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돌부처'멘탈 오승환, 마침내 '파이널 보스'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6.06.2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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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3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AFPBBNews=뉴스1


드디어 ’파이널 보스‘의 시간이 왔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지난 주말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클로저 트레버 로젠탈의 불안한 모습이 계속되는 와중에서도 고집스럽게 그에 대한 지지를 풀지 않았던 마이크 매티니 감독도 마무리 붕괴로 인한 또 한 번의 뼈아픈 역전패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정으로 그동안 조용히 메이저리그 최고의 불펜투수 중 한 명으로 떠오른 오승환이 마침내 ‘파이널 보스’(끝판대장)라는 근사한 닉네임을 빅리그 무대에서도 본격적으로 펼쳐 보일 무대가 마련됐다.


그 누구보다도 원칙에 충실하고 한 번 검증된 선수는 철저히 믿는 매티니 감독이었기에 지난 2년간 메이저리그 최다 세이브를 올린 로젠탈을 마무리 보직에서 끌어내리는 결정은 정말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로젠탈이 그가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 격이 됐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시애틀 매리너스의 경기에서 3-1로 앞선 9회말 마운드를 넘겨받은 로젠탈은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 채 안타와 볼넷에 이어 애덤 린드에게 끝내기 3점포를 맞고 3-4 역전패를 당했다. 그날 경기 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재 내겐 해답이 없다”고 말했던 매티니 감독은 결국 다음날 로젠탈에게 더 이상 클로저를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실 그날까지 최근 7경기에서 두 번의 블론 세이브와 2패를 기록한 로젠탈을 계속 클로저로 기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특히 이날 세인트루이스는 선발투수 카를로스 마르티네스가 퀄리티 스타트(QS-선발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를 기록하면서 구단 최고기록과 타이인 13경기 연속 QS를 기록했음에도 그 기간 중 성적이 7승6패에 불과했던 것은 불펜, 특히 최후의 방어선인 클로저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클로저 교체는 팀 차원에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특히 로젠탈은 6월 중에 6세이브를 기록하긴 했으나 11차례의 등판 가운데 3경기에서 아웃카운트를 단 하나도 잡지 못했고 패전과 블론세이브를 각각 2회씩 기록하며 평균자책점이 14.14까지 부풀어 올랐다. 도저히 믿고 뒷문을 맡길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매티니 감독은 로젠탈을 대신해 클로저를 맡을 선수가 누구인지는 발표하지 않고 일단 그날그날 경기 상황에 따라 오승환과 케빈 시그리스트, 조나단 브락스턴 등으로 집단 마무리 시스템을 가동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은 임시방편일 뿐 궁극적으로는 붙박이 클로저가 필요한 데 모든 조짐은 로젠탈을 대신해 9회 마운드에 오를 선수가 오승환임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 2년간 메이저리그 최강의 불펜을 자랑해온 세인트루이스에서 오승환이 시즌 전반기도 지나기 전에 클로저 자리를 꿰찰 것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빅리그에서 오승환이 올린 성적을 살펴보면 한국과 일본에서보다 오히려 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충분히 뒷문을 책임질 자격이 있어 보인다. 한국과 일본에서 뛴 11년 동안 오승환은 평균자책점 1.81과 0.85 WHIP(이닝당 안타+볼넷)을 기록했다. 9이닝당 볼넷은 2.1, 삼진은 10.7개였다. 그런데 빅리그 진출 후 오승환의 성적은 평균자책점 1.66에 0.79 WHIP, 그리고 9이닝 당 볼넷 1.9, 삼진 12.1을 기록하고 있다. 모든 부문에서 빅리그 성적이 더 앞선다. 지금 오승환의 부문별 성적은 거의 전 부문에서 구원투수 가운데 메이저리그 최상위급이다.

사실 오승환이 뛰어난 투수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곧바로 이 정도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할 순 없었다. 특히 오승환의 투구를 보면서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 ‘돌직구’라 불리는 그의 빠른 볼 구속이 보통 시속 90마일 초반 대를 찍고 있음에도 불구, 그의 빠른 볼에 헛스윙을 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이다. 잇달아 허공을 가르는 타자들의 스윙을 살펴보면 오승환의 빠른 볼 구속은 93~94마일이 아니라 98~99마일처럼 느껴질 정도다.

많은 전문가들은 오승환의 공 릴리스 포인트가 다른 투수들보다 늦다는 사실과 타자의 타이밍을 살짝 흐트러뜨리는 그의 투구 모션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패스트볼과 함께 그의 또 다른 주무기인 극강 슬라이더 덕이 큰 것 같다. 오승환의 슬라이더는 피안타율이 0.174에 그치고 있고 삼진률이 45%에 달한다. 타자가 알고도 못 치는 슬라이더와 볼끝이 살아 캐처 미트에 꽂히는 ‘돌직구’가 결합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메이저리그 최상급의 구원투수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투구에 대한 콘택트 비율 64.1%는 내셔널리그 구원투수들 가운데 3번째로 낮은 것이다.

오승환은 아직도 빅리그에서 세이브를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277세이브, 일본에서 80세이브를 기록하며 ‘끝판 대장’의 명성을 쌓아 온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중간계투로 출발해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결국 반 시즌이 지나기 전에 ‘마무리’라는 자신의 본자리를 거머쥐는 단계에 돌입했다.

과연 오승환이 본격적으로 클로저로 나서게 된다면 지금까지 셋업맨으로 뛸 때와 비교해 그의 퍼포먼스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다. 클로저란 팀의 최후의 방어선으로 가장 심리적 압박감이 큰 직책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8회에 나서는 셋업맨보다 더 힘든 보직이고 더 좋은 구위를 보유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8회를 책임지는 셋업맨이 9회에 나오는 클로저보다 구위 면에서 더 뛰어난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하지만 클로저가 반드시 갖춰야 할 무기는 위력적인 구위와 함께 그 누구보다도 심적으로 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승환이 최고의 클로저가 될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파이널 보스’와 함께 그가 보유한 또 하나의 유명한 닉네임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돌부처’다. 삼진을 잡았을 때나, 홈런을 맞았을 때나 전혀 감정의 동요를 보여주지 않고 시종일관 흔들림 없는 평정심을 잃지 않는 ‘돌부처’ 오승환은 ‘파이널 보스’가 되기에 최적의 멘탈 조건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한국, 일본에 이어 이젠 메이저리그를 호령할 ‘파이널 보스’가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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