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최우식 "10대 연기는 지금만 누리는 특권같은 것"(인터뷰)

영화 '부산행'의 최우식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7.23 07:08 / 조회 : 8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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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우식 / 사진=홍봉진 기자


"저는 숟가락만 얹었어요."

최우식(26)은 손사래를 쳤다. 흥행질주를 시작한 좀비 재난물 '부산행'(감독 연상호·제작 영화사 레드피터)에서 그는 고교 야구부 영국 역을 맡았다. 좀비 천지가 되어가는 기차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고 친구를 구하려 애쓰는 10대다. 배우들이 사이좋게 분량을 나눠 가진 '부산행'에서 홀로 돋보이는 인물은 아니지만, 감흥을 안기기엔 충분한 캐릭터다. 아비규환 속에서 나보다 친구를, 남을 먼저 떠올리는 건강하고도 선량한 10대의 모습에 그 자체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탓이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등장한 영국이에게서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 건 최우식이란 배우의 개성과 매력 덕이 크다. '거인' 속 절망적인 10대 연기로 수많은 신인상을 휩쓴 최우식은 사실 긍정의 기운으로 넘치는 캐릭터를 즐겨 연기했다. 180cm가 훌쩍 넘는 큰 키가 작게 느껴질 만큼 사랑스러운 인물들이었다. 실제 만난 최우식도 그랬다. 그는 '부산행'에 쏟아진 호평과 기대를 멋진 선배, 감동적인 무명의 배우들, 멋진 크루들의 덕으로 돌리고 싱글싱글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눈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교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26살이 어떤 남자로 변모해갈지 절로 궁금해갔다.

-'부산행'의 흥행질주가 예사롭지 않다.

▶제가 한 게 없다. 저는 그냥 숟가락만 없었다. 정말 그냥 기차에 탄 거다. 공유 마동석 선배님, (김)수안이가 하드 캐리를 하셨다. 저는 그냥 같이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10대 고등학생 야구부 영국 역을 맡았다. 같은 10대지만 여러 신인상을 수상했던 '거인'의 영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같은 10대지만 '거인' 같은 암울함은 없었다. 영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영국이와 진희가 어떤 아이인지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었다. 고등학교 야구부라는 디테일이 더해졌을 뿐,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마주했을 때 10대의 모습을 그냥 보여주자는 느낌이 있었다. '거인'의 영재 같은 애가 있었으면 큰일 났을 거다. 혼자 화장실에 있다가 좀비한테 물려 죽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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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우식 / 사진=홍봉진 기자


-처음 실사영화를 찍는 연상호 감독과의 작업이라 불안했을 수도 있는데.

▶여느 감독님과 다른 느낌이 있다. 동네 아저씨 같다고 해야 하나. 첫 미팅에서도 그냥 이야기 하다가 '너 어떻게 할래?' 하시기에 하겠다고 했더니 '어 그래. 같이 하자' 이렇게 쉽게쉽게 이야기가 넘어갔다. 거기서부터 느낌이 왔다. 소통도 잘 될 것 같았고. 시나리오를 보니 스케일이 커서 '이걸 어떻게 하지, 그런데 감독님은 실사가 처음이시고…' 그랬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감독님은 준비 과정부터 모든 그림을 다 갖고 계셨다. 믿음이 갔다.

-오케이를 너무 빨리 해서 처음엔 배우들이 적응을 못했다더라.

▶촬영 때 오케이를 빨리 하시긴 했다. 저는 현장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야 더 잘하는 편이다. 현장에 감독님이 보셔야 할 사람도 정말 많고 하니 '내 연기를 보셨나',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감독님께 '제가 괜찮게 하고 있나요' 하고 물어보니 '너 마음대로 해' 이러시는 거다. 그 땐 무슨 말씀인가 했는데, 제가 마음대로 인물을 갖고 놀며 편히 해야 캐릭터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렇게 하려고 했다.

-인상적인 10대 캐릭터였다. 건강하고 선하고 또 애틋하기도 하다.

▶사실 10대면 (공유의 딸로 나오는) (김)수안이를 빼고 가장 어린 사람들이다. 도움이 필요하고 보호받아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 영국과 진희(안소희가 연기한 야구부 응원단장)는 남들을 도와준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힘들었을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아이들이 대견했다. 그런 모습에 더 끌리기도 했다. 어린데도 열심히 살아남고. 시나리오를 읽으며 '어, 나 왜 이렇게 오래 살지' 이런 느낌도 받았다.(웃음) 제가 평소에도 '거인'의 영재 외엔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있는 캐릭터를 많이 했다. 영재에게도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좀비로 변한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에서의 영국이 인상적이었다.

▶극중 좀비가 된 지인을 처음 대면하는 사람이 영국이다. 영화를 보시면 좀비들과 처음 막 싸울 때는 액션에 쾌감이 있다. 맞는 효과음도 세고 음악도 두근거린다. 하지만 좀비가 된 친구들을 마주하는 대목에선 분위기가 다르다. 마치 액션도 좀 더 약해지는 것 같은데, 감독님도 영국이의 감정을 따라갔다고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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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우식 / 사진=홍봉진 기자


-공유, 마동석과의 만남은 어땠나. 연기는 물론이고 외적으로도 많이 배웠다고 했는데.

▶다른 현장에서도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 많이 배웠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부산에 갇혀있다시피 하며 촬영했고 현장의 분위기도 남달랐다. 두 선배들은 연기를 할 때와 연기를 하지 않고 현장에 있을 때가 똑같은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도 서로를 위해주는 마음이 느껴진다. 선후배를 떠나 상대 배역을 누르면서 자기가 돋보이게 연기하는 분들이 있다. 저희 현장에선 다들 서로 위해주는 마음이 컸다. 배우들은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 다 서로 챙겨가며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어마어마했다. 저희도 스태프를 다 이름을 외워 부를 정도였다. 저희 분장실장님이 하신 말씀이 '부산행' 정도 크루를 만나는 게 진짜 어렵다고, 물론 앞으로 만날 수도 있지만 쉽지 않다고 하시더라. 감독님도 분위기 메이커고 선배님들도 그랬다. 마동석 공유 정유미 선배 모두 주위 사람들이 다 좋아했다. 연기만 잘 해 올라가는 위치가 아니란 걸 배웠다.

수안이와 선배님들 없었으면 어쩔뻔 했나 싶다. 수안이는 정말 잘 될 것 같다. 예전이 톰 크루즈 딸 수리가 커가는 것 보듯이 다들 얘가 어떻게 크나 지켜볼 것 같다.

-감염자들, 그러니까 좀비들을 연기한 배우들에게도 다들 칭찬이 자자하더라.

▶'그 분들이 진짜 '부산행'의 주인공'이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촬영 당시 정말 더웠다. 폭염주의보 속에 여름옷도 아닌 긴 옷을 입고 물엿으로 만든 피 분장에 렌즈까지 끼고 연기하셨다. 가만히만 있어도 짜증나는 상황인데 혼을 담아 막 연기를 하신다. 여자 승무원을 연기한 배우분이나 심은경씨 모두 한참씩 동작을 배우고 맞춘 결과다. '부산행'에 들어가며 가장 걱정됐던 게 좀비 분들이었다. 어떻게 나올까, CG로 하려나 그랬다. 다른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해도 좀비들이 실감나지 않으면 영화가 완전히 달랐을 거다. 지금 좋은 결과가 나오고, 한국에서 괜찮은 좀비물이 나왔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다 그분 들 덕이다. 카메라에 걸리지 않는 곳에서까지 눈물을 흘려가며 몰입해 주신 보조출연자 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저희는 정말 많이 덕을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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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우식 /사진=홍봉진 기자


-은근한 러브라인도 있었던 안소희와의 연기는 어땠나.

▶사실 만나는 게 얼마 안된다. 소희씨가 낯을 가리는 편이다. 그런데 '부산행' 현장에선 그게 아예 없었다. 정말 친해졌다. 소희씨도 현장에서 더 편해지려고 노력했다. 이 신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 먼저 물어보기도 하고. 처음에는 얘랑 어떻게 친해지나 걱정을 했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너무 좋았다. 둘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기분좋고 감사하다. 소희씨 팬들이 '소희가 진짜 친한 사람한테만 보여주는 표정이 나온다'고 저한테 고맙다고 하더라. 저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웃음) 제가 사실 '놀리기 좋은 애'란 소리를 많이 듣는데 소희도 놀리는 재미가 있다. 자주 놀린다. 현장에서는 톰과 제리처럼 놀았다.(웃음)

-좋으면서 표현을 안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실제 연애할 땐 어떤 스타일인가.

▶실제로 연애할 땐 심심한 편이다. 표현을 자주 안 하는 것 같다. 애교있는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 잉잉거리고 징징거리면 그다지.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 좋다. 제가 평소엔 말수가 적은 편이다. 친한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말수가 줄어든다. 일을 할 때는 낯을 안 가린다. 현장에서 편해야 연기를 잘 하는 스타일이다. 일을 하며 배운 것 같다. 낯을 가리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로 점점 주목받아 가며 힘든 점은 없나.

▶나만의 시간이 없어지는 건 당연한 것 같고, 편하게 있질 못하니 불편하긴 하다. 사람 만나 밥 먹고, 한강에서 치맥하다 잠도 자고 편하게 지냈다. 하지만 '엄지 척'을 해도 보는 사람마다 달리 해석을 하지 않나. 이젠 조금 조심스럽다. 집에 돌아가면 시동을 끈 것처럼 조용히 지낸다.(웃음)

-10대를 계속해 연기한다는 것이 흐뭇하기도 하면서 조바심이 날 수도 있을 텐데.

▶제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극을 찍어도 언제 수염 붙이고 해보나' '나는 언제 남자 회사원, 실장님으로 나오나' 하면서 되게 갈망하고 그랬다. 빨리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리석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청소년물 교복물 학원물 이런 건 때가 있다. 지금 제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도 같다. 동안이다 보니까 약간 나이들어 보이는 배역을 못할 수 있지만 지금 제가 하는 역할을 딴 분은 못하지 않나. 내가 할 수 있는 한 더 잘해서 보여주는 쪽이 좋은 것 같다. 어차피 나이가 드니까 그건 나중에 제가 준비된 상태에서 하면 더 멋있을 것 같다. 이렇게 이미지가 굳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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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우식 /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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