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경 의상감독 "'아가씨' 김민희 기모노, 드레스는.."(인터뷰)①

[韓영화 장인 릴레이 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6.29 09:12 / 조회 : 2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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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경 의상감독/사진=전형화 기자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의상을 이야기할 때, 조상경 의상감독(44)을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다.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로 시작해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을 거쳐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을 거쳐,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친절한 금자씨', 봉준호 감독의 '괴물', '타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김용화 감독의 '미녀는 괴로워', 임필성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 '모던보이'와 '그림자 살인'을 지나 '박쥐',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 강우석 감독의 '이끼', 김태용 감독의 '만추', 장훈 감독의 '고지전'과 김대승 감독의 '후궁',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윤종빈 감독의 '군도', '상의원', '암살'과 '베테랑' '내부자들', '대호' '검사외전' '해어화'와 '아가씨'까지 주요 작품들만 열거해도 끝이 없다.

사극과 스릴러, 에로, 전쟁, 멜로, 느와르에 활극까지 조상경 의상감독의 손에서 수 많은 의상들이 만들어졌다. 의상은 곧 캐릭터다. 의상을 입는다는 건, 그 캐릭터를 입는다는 것이다. 조상경 의상감독은 그렇게 수 많은 캐릭터들을 창조해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가 입은 물방울 원피스,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입은 수트, '올드보이' 최민식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검은색 정장, '후궁'에서 매혹적인 조여정의 한복,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임수정의 정신병원 환자복이지만 나풀거리는 원피스, '아가씨'의 너무나 아름다운 옷들까지, 조상경은 옷으로 이미지를 구현했다. 사실, 의상감독이란 타이틀도 조상경이 한국영화계에서 처음 썼다. 그녀를 설명하기 위해 붙여진 타이틀이었다.

오만석의 전 부인으로 회자 되기엔, 그녀의 성취는 오롯하다.


처음부터 영화 일을 꿈꿨던 건 아니다. 그녀는 스스로 "가족 중 홀로 개날라리였다"고 했다. "20대는 백수"였다고도 했다. 초등학교부터 동양화를 그렸던 조상경 의상감독은 유학을 준비하던 중,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던 친구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준비하는 걸 보고 그냥 원서를 냈다. 시간도 남고, 무대미술 수업들이 끌리기도 했다.

당시 그녀를 뽑았던 교수님이 "모두가 반대했는데 내가 붙였다. 내 안목을 입증시켜다오"라고 했다. 한 달 다니고 휴학했다. 빽빽한 수업을 견디기 싫었다.

온전히 백수로 지냈다. 여행 다니고, 놀고, 비디오 보고, 만화책 봤다. 돈이 있어야 했으니 닥치는 대로 일은 했다. CF 설치미술, 인테리어, 무대 공연 미술작업, 과외, 외고까지, 정말 닥치는 대로 했다. 무의미할 것만 같던 시간들은, 일들은, 그러나 차곡차곡 쌓였다.

조상경 의상감독은 "연극 무대 미술과 의상을 하면서, 그 때 빛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배웠다"고 했다. 여느 백수처럼 만화책을 열심히 읽은 것도 밑거름이 됐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모든 게 쌓였다.

워낙 닥치는 대로 했기에 영화라고 특별하게 다가온 건 아니었다. 영화로 이끌어 준 건 '아가씨'로 칸국제영화제에서 벌칸상을 받은 류성희 미술감독이었다. 한예종 연극무대 일을 하던 중, 인연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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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스틸


당시 류성희 미술감독은 미국 유학길을 끝내고 한국 영화계에서 미술 일을 하겠다고 갓 돌아온 터였다. 한국영화계와는 동떨어진 섬이었다. 미술감독이란 용어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류성희 미술감독이 '피도 눈물도 없이'를 하면서, 새로운 사람과 일을 같이 하고 싶다면서 조상경 의상감독에게 제안을 했다.

영화로 그렇게 들어왔다. '피도 눈물도 없이'를 눈 여겨 본 감독들에게서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류승완 감독의 소개로,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과 인연을 맺었다.

'살인의 추억' 제안도 받았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를 하면서 임신을 했기에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풀고 '올드보이'를 하게 됐다. 원래 일을 안 하려 했는데, 집에만 있으려니 머리가 아프더라"고 했다.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는 안 봤다. '복수는 나의 것'은 포스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찾아봤다. 그러다가 '올드보이' 제안을 받았다. 원작인 만화책을 백수 시절에 워낙 재밌게 봤기에 좋다고 했다.

하다 보니 일이 겹쳐 '올드보이'와 '범죄의 재구성'을 같이 하게 됐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돌고 끊임없이 의뢰가 밀려왔다. 지금도 조상경 의상감독은 '마스터' '신과 함께' '군함도' '택시 운전사' 등등 무려 8편을 작업 중이다.

일과 생활을 병행할 틈도 없었다.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로 영화계에 들어온 뒤 '박쥐'로 2009년 칸국제영화제에 가서 2주 쉰 게 지금껏 가진 휴식의 전부라고 했다. 실제 조상경 의상감독과 인터뷰도 성남에 있는 작업실에서 밤 10시에서야 가능했다.

지금은 30명에 달하는 많은 식구들과 일을 나누지만, 처음에는 모든 걸 혼자 했다. 의상 디자인, 옷감 구하기, 작업 의뢰, 현장 작업, 그 모든 걸 혼자 했다. 감독들에게 "넌 그냥 개인 작업이나 해. 나한테 왜 그러는데, 그냥 옷이나 빌려와"라는 소리도 제법 들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영화세계에 있었다.

"특별한 사명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저 일이 끊임없이 들어왔을 뿐이다. 그런데 영화 일을 하다 보니 나를 알겠더라. 백수로 지냈던 20대가 나를 알게 해줬던 것 같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림을 더 그릴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연극을 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난 '리어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연출보다 디자인이 더 쉽다는 걸, 나와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조상경 의상감독과 같이 작업을 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녀는 의상으로 캐릭터를 구현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녀 스스로는 창의성이 없다고 한다. 조상경 의상감독은 "영화는 텍스트가 명확하다. 시나리오에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 있다. 거기에 맞추면 된다. 그래서 영화가 쉬워서 일을 한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녀는 철저하게 공부한다. 시나리오를 보면, 그 인물의 전사를 스스로 만든다. 과연 이 인물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생각한다. 연극을 하면서 배웠다. 혈액형은 뭘지, 별자리는 뭘지, 궁리한다. 배우가 결정되면, 다시 그 배우와 어울리지 궁리한다. "배우가 키(key)"라고 했다.

배우에 대해서도 조사한다. 그 배우가 출연한 작품들을 다 찾아본다. 개인사까지 두루두루 살핀다. 그러면서 맞춘다. 나머지는 "밸런스"라고 했다. '신세계'에서 황정민이 비행기에서 구두를 벗는다. 원래 시나리오에선 없던 설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왜 벗을까, 그게 캐릭터와 맞아야 한다. 그냥 벗고 싶어서 벗어선 안된다. 서로가 대화를 통해 그 이유가 납득 돼야 한다. 조상경 의상감독은 '신세계'에서 이정재가 단추를 몇 번째부터 풀리는지까지 논의했다. 공부와 소통, 의상감독 일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영화계에서 의상 작업이란 한 때는 옷을 빌려오는 일이었다. 조상경 의상감독은 처음부터 옷을 만들었다. 디자인 공부도 한 적이 없었다.

"단순하다. 그 시절에는 해당 영화와 맞을 만한 브랜드가 별로 없었다. 협찬도 잘 안됐고. 액션영화를 많이 했는데, 액션을 찍으면 현장에서 옷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훼손도 되고, 적당히 변화도 줘야 하는데, 협찬은 그게 안 됐다. 또 배우 팔아서 옷을 빌린다는 게 성격에도 안 맞고. 요즘은 브랜드에 따라 이해가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영화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자는 데 의기투합 되면 빌리기도 한다."

'상의원'이나 '후궁' 같은 화려한 한복이 도드라지는 작업도 했지만, 그녀는 색은 영 자신과 안 맞는다고 했다. 쌓는 게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다. 말은 또 그렇게 하지만, 조상경 의상감독은 촬영감독과 대화를 많이 한다. 어떤 카메라, 어떤 렌즈를 쓰는지 문의한다. 어떤 렌즈냐에 따라, 어떻게 조명이 떨어지는 지에 따라, 의상의 색감과 질감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이 '박쥐'를 찍을 때, 김옥빈 옷을 녹색으로 하자고 했지만 카메라에 비치는 색감이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었다. 그 후 계속 실험을 거쳐 '군도'에서 강동원에 녹색 의상을 입혀봤다. 그렇게 자신을 얻어서 '아가씨'에서 김민희 의상에 녹색을 입혔다.

그녀는 "감이 반"이라고 했다. 말은 안 했지만, 나머지 반은 공부다. '아가씨'를 하려 조상경 의상감독은 일본에 건너가 기모노 선생님에게 배웠다. 원단 고르는 방법부터, 입는 방법, 입히는 방법, 기모노 문양의 의미, 언제 어떤 기모노를 입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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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스틸


조상경 의상감독은 "선택은 감독의 몫이지만, 알려는 줘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아가씨' 시나리오에서는 하정우가 시가렛 재킷을 입고 등장한다고 써 있었다. 이 의상이 실내복인지, 연미복인지, 박찬욱 감독에게 물었다. 당시 시가렛 재킷은 실내복이었기 때문이다. 턱시도도 화이트 타이를 했다. 블랙 타이가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화이트 타이가 예복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의상감독의 일이란, 그렇게 끊임없는 대화이기도 하다. 철저한 공부이기도 하다. 그녀는 "색의 감각은 시나리오가 요구하는 것을 따르면 된다. 장르와 무드에 따라 색감과 질감을 결정한다. 감은 트레이닝이다. 나머지는 밸런스"라고 했다.

'아가씨'는 처음에는 안 하려 했다. '아가씨' 시나리오를 보니, 미니멀해야 했고, 그런 그림에는 오히려 일본 디자이너가 더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박찬욱 감독 팬으로서 다른 그림을 보고 싶기도 했다.

"안 한다고 도망 다니다가 결국 하게 됐다. 사실 '해어화'와 '암살'을 했으니 일제 시대에 차별성이 없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박 감독님에게 그럼 몇 년대로 만들 생각이냐, 이미 1920년대와 1930년대 이야기는 다 했다고도 했다."

'아가씨'에서 김민희 의상이 1910년대 것으로 설정한 건 사실 그런 이유였다. 김민희가 어릴 적에 방으로 들어와 갇혀 살았던 게 1910년대고, 그대로 시간이 그녀에겐 멈춰 있었기에 1910년대로 설정했다는 건 나중에 갖다 붙인 이유였다. 또 영화 속에서 코르셋이 필요했으니, 코르셋이 들어간 의상을 갖추려면 1910년대 의상이어야 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코르셋 의상이 사라지다시피 했으니깐. 그리하여 하정우는 1930년대 의상이다. 외부에서 온 사람이니깐. 그리하여 김민희와 김태리가 탈출했을 때, 입은 의상은 1930년대 의상이다. 하정우 옷을 뺐었으니깐.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안 한다고 도망 다녔던 것 만큼 더 철저해야 했다. 콘셉트를 미리 정했지만, 김민희가 결정된 순간 모두 버렸다. 안 어울렸다. 전부 배우에 맞췄다.

김민희가 입은 기모노는, 문소리가 입은 기모노와 같다. 사실 처녀가 입는 기모노라, 문소리가 입으면 안 됐다. 그럼에도 그 낭독회 공간의 의미, 그리고 둘이 연결되는 고리에 맞췄다. 기모노에 있는 서양난 문양도 당시에는 없던 것이었다. 고민했지만, 일본에서 본 원단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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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스틸


에로는,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에로는 정서가 의상에 다 들어오기에 더 어렵다고 했다. "옷을 입히고, 벗기고, 도와주는 의상이 훨씬 어렵다. 그래서 뭘 보여줄 건지를 박 감독님에게 물었다. 어떤 체위일지, 물리적으로 가능할지, 그런 것도 체크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코르셋에 클로즈업이 된다면, 단추 하나하나에도 공을 들여야 할테니.

마지막까지, 작업에 공을 들이다 보니 촬영 전날에야 옷이 공수되는 게 다반사였다. 박찬욱 감독이 믿어줬기에 가능했다. 그녀는 "박찬욱 감독은 의견을 듣고 수용하는 데 아주 우연하다. 믿고 맡겨주기도 하고. 그래서 가장 신뢰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의상들은 '아가씨'에서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아름다운 옷들은, 관객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빨려들게 만들었다.

조상경 의상감독은 말했다.

"어릴 적에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게 없었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고 후배들과 같이 작업을 하다 보니 점점 많은 생각이 든다. 의복은 굉장한 함의를 갖고 있다. 내가 참여한 영화에는 엔딩 크레딧에 자문, 구두제작, 의상제작, 테일러, 의상팀, 의상실장, 바이어까지 모두 이름을 넣는다. 결국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니깐. 시스템과 협업, 이런 것들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조상경 의상감독의 앞으로 필모그래피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상경 의상감독이 밝힌 '아가씨' 옷들에 감춰진 비밀②, 조상경 의상감독 "영화 의상은 결국 시스템" ③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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