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아가씨', 원작 '핑거스미스'와 어떻게 달라졌나 ②

[★리포트]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5.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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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스틸컷과 원작소설 '핑거스미스'의 표지 이미지(사진 오른쪽 아래)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알려졌다시피 영국 작가 새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가 원작이다. 이전에도 '올드보이', '박쥐' 등 원작을 변주한 작품들을 즐겨 선보였던 박찬욱 감독은 184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스릴러를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경성으로 옮겨 '아가씨'를 만들었다. 몇 가지 설정만 빌려왔던 '올드보이', '박쥐'와 비교하면 '아가씨'는 감독의 작품 중 원작과 유사성이 가장 크다. 하지만 차이 또한 상당하다.

원작 '핑거스미스'는 하드커버로 출간된 한국어판이 무려 726페이지에 이르는 장편소설이지만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로 술술 읽히는 통속 소설이기도 하다.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돼 소매치기들 틈에서 자라난 소녀 수가 주인공. '젠틀맨'과 짜고 부유한 상속녀 모드를 등쳐먹기로 한 수가 모드의 하녀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1부가 끝나면 모드의 시점에서 그려진 2부가 지금껏 벌어진 일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새롭게 3부가 전개된다. 박찬욱 감독이 주목한 건 주인공인 두 여인, 그리고 같은 사건을 다른 액자에 끼워 다시 바라보는 구조였다.


영화 '아가씨'의 시작은 '핑거스미스'와 거의 같다. 사기꾼 백작(하정우 분)은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보호 아래 자란 부유한 일본인 상속녀 히데코(김민희 분)와 결혼해 재산을 빼돌릴 계략을 꾸미고 도둑들 틈에서 자란 '생쥐같은' 소녀 숙희(김태리 분)를 그 하녀로 들여보낸다. 그런데 숙희는 새장 안에서 자란 카나리아 같은 상속녀에게 그만 반해버린다. 숙희의 눈에서 그려진 1부가 끝나면 똑같이 히데코가 바라본 같은 상황이 2부로 펼쳐진다. '아가씨'는 2부부터 원작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원작과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것 같지만 실상이 전혀 다르다. 3부에 이르면 완전히 딴 이야기가 된다.

박찬욱 감독은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방향이 다르면 도착했을 때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가씨'가 그렇다. 시나리오를 본 원작자 새라 워터스도 "이건 다른 이야기"라는 소감을 보내왔다 한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 속 거듭된 반전의 핵심 중 하나였던 출생의 비밀 코드를 완전히 지웠다. 박찬욱 감독은 "나는 재미가 없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신 아가씨와 숙희 두 여인의 만남과 변화, 성장에 집중했다. 원작 속 모호한 사기꾼 '젠틀맨'이나 슬쩍 건드리고 가는 조연이었던 이모부의 존재감은 크게 늘어났다.

원작에서 발견할 수 없는 박찬욱 감독의 인장은 '아가씨'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잔혹하고 폭력적인 묘사가 결국 여지없이 등장하고, 에로틱하며 파격적이며 도발적이다. 변태적인 상상력까지 십분 동원됐다. 심지어 '올드보이'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여겨지는 산낙지 대신 산 문어가 등장한다.


독특한 스타일 자체를 이야기의 일부로 만드는 박찬욱 감독의 장기 역시 여전하다. 무엇이 진심인지, 진실일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이야기 속에 이질적인 비주얼들이 마구 충돌한다. 서양식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와 머리를 땋고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은 하녀가 한 화면에 잡히는 것만으로도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서양식 본채와 일본식 다다미방, 간소한 한옥이 함께 있는 저택도 마찬가지. 류성희 미술감독이 칸영화제에서 기술상에 해당하는 벌칸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는 뉴스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 모든 아이러니가 정교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거대한 서재에 쌓인 고서적, 턱시도를 갖춰 입은 신사, 기모노를 완벽히 차려입은 여인이 함께하는 낭독회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p.s.

언어권별로 다른 '아가씨'의 제목은 원작 '핑거스미스'를 떠올려보면 흥미롭다. 제목인 핑거스미스(fingersmith)는 소매치기를 뜻하는 속어로 하녀 수, 영화에서는 숙희 김태리를 가리킨다. 반면 한국어 제목인 '아가씨'는 히데코 김민희를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아가씨'의 영문 제목은 '하녀'란 뜻의 'The Handmaiden'이고, 불어로는 숙녀를 가리키는 'MADEMOISELLE'다. 참, 현지에서 지은 대만판 제목은 '하녀의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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