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스틸러]더도말고 덜도말고, 그냥 배우 라미란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7.26 10:00 / 조회 : 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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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라미란 / 사진=이기범 기자


◆배우 라미란. 본명 라미란


◆1975년 3월 6일생

◆별명 치타여사, 여사 성동일, 만능란, 갓미란, 대대장님

◆스크린 데뷔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


여배우를 위한 영화가 없다. 여배우가 설 자리가 없다. 여배우로 살기가 쉽지 않다…. 참으로 지겹게 들었고 지겹게 해왔다. 어쩔 수 없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해도 그건 사실이니까. 한 해에 백 편 넘는 한국영화가 나오는 와중에도 비중과 상관없는 전천후 연기파 배우군단엔 여배우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이 와중에 나타난 라미란(41)은 단비 같았다. 이름은 모른 채 눈에 담아뒀던 그녀의 얼굴은 점점 친숙해졌고, 이제는 다 아는 대세가 됐다. 하지만 평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여자 성동일"이라 했고, 누군가는 "카리스마 있는 배우"라 했으며, 누군가는 "19금 토크의 제왕"이라고 했다. "알고 보면 천생 여자"라는 소리도 들렸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평가다. 그녀는 매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여인이고, 누구라도 될 수 있는 배우니까. 라미란의 작품을 보고나면 그녀 같은 친구가, 이웃이, 동료가, 엄마가 그녀가 있던 그 곳에 분명 살고 있을 것만 같으니까.

허나 짚고 넘어가야겠다. 라미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웃기는 배우가 아니며, 또 하나 혜성처럼 등장했을지언정 갑자기 뜬 스타는 더더욱 아니란 걸. 데뷔작이 '친절한 금자씨'(2005)라니 '아 이제 한 10년 됐구나' 넘겨 짚기 십상이지만 라미란은 그 이전에도 10여 년을 더 배우로 살았다. 그녀는 서울예대 연극과 93학번. 김수로 이필모 정성화가 동기고, 황정민이 3년 선배다. 95년 졸업 후엔 곧장 무대로 갔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활약했다. 스크린 데뷔 이후에도 한참을 더 무대에 섰다. 2010년 뮤지컬 '연탄길'이 그녀의 마지막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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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라미란 / 사진=이기범 기자


연극을 보러 다니며 새 얼굴을 찾던 박찬욱 감독이 그를 발견해 '친절한 금자씨'에 캐스팅한 것이 영화배우 라미란의 시작이다. 출소한 금자 이영애가 가장 먼저 찾아갔던 감방 동기 오수희가 그녀였다. 노출도 셌지만 캐릭터가 더 강렬했다. 안부를 묻듯 무심하게 "그 XX 죽였어?"라고 묻던 짧은 머리 여자의 서늘함이라니.

"당시 네 신에 나왔는데 감사하게도 조연으로 이름이 올라갔어요. 하지만 그 이후라고 저를 찾는 데가 확 늘어나지 않았어요. '친절한 금자씨'엔 저 말고도 무대에서 활동하던, 굉장히 많은 배우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찾아다녔어요. 어쩌면 다음 행보가 조심스러울 수 있었죠. 하지만 전 영화가 처음이었고, 아는 게 없었어요. 에이전시에 찾아가 '안 가리고 하겠다'고 했어요. 이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겠다고, 현장도 많이 경험해보고 싶다고. 들어오는 오디션마다 다 했어요."

라미란은 아줌마1, 아줌마2, 아줌마3부터 시작했다. '괴물'(2006)에서 송강호를 붙들고 내 딸 좀 살려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는 역할도 단 1회차였지만 오디션을 거쳐 따냈다. 오디션을 마치고 역할이 바뀌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받아들였다. 비중이나 캐릭터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노출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 가서 얘기를 했더니 그 얘기만 나온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필요한 작품이라면, 보시는 분이 뭣하지 않다면 저는 그냥 괜찮다. 개의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프로페셔널한, 무엇보다 연기 잘 하는 배우를 충무로가 몰라볼 리 없다. 방송가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역할이 이어졌다. 그렇게 라미란이 등장한 크고 작은 영화, 드라마 등이 지금껏 60편에 이른다. '댄싱퀸'(2012)의 시원시원한 매력덩어리 명애, 그림자만 나와도 웃겼던 '스파이'(2013)의 요구르트 아줌마, 울음참던 관객을 결국 꺼이꺼이 울게 한 '소원'(2013)의 영석이 엄마가 탄생했다. 시트콤 '막돼먹은 영애씨'는 라미란이란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고 '응답하라 1988'(2015~2016)의 쌍문동 '치타여사'는 드디어 홈런을 쳤다.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과 현재 방송 중인 '언니들의 슬램덩크'까지, 라미란은 예능에서도 '열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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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라미란 / 사진=이기범 기자


일단 툭툭 이야기를 던지고 '알아서 걸러달라' 할 만큼 솔직하고 거침없는 라미란이지만 약한 게 있다. 다름 아닌 본인 칭찬. 쑥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한마디 더 할라 치면 그저 "감사하다" 할 뿐 몸을 배배 꼬고 호호 웃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안되겠다 싶으면 공연히 이야기를 돌리곤 했다. "제가 생각보다 말이 없죠? 목소리도 낮고요. 이게 원래 저예요. 수다스러운 역할을 하려면 평소보다 톤을 한 톤 높이고 힘을 써야 돼요."

그녀의 실제 모습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는 제작진이 그녀를 그리듯 담아놓은 '응답하라 1998' 속 아줌마 라미란일 것이다. 호피무늬 의상을 즐겨 극 안팎으로 '치타여사'라 불린 호방한 그녀는 러브라인을 주도한 아들들보다 분량이 많았던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이름마저 라미란이었던 그 여인은 쌍문동 아줌마 3인방의 맏언니면서, 인정 많고 끼도 많고 웃음도 많았고, 눈물은 속으로 삼켰던 두 아들의 엄마였다. 그러면서도 천생 여자임을 시시각각 일깨운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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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응답하라 1998' 홈페이지


"치타여사 자체가 라미란 같다는 말, 많이 들었죠. 제작진이 그렇게 골라 써주신 것 같아요. 사실 사전 미팅은 한 번뿐이었어요. 고향 이야기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 하고. 그런데 거기서 이미지를 캐치해서 표현을 해 주셨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수다스럽지 않아요. 이야기도 조근조근 하는 스타일이고요. 초반엔 말도 없었어요. 그러다 한마디로 정리하고. 제가 애드리브도 많이 하시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응답하라 1988' 때 했던 대사들이 애드리브인가 하시지만 다 대본에 있는 것들이에요."

하지만 어찌 그 모두가 대본의 힘이었으랴. 여권에 쓰인 영어를 받아쓸 수 없는 엄마의 '멋쩍은 듯한 웃음', 전국노래자랑을 준비하며 '입반주로 노래하는 미란' 등 대본에 쓰인 글자들을 살아 숨쉬는 캐릭터로 그려낸 건 온전히 그녀인 것을. 치타여사의 흥겨운 춤사위는 뮤지컬 내공 덕이 아니냐 했더니 라미란은 "춤이 아니라 몸부림 정도라고 생각해 달라"고 장난스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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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라미란 / 사진=이기범 기자


라미란은 실제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금자씨' 오디션 당시 젖먹이였던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됐다. 아이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는 여러 워킹맘처럼 많은 여배우들도 아이 때문에 일을 중단한다. 무명의 배우들에겐 더 큰 시련이다. 라미란에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아이를 낳고선 거의 시댁에 얹혀 지내다 7살이 돼서야 분가했어요. 저는 행운아죠. 어머니 안 계시면 저 이 일 못해요. 팔순이신 어머니가 아직도 도와주신다"고 감사를 돌렸다. 아들 이야기를 물었더니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엄마 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누구누구 사인 해다 줘' 하고 이용만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녀는 엉큼한 여자가 됐다가, 웃기는 여자가 됐다가, 씩씩한 여자가 됐다가, 솔직한 여자가 되기도 했다. 씩씩하고 강인한 라미란의 캐릭터들이 더 공감을 얻는 건 평범한 여인들의 모습이 그녀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훠이훠이 손사래를 쳤다.

"연기관이요? 따로 없어요. 그냥 대본에 충실한 거예요. 대본 아니면 기댈 데가 없거든요. 대본이 좋으면 더할 나위가 없고요, 연기하는 사람도 짐을 많이 덜어내죠. 거기에 나온 사람을 그대로 그릴 뿐이에요. 저는 그냥 배우 라미란이었으면 좋겠어요. 뭔가 수식어가 자꾸 붙는 게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한 것 같아 좋지만은 않아요. 심플하게 그냥 라미란, 배우 라미란이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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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라미란 / 사진=이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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