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를 향한 푸념..미소년은 어디 가고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6.07 14:03
  • 글자크기조절
image
사진='엑스맨:아포칼립스' 스틸컷


(다음 기사에는 '엑스맨:아포칼립스'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약은 약사에게, '엑스맨'은 싱어에게'라는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엑스맨:아포칼립스'는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잇는 프리퀄의 3부작이다. 지난달 25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 250만 명을 넘겨 흥행 중이다. 엇갈린 반응 속에 '이집트는 할리우드의 무덤'이란 말도 돌지만 이 정도면 선방이란 생각도 든다. 속편의 해답을 결국 피라미드에서 찾았던 '트랜스포머'나, 황금색 CG마저 공허했던 '갓 오브 이집트'를 떠올려보라.


작정하고 흠을 잡자면 한둘이겠냐마는, 개인적으로 영화의 부제이자 메인 빌런인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작)가 아쉬웠다. 유난스러웠던 펌프질에 비해 위엄이나 능력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본명이 '엔 사바 누르(En Sabah Nur)'인 아포칼립스는 이름 자체가 세상의 종말이자 대재앙이다. 심지어 "나는 여러 생애에 걸쳐 라, 크리슈나, 야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며 이집트 신화, 힌두교, 유대교의 최고신을 자처할 정도다. 실제 아포칼립스는 '엑스맨' 코믹스에선 '어벤져스' 시리즈의 타노스에 비견되는 능력자다. 뮤턴트의 창조자인 외계종족 셀레스티얼로부터 직접 힘을 받은 빌런이자 최초의 돌연변이로, 엄청난 괴력과 방어력, 정신능력, 텔레포트, 물질조작, 능력강화 등 능력치도 최상급. 물론 그대로 영화에 갖다 썼다간 지구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기원전 3600년 기습 공격에 봉인됐다가 반만년이 지나 1983년에 돌아온 이 양반이 오래된 연식답게 좀 고루하다는 거다. 어쨌거나 '나를 숭배하라'는 것이 다짜고짜 설파한 그의 주장인데 영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단 포 호스맨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가 지지부진하다. 남루하던 뮤턴트들을 발굴하고 키워주니 걔들이야 당연히 아포칼립스가 고맙고 대단하겠지만, 딴 애들은 '왜 숭배를 하겠어'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달까. 사막 모래를 이용한 능력들은 섬뜩하긴 하나 '신'급까지는 아니고, 순식간에 해치운 피라미드 건설도 대단하긴 한데 결과물이 좀 촌스럽다. 더욱이 자기장을 움직여 지구를 파괴할뻔했던 건 그가 아닌 매그니토였고, 냉전시대 핵무기를 다 발사시키고는 나몰라라 관심을 끄는 뜨악한 행보도 보인다. 세상 물정 모르는 5000살 어르신이 안쓰러운 순간도 있다. 별로 빠르지도 않은 자동차에 치일 뻔하곤, 되려 욕을 먹고 물러나는 대목이다.

image
사진='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쿠키영상 중 아포칼립스의 모습


더 아쉬운 건 비주얼인데,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쿠키 영상에 나왔던 미소년 버전 아포칼립스는 어디로 갔나 싶다. 우악스러운 생김새나 올드한 패션 모두 '숭배'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아포칼립스는 '나를 숭배하라'고 읊조리기 이전에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 뮤직비디오라도 한번 봐두며 막후 브레인을 영입하고 치밀한 전략을 짰어야 했다. 안되겠다 싶으면 취향도 속셈도 제각각인 지구 중생들을 굳이 설득하려 들지 말고 간단히 세뇌를 시켜버리든가.

주목할만한 점은 그가 지구에 베푼 뜻밖의 은혜다. 여러 네티즌이 주목했듯 아포칼립스가 뜻하지 않게 한 선행이 상당하다. 핵심 멤버의 능력치를 발현시켜 엑스맨을 조직하게 하고, 매그니토에게 헬멧을 찾아주고, 자비에르의 대머리 캐릭터를 완성시킨 시리즈 기여도는 논외로 하자. 그는 일거에 지구 비핵화를 실현시켰으며 온 세상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뜻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강력하고도 구체적인 가르침이었다. '그러니 강자는 약자를 도우라!' 이건 확실히 '인간'급 이상이다.

순서가 조금 바뀌었다면 많은 이들이 알아서 그를 존경하고 칭송했을 터인데. 너무 순진하고 올드했던 고대 뮤턴트의 전략 미스가 아쉽다.
기자 프로필
김현록 | roky@mtstarnews.com 트위터

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