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페이크에서 탈출한 매혹적인 두 여성 이야기①

[리뷰] '아가씨'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5.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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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다. 페이크(FAKE)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가짜와 가짜를 쌓아올린 세계에서 진짜를 찾아가는 두 여인의 이야기다. 폭력은 줄고, 여성성은 강조됐다.

'아가씨'가 25일 기자시사회를 통해 한국에서 첫 공개됐다. '아가씨'는 '박쥐' 이후 한국영화로 돌아온 박찬욱 감독의 신작. 칸느박의 영화답게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다.


서울 왕십리CGV에서 진행된 기자시사회에는 수많은 취재진과 영화 관계자들이 몰렸다. 그 만큼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에 관심이 컸던 것. 칸영화제에서 '아가씨'를 본 기자들 상당수도 시사회를 다시 찾았다. 자막으로 처리된 '아가씨' 일본어 대사가, 칸에선 영어와 불어 자막으로 소개된 탓에 이야기 흐름을 다시 정리하려 시사회를 찾은 것이다. 그 만큼 '아가씨'는 한국어와 일본어 대사의 흐름이 중요하단 뜻이기도 하다.

알려졌다시피 '아가씨'는 영국 작가 새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가 원작이다. 184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스릴러를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경성으로 옮겨 '아가씨'를 만들었다.

엄청난 재산의 상속녀가 있다. 후견인인 이모부의 손에 키워져 이모부와 결혼을 해야 하는 운명이다. 그래야 그 돈이 이모부의 손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기꾼 백작은 그 돈을 가로채려 한다. 아가씨를 유혹해 결혼을 한 다음, 다시 아가씨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방식으로 그 재산을 빼돌리려 한다. 백작은 아가씨에게 하녀를 보낸다.


하녀도 사기꾼이다. 소매치기다. 하녀는 몸종으로 아가씨 동정을 파악하고, 곁에서 백작이 아가씨를 유혹하도록 돕는다. 그러다가 그만 하녀와 아가씨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럼에도 하녀는 사랑하는 아가씨를 백작에게 넘겨야 했고, 때가 익어가는 순간은 점점 다가온다.

'아가씨'는 가짜다.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라는 가짜로 점철된 작은 세계를 만들어냈다. 작고, 좁지만, 완벽하게 가짜로 만들어진 세계다. 이 세계를 박찬욱 감독은 3막으로 나눠 만들고 쌓고 부순다. 아름답다.

'아가씨'는 3막으로 구성됐다. 1막과 2막은, 같은 사건의 앞면과 뒷면을 다른 시선으로 보여준다. 가짜들이 속이려 들어가는 이야기가 1막이라면, 가짜들이 더 가짜인 세계 속에 현혹돼 가는 것을 보여주는 게 2막이다. 3막은 가짜세계에 뛰어든 가짜들과 가짜세계에 살고있는 가짜들이 무너지고 탈출하는 순간을 그린다. 매혹적이다.

각각의 사건들을 다른 시점으로 그리는 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이래 숱하게 변주돼왔다. 각각의 시점들로 진실을 찾는, 또는 전하는 구성이다. '아가씨'는 이 방식을 따르지만 목적이 다르다. 각각의 시점들은, 진실을 전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감정들을 따르는 방식으로 직조됐다. 감정의 날줄과 씨줄이 뱀처럼 얽힌다. 그렇기에 이 감정들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라면 '아가씨'의 거짓 세계에 연민과 동정, 분노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이 감정들을 납득 할 수 없는 관객들이라면, 소프트한 레즈비언 포르노로 소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 세계를 거짓과 위선으로, 지하부터 저택 꼭대기까지 만들었다. 일본에도 없다는 일본과 영국풍의 저택. 영국풍의 도서관과 일본풍의 다디미에 정원, 그리고 쇼룸 같은 낭독 장소. 어울리지 않는 이 거짓과 가짜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거짓의 조화다. 진짜를 닮고 싶어하는 거짓의 세계. 류성희 미술감독은 이 페이크 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페이크다. 일본 귀족이고 싶은 이모부, 하녀장이지만 알고보면 이모부의 전처, 순진한 여성인 척하지만 시체처럼 감정이 죽어있는 아가씨, 백작을 가장하는 사기꾼, 하녀인 척 하는 소매치기. 조선이지만 일본이고 싶어하는 페이크들이 판쳤던 일제 감정기와도 딱 맞아떨어진다. '아가씨' 무대를 일제로 옮긴 이유다.

'아가씨'는 1막으로 가짜를 소개하고, 2막으로 더 큰 가짜를 쌓다가, 3막에서 무너뜨리고 해방시킨다. '아가씨'는 일제 시대가 배경인 한국영화들에서 강박적으로 보이는 역사성이 거세돼 있지만, 그럼에도 보편성과 특수성을 얻는 건, 이런 구조인 탓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 구조를 지극히 탐미적으로 연결시켰다. 각 장면들은 지극히 아름답다. 미니멀하다. 이 세계 속에선 등장인물도 모두 도구다. 인물과 배경의 경계가 사라져 아름다운 미쟝센으로 기능한다. 그리하여 페이크다. 아름다운 꽃 밑에 독사가 있는 것처럼, '아가씨'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울수록, 가짜의 추악함이 도드라진다. 1막부터 3막으로 갈수록 퇴폐미와 멸미(滅美,멸망하는 아름다움)가 도드라진다. 이 멈춰져있는 듯한 거짓세계는 흐르는 듯한 음악으로 연결된다. 음악이 화면을 밀어내는 것만 같다. 장 필립 라모에서 모차르트로 이어지는 조영욱 음악감독의 선택은 탁월했다.

2막에서 선보이는 아가씨의 낭독회 장면은 압권이다. 반금련전과 사드 등을 모티프로 한 소설들의 낭독으로, 에로티시즘과 거짓과 위선, 사랑, 쾌락과 죽음이 휘몰아친다. 아가씨를 맡은 김민희는, 낭독회 장면만으로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김민희가 곧 매혹이다.

전작 '스토커'부터 여성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에서 반걸음 더 나갔다. 여성끼리의 사랑, 매혹, 연대, 해방이 '아가씨'의 모티프다. 박찬욱 감독은 폭력과 죽음, 복수 등 남성적인 악들의 세계에서,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한다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그만의 방식으로, 그만의 세계에서. 김민희와 김태리의 동성 베드신이 아름다운 것도, "현실에선 고통으로 쾌감을 느끼는 여자는 없다"고 질타한 것도, 박찬욱 월드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노출 수위 조정 불가라는 조건 속에서 발탁된 신예 김태리는, '올드보이' 강혜정의 등장을 보는 것 같다. 기능적으로 소화된 백작 역의 하정우, 이모부 역의 조진웅은, 기능적인 역할을 십분 다했다.

영화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이 담겨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여혐과 여성주의가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거짓된 남성세계가 무너지고 단죄받고, 여성의 사랑과 연대가 해방으로 이어지는 '아가씨'의 등장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6월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추신. 박찬욱의 복수 3부작에 열광했던 사람들이라면 날이 무뎌졌다고 느낄 수도 있다. 대신 시대가 여성성으로 나아간다는 걸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박찬욱의 앞선 나아감에 탄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름답다. 매혹적이다. 바다CG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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