이 잘 어울린다"며 장한을 멸시하는 덕혜. 하지만 장한은 사실 덕혜의 오라비 영친왕을 상해임시정부로 망명시키려는 임무를 띄고 온 독립군이었다.

장한의 속내를 알게 된 덕혜는, 그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꿈꾸게 된다. 장한으로 일제 치하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된 삶을 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덕혜는 백성들의 비참한 삶에 눈뜨게 된다.

일제의 충실한 개가 된 한택수는, 덕혜옹주를 내선일체 선전에 이용하려 한다. 어미를 만나고 싶어하는 덕혜의 마음을 이용한다. 덕혜는 조선인 노동자 앞에서 내선일체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손가락마저 잃은 어린 소년소녀들이 그만 눈에 밟힌다. 덕혜옹주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며 "돌아갈 고국이 있으니 잘 버티리라"고 한다. 그녀의 속내이기도 하다.

그녀의 연설은 일제와 한택수를 분노하게 만든다. 덕혜가 유일하게 마음을 줬던 나인 복순이는 조선으로 돌려 보내진다. 대마도주와 결혼까지 강요받는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어머니 양귀인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결국 덕혜옹주는 장한에게 오라비 영친왕과 함께 망명을 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망명작전은 벌어지고, 덕혜옹주의 운명은 소용돌이친다.

덕혜옹주는 13살 어린 나이에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서 살다가 대마도주와 결혼했다. 덕혜옹주가 일본인과 결혼했다는 소식은, 당시 조선인들에게 엄청난 분노를 자아냈다. 황녀가, 마지막 황녀가, 일본인과 결혼하다니. 그리고 그녀는 사람들에게 잊혀 졌다.

대마도주 소 다케유키와 결혼한 덕혜옹주는 어머니 장례식마저 보지 못한 한 때문인지, 외로움 탓인지, 조현병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이후 증세가 악화돼 해방 직후인 1946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남편과는 1955년 이혼했다. 덕혜의 딸 마사에는 1956년 등산을 다녀오겠다는 메모만 남기고 사라져 자살로 기록됐다. 덕혜는 고국이 해방됐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이 안정을 위해 조선왕가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 덕혜옹주는 5.16 이후 입국이 허락돼 1962년, 37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말년을 보내던 덕혜는 남편이 한 차례 만나러 왔지만 거부하고 살다가 1989년 삶을 마감했다.

영화 '덕혜옹주'는 이런 사실에 상상력을 더했다. 허진호 감독은 왜 덕혜옹주가 미쳤을까, 생각했다. 무엇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을까 생각했다. 독살된 아비, 13살에 헤어져 죽을 때까지 못 만난 어미. 일본인으로 둘러 싸인 나날. 돌아가고 싶은 고국. 잊혀져 가는 삶. 정략 결혼. 거부당한 고국. 그녀가 해방 이듬해에 정신병원에 입원한 건, 그토록 바랐던 돌아가고 싶었던 나날을, 거부 당했기 때문이라고 그렸다.

거기에 조선독립이란 당의를 입혔다. 영친왕 망명사건이란 실제 역사를, 영화적 허구로 덕혜의 삶과 연결 시켰다. '덕혜옹주'의 모순은 여기서 시작된다. 일제 강점기에 왕족으로서 조선독립이란 대의까지 포함 시키면서, 영화는 온전히 덕혜의 삶에 집중하지 못한다. 보호해줘야 하는 삶. 지켜줘야 했던 삶. 나라 잃고, 부모 잃고, 외로움에 미쳐갔던 여인 이야기에, 누군가가 지켜줘야 했던 삶이라고 더한다.

지켜주는 남성. 보호받아야 하는 여성. 잃은 나라를 되찾으려는 남성. 잃은 나라를 상징하는 여성. 이 도식으로 말미암아, '덕혜옹주'는 그 삶을 살피는 대신, 지켜줬어야 했던 여성이란, 남성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시각이 삽입된다. 아쉽다. 허진호 감독의 시각이라기보단, 100억원이 넘는 돈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야 했던 환경 탓인 듯 하다.

허진호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혜옹주를 능동적으로 그리려 했다. 필연적으로 수동적이었을 수 밖에 없었던 덕혜의 삶을, 그 속에서도 행동하려 했던 삶으로 그리려 했다. '덕혜옹주'가 남성 민족주의 시각에서 숨통을 틔울 수 있었던 건, 허진호 감독의 그런 선택 덕이다.

그런 선택에 힘을 더한 건 손예진이다. '덕혜옹주' 타이틀 롤을 맡은 손예진은, 하얗게 불태웠다. 외로움, 고고함, 연정, 그리움, 그리고 광기를 손예진은 말 그대로 자신을 불태워 해냈다. 하얀 재 같은, 덕혜의 마지막 모습은, 손예진이었기에 가능했다. 손예진에 감정을 이입하면, '덕혜옹주'의 모순도 저절로 받아들여진다. 손예진이, 손예진의, 손예진이여서 가능했다.

손예진을 제외하곤 '덕혜옹주'의 캐릭터들은 전형적이다. 전형적인 캐릭터들로 영화 안에서 설명을 대신한다. 모든 악은 윤제문이 연기한 일제의 개 한택수가 떠맡는다. 나라를 되찾으려는 삶들은 박해일이 맡은 장한과 독립군들이, 그 역할만으로 설명한다. 우유부단했던 이씨 왕가의 삶과 독립에 관심을 보였던 왕가의 삶은, 각각 영친왕과 이우 왕자 캐릭터로 그려낸다. 전형적인 캐릭터는 양날의 검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대신 풍성함을 줄인다. 그래도 박해일 같은 배우들의 아우라가 전형성을 줄이는 데 한 몫 했다.

'덕혜옹주'에서 박해일 맡은 장한은 실존 인물에 상상력을 더해 만든 캐릭터다. 고종이 덕혜옹주와 결혼시키려 했던 실존 인물 김장한에, 그녀를 귀국시키는 데 큰 몫을 했던 인물이 그의 친형제였다는 점을 염두해 창조해 냈다. 박해일은 전형의 늪에 빠질 수 있는 인물을, 그의 부드러움으로 생기를 불어넣었다.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에서 처음으로 세트 촬영을 했다. 전작 '위험한 관계'는 세트로 성 하나를 지었던 만큼, 사실상 세트 촬영은 '덕혜옹주'가 처음이다. 예산 때문인지, 세트로 대변되는 미술은 아쉽다. 영화 초반 답답한 리듬은, 덕혜옹주의 삶 때문만은 아니다. 미술의 아쉬움도 일조했다.

허진호 감독에게 좀 더 많은 예산과 좀 더 많은 자유가 허용됐다면, '덕혜옹주'는 또 다른 영화가 됐을 것 같다.

8월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관련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