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상승 김현수, 하락 박병호..사이클을 장악해야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6.05.31 08:45 / 조회 : 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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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와 김현수. /사진=미네소타 트윈스 & 볼티모어 오리올스 트위터


메이저리그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속 발전하고 달라지는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한다. 어떤 선수라도 진화하지 못하고 답보상태로 있으면 계속 살아남기가 힘들다. 상대방으로, 아니면 같은 팀에서 경쟁상대로 싸워야 하는 다른 선수들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진화하기 때문이다.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곧 퇴보하는 것’이라는 진리는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도 변함없는 진리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올해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격변하는 처지를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


올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필자는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와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 이대호(시애틀 매리너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새롭게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장을 낸 4명의 코리언 빅리거들 가운데 누가 가장 빠르고 수월하게 빅리그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를 놓고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당시 필자가 내린 결론은 김현수와 오승환은 비교적 수월하게 빅리그에 정착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거포라는 특성상 장타 부담이 큰 박병호와 마이너리그 초청선수로 출발해야 했던 이대호는 적응기가 다소 필요할지 모른다는 쪽이었다.

특히 김현수의 경우는 한국에서 ‘타격기계’로 불릴 만큼 뛰어난 타격감을 지닌 데다 선구안도 뛰어나 많은 볼넷을 골라내기에 높은 출루율을 올리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봤다. 파워에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이 방망이를 짧게 잡고 출루에만 집중한다면 볼티모어가 원하는 테이블세터 겸 주전 좌익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필자는 지난해 말 김현수가 오리올스와 맺은 2년간 700만달러 계약보다 2년 뒤 다음 계약이 훨씬 기대된다는 소위 ‘설레발’ 치는 칼럼까지도 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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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오리올스 홈페이지 메인에 오른 김현수. /사진=MLB.com 캡쳐



그렇게 한국선수 중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김현수가 막상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가장 힘든 출발을 보인 것은 정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김현수는 시범경기 내내 타석에서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한 모습이었다. 마치 삼진을 당하지 않기 위해 공을 배트에 맞추는데 급급해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다. 타격성적이 나쁜 것은 둘째 치고 외야로 타구를 보내지도 못하는 그의 모습에 팀이 실망한 것은 당연지사였고 때마침 룰5 드래프트로 팀에 온 조이 리카드가 신들린 타격감을 이어가자 볼티모어는 김현수를 마이너로 보내려고 언론플레이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분위기론 김현수가 마이너행을 받아들일 경우 단시일 내에 메이저리그 무대에 돌아올 가능성은 ‘제로’였다. 김현수에겐 계약서상 마이너행 거부권을 앞세워 ‘버티기’가 유일한 옵션이었고 이로 인해 미운 털이 박힌 그는 시즌 개막전에서 첫 소개될 때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는 끔찍한 경험까지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시즌이 시작되고도 선발투수보다도 더 띄엄띄엄 경기에 나서는 완벽한 벤치 워머로 전락했다. 볼티모어 선수단의 ‘보이지 않는 선수’가 바로 그였다. 그 사이 시범경기 때 맹위로 주전 좌익수 자리를 꿰찬 리카드는 정규시즌 개막 후에도 한동안 맹렬한 상승세를 이어가며 홈팬들의 기립박수까지 받는 등 고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김현수로선 정말 캄캄한 터널 속을 헤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현수는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자기연민에 빠져 있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가뭄에 콩 나듯 오는 출장기회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어쩌다 한 번 나갈 때마다 한결 향상된 타격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시즌 개막 한 달 반이 지날 때까지도 그의 처지는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지만 다른 곳에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그것은 맹렬한 스타트를 끊었던 리카드에 대해 메이저리그가 적응을 끝낸 것이었다. 리카드에 대해 리그가 적응한 반면 그는 그에 맞춰 달라지지 못했고 리카드의 부진이 깊어지자 볼티모어는 다시 김현수 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 25일(현지시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5경기 연속 결장 후 나선 김현수가 2루타 2개 포함, 3타수 3안타 1볼넷으로 맹활약한 뒤 단숨에 흐름이 달라졌다. 이후 김현수는 30일까지 6경기 연속 선발로 출장하며 어느덧 원래 그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

물론 현재 상황만으로 김현수가 빅리그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없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리카드의 사례가 말해주듯 메이저리그는 김현수에 대해서도 적응할 것이고 김현수는 그에 대해 또 다시 적응하고 발전해야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현수는 이미 한 차례 바닥의 끝까지 떨어졌던 경험을 했기에 이제 그 어떤 도전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의 전망이 밝다고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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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AFPBBNews=뉴스1


반면 박병호의 경우는 김현수가 정반대의 코스를 가고 있어 상당히 걱정된다. 사실 박병호는 엄청난 파워에도 불구, KBO(한국프로야구) 시절부터 워낙 삼진 비율이 높았기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정착할 수 있을지 처음부터 자신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시즌 너무도 쉽게 빅리그 피칭에 적응하며 초대형 홈런을 때려내는 것을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시즌 내내 꾸준히 출전하면서 20홈런만 넘어서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박병호는 출발부터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잡은 뒤 4월에만 홈런 6개, 5월 중순까지 9개의 홈런을 뽑아내며 순항했다.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후보라는 평가와 미네소타가 횡재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현수가 초반에 고전할 줄 예상하지 못했던 것 이상으로 박병호가 이처럼 출발부터 순항할 줄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순항하는 과정에서도 박병호의 가장 큰 취약점은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그것은 그가 시속 95마일 이상을 넘어가는 빠른 볼에 매우 약하다는 것이었고 스윙이 큰 만큼 유인구에 약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메이저리그가 그 약점을 찾아내 적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약점을 간파한 메이저리그 투수들 앞에서 박병호는 지금 철저히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8일 이후 그는 17경기에서 매 경기 삼진과 함께 총 25번이나 삼진을 당했다. 물론 박병호 같은 거포에게 어느 정도 삼진이 많은 것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많은 삼진 수를 상쇄 시킬 만큼 타구를 때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박병호는 4월에서 5월로 넘어 오면서 적응하는 대신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7경기 연속삼진 행진을 이어간 기간 중 기록한 안타 수는 9개뿐으로 그 기간중 타율이 0.150(60타수 9안타)까지 떨어진 것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병호의 계약이 최고의 성공작이라고 칭찬했던 현지언론에선 이제 박병호의 계약이 실패라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계약을 했다고 미네소타 수뇌부를 질타하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상당한 위기상황이다.

하지만 박병호의 경우는 김현수와 적응과정에서 사이클이 반대로 온 것 일뿐이다. 박병호로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자신의 스윙리듬을 유지하는 것이다. 잘 안 맞는다고 당황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파고드는 피칭에 적절한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슬럼프는 계속 더 깊은 슬럼프를 부르기에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이 오랜 지속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쩌면 그는 넥센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와 통화를 통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지금 빠른 볼을 공략하는데 있어 메이저리그 최강의 실력자는 다름 아닌 강정호이기 때문이다.

한편 강정호는 부상에서 돌아오자마자 리그 정상급 타격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가 빠른 볼을 워낙 잘 때리니 메이저리그에선 최근 들어 그와 빠른 볼 승부를 기피하고 오프스피드 위주로 볼 배합을 하기 시작했고 그에 대해 다소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강정호는 지난해 이 모든 시련을 거친 선수이기에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박병호가 슬럼프가 더 깊어지기 전에 새로운 도전에 적응하고 진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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