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미운 오리' 김현수 백조로 날아라!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6.05.27 08:23 / 조회 : 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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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드문 주어지는 출장기회에서 자신을 증명해나가고 있는 김현수(28, 볼티모어 오리올스). /AFPBBNews=뉴스1


드디어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로 변신할 때가 왔다. 정규시즌에서 좋은 타격성적에도 불구, 거의 출전기회를 얻지 못한 채 벤치만 달구던 김현수(볼티모어)가 인고의 시간을 통과하고 드디어 꿈에서도 기다리던 대반전의 시간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김현수가 26일(한국시간) 6경기 만에 선발로 출장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원정경기에서 2루타 2개 포함, 4타석 3타수 3안타 1볼넷으로 100% 출루하는 맹활약을 펼친 뒤 벅 쇼월터 감독은 그를 27일 시리즈 최종전에도 선발로 내보낸다고 밝혔다. 김현수의 빅리그 진입 후 2경기 연속 선발 출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그동안 선발로 나선 경기에선 모두 9번타자로 기용됐으나 이날은 타순이 한 칸 올라가 8번 타자로 배치됐다. 그에 대한 벅 쇼월터 감독의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범경기에서 23타수 무안타 스타트를 끊은 것은 물론 타구의 질마저 극도로 좋지 못해 완전히 코칭스태프의 신뢰를 잃고 만 김현수였다. 더구나 마이너로 내려가라는 구단의 제안을 거부하고 ‘강제로’ 팀에 남은 뒤엔 거의 ‘미운 오리새끼’ 신세였다. 벅 쇼월터 감독은 거의 그를 향해 눈길 한 번 보내지 않다가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지못해’ 경기에 내보내는 느낌이었다. 극도로 제한된 출장기회에서도 꾸준히 안타를 때려가며 5, 6할대의 높은 타율을 유지했음에도 상황은 별로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스타팅 라인업에 그의 이름은 없었고 대타나 대주자, 대수비로서의 출장기회조차 없어 경기 내내 벤치에만 앉아 있다가 퇴근하는 것이 그의 일과가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물밑에선 그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마지못해’ 한 번 던져주는 것 같은 출장기회가 사실은 그에게 자신을 입증할 수 있는 천금과 같은 시험장임을 김현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당초 구단의 마이너행 요구를 거부했던 결정이 옳았던 유일한 이유가 바로 이런 ‘어쩌다 한 번 오는’ 출장기회였다. 볼티모어 구단이 싫든 좋듯 김현수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벤치에만 그냥 버려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트리플A에 가서 아무리 좋은 플레이를 한다고 해도(사실은 그것도 정말 힘들다) 빅리그 경기에서 거둔 것이 아닌 성과로는 팀 수뇌부에 확신을 줄 수 없기에 마이너행 거부권을 이용해 버틴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계약상 권리를 활용해 무작정 버틴다고 상황이 저절로 좋아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어쩌다 한 번 오는 기회에서 꾸준하게 자신을 입증해야만 했다. 실전 경기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불쑥 주어지는 출장기회에 나가 좋은 결과를 올리는 것이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칫하면 실전감각을 유지하지 못해 어쩌다 나가도 부진하고, 이로 인해 더욱 출장기회를 얻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묶일 가능성이 높은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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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경기 타율 0.438, 쇼월터감독도 김현수를 내처 외면하기는 힘든 상황이 됐다.


그런데 김현수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 그 어려운 과제를 풀어냈다. 코칭스태프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분명한 성과를 보여줬다. 자칫하다간 그를 포기할 수 있는 ‘명분’만 보태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13경기에서 타율 0.438(32타수 14안타)라는 성적은 더 이상 그를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압박을 가하기에 충분했다.

김현수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또 하나의 조짐은 팀 내 상황의 변화다. 시범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김현수의 부진에 편승, 주전 좌익수로 떠오른 조이 리카드는 정규시즌 초반의 맹렬했던 기세가 식은 지 오래다. 쇼월터 감독의 꾸준한 지지를 받으며 계속 주전으로 나서고 있지만 이미 현지에선 그가 왜 예전 팀에서 비보호 선수로 풀려 ‘룰5 지명선수’가 됐는지를 알게 됐다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시즌 첫 7경기에서 안타를 치는 등 첫 14경기 중 13경기에서 안타를 쳤고 이중 6경기에선 멀티히트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스타트를 끊었던 리카드는 이후 조금씩 식기 시작했고 5월중 타율은 0.233에 그치고 있다. 현재 타격 슬래시라인 0.259/0.309/0.373과 4홈런 11타점을 기록 중인데 계속 하락세인 성적에도 불구, 끊임없이 그가 톱타자로 기용되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시즌 초반 활화산처럼 달아올랐던 볼티모어 타선은 최근 헛스윙만을 연발하며 슬럼프에 빠진 기미를 보이고 있다. 볼티모어는 최근 마지막 4경기에서 삼진 58개를 당하며 합쳐서 단 10점을 뽑는데 그쳤다. 이번 휴스턴과의 시리즈 첫 두 경기에선 13이닝까지 간 1차전에 무려 19번이나 삼진을 당한 데 이어 2차전에서는 9이닝동안 18번의 삼진을 당하는 기록적인 ‘헛스윙 퍼레이드’를 펼쳤다. 이 이틀간 주전으로 나선 선수 가운데 삼진을 당하지 않은 선수는 단 한 명, 김현수뿐이었다. 김현수는 삼진만 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4타석에서 3안타와 볼넷으로 아웃도 한 번 당하지 않았다.

김현수는 올 시즌 13경기에서 삼진은 단 2개에 불과한 반면 볼넷은 5개를 골라냈고 그의 출루율은 0.514에 달한다. 볼티모어 언론과 팬들이 김현수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 당연하다. 이미 볼티모어 지역매체 ‘스포츠 미디어 101’은 김현수가 27일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일 경우 28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상대 우완선발 트레버 바우어를 상대로 3연속 경기에 선발로 출장할지 여부가 흥미로워 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나섰다.

최근 볼티모어 지역매체 MASN은 김현수를 벤치에 계속 버려두는 것은 팀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서 이제 그를 경기에 내보내든지, 아니면 팀에서 내보내든지, 결단을 내릴 시점이 됐다고 주장했다. 김현수는 경기 종반 대주자나 대수비로서 효용성이 거의 없고 대타로도 거의 쓰이지 않고 있어 지금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선발로 출전시키는 방식으로 그를 쓰는 것은 팀에 득보다 실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 리카드와 페드로 알바레스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 그들을 대신해서 김현수를 몇 경기에 선발로 내보내 테스트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만약 쇼월터 감독이 그것도 원치 않는다면 김현수에게 다시 한 번 마이너행을 제안하고 거부될 경우 계약 종료를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처럼 김현수를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논란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현수가 26일 경기에서 보여준 활약은 분위기를 결정적으로 바꾸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가 끝난 후 ESPN을 비롯한 현지 매체에선 김현수의 출장기회가 상당히 많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쇼월터 감독이 김현수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더라도 상황과 여론이 이렇게 변한다면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침내 부활의 나래를 펼칠 기회가 본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아직도 쇼월터 감독이 김현수에게 본격적으로 기회를 줄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씩이나마 기회가 많아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와신상담하며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려온 김현수가 이번 찬스를 놓치지 않고 미운 오리새끼 신세에서 백조로 변신해 힘차게, 화려하게 날아오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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