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무비] '비밀은 없다' 아쉬움과 미덕 사이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6.26 09:29 / 조회 :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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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비밀은 없다'가 23일 개봉했습니다. 이경미 감독은 2008년 '미쓰 홍당무'로 충무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기대주였습니다.


2008년은 미래가 촉망받는 감독들이 대거 등장한 해였습니다. '추격자' 나홍진, '과속스캔들' 강형철, '영화는 영화다' 장훈, 그리고 '미쓰 홍당무' 이경미 등은 한국영화의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들)로 불렸습니다.

8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나홍진 감독은 '황해'와 '곡성'을, 강형철 감독은 '써니'와 '타짜2'를, 장훈 감독은 '의형제' '고지전' 등을 내놨죠. 이경미 감독은 8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비밀은 없다'를 선보이게 됐습니다.

긴 시간이었습니다. 이경미 감독은 그간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인 할리우드 영화 '도끼' 시나리오를 썼고, '여교사'라는 스릴러를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여교사'는 결국 엎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이경미 감독은 미국에서 '스토커' 작업 중이던 박찬욱 감독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여교사' 시나리오에 있던 서브 플롯을 발전시켜 보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이경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은 같이 시나리오를 발전시켜나갔습니다. '불량소녀'란 제목의 이야기는 어느덧 '비밀은 없다'로 바뀌었습니다.


'비밀은 없다'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유력 정치인 부부가 딸이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립니다. 딸이 없어지건 말건 선거에만 관심을 두는 것 같은 남편에 실망한 아내가 홀로 딸을 찾아나서면서 점점 숨겨진 비밀을 접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개봉도 쉽지 않았습니다. 원래 지난해 11월 개봉 예정이었던 것이 차일피일 밀렸습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출품 결과를 보자는 둥 이유는 있었지만 정말 그런 이유였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영화계에선 '비밀은 없다'는 4.11 총선이 끝난 뒤에야 개봉할 수 있을 것이란 말들이 무성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죠.

아무튼 '비밀은 없다'는 관객과 만났습니다. 호불호가 갈립니다. 과잉이라는 평과 만족스럽다는 평으로 나뉩니다. 호든 불호든 아쉬운 부분은 물론 있습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평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손예진이 엄마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손예진이 젊고 예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이가 없어진 엄마의 대응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히스테리컬 합니다. 너무 빨리 불이 붙습니다. 엄마인 동시에 아내 일 텐데, 너무 빨리 아내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 속 그녀의 행동이 초반부터 지나칠 정도로 강박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두 시간 동안 하는 것 같습니다.

놀라운 건 손예진은 두 시간 동안 100 미터 달리기를 전력으로 완주 해냈다는 점입니다. 손예진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정말 여러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후반으로 갈수록 손예진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다는 건, 감독이 밸런스를 잘 잡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은 없다'에는 값진 미덕들이 가득합니다. 기괴하게 울리는 음악과, 절묘한 미술, 그리고 소녀들의 호흡은, '비밀은 없다'를 단지 정치 스릴러 인줄 알았던 관객들에게 선물 같습니다. 아쉬움이 도드라지는 건, 그만큼 미덕이 두드러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손예진을 비롯한 주요 여성 캐릭터들은 다릅니다. 자기 영역이 분명하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 또는 분노가 명확합니다. 꽃처럼 소비되곤 하는 여느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과는 딴 판입니다.

이런 미덕은 이경미 감독의 데뷔작 '미쓰 홍당무'와도 이어집니다. 왕따로 얼룩졌지만 그 속에 피어나는 여성들의 연대, 하필이면 중학교입니다. '미쓰 홍당무'도 그랬죠. '비밀은 없다'에서 소녀들의 모습을 조금만 더 보고 싶어지는 건, 이경미 감독이 그린 진짜 비밀이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경미 감독은 여전히 기대주입니다. '비밀은 없다'는, '미쓰 홍당무'처럼 여전히 그녀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번에는 8년이 걸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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