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아가씨' 김민희 진짜 압도적..꼭 다시 해보고 싶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5.26 15:18 / 조회 : 16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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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사진=임성균 기자


하정우와 박찬욱의 만남. 영화팬들이라면 이 조합이 기대가 되지 않을 리 만무하다. 두 사람은 '아가씨'로 처음 만났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하정우는 '아가씨'에서 두드러 지지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는 '아가씨'에서 작정한 듯 김민희와 김태리, 두 여인들에게 초점을 맞춰준다. 아마도 그게 박찬욱 감독이 하정우에게 바랐던 몫이었던 것 같다.

'아가씨'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사기꾼 백작이 막대한 유산의 상속녀를 꼬드겨 재산을 빼돌리며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하정우는 사기꾼 백작을, 김민희가 상속녀를, 신예 김태리가 하정우가 밑작업을 위해 김민희에게 보낸 가짜 하녀 역으로 출연했다.

하정우는 '비스티 보이즈' '멋진 하루' 등에서 익히 선보였던 능글능글하며 미워할 수 있는 뻔뻔한 모습으로 '아가씨'에 등장한다. 아무리 세계적인 거장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다고 해도, 익숙한 모습을 또 다시 보인다는 건 배우로서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하정우는 왜 '아가씨'에 참여했을까?

-'아가씨 출연 제안을 언제 받았나.

▶재작년 8월 '암살' 고사날이었다. '아가씨'로 칸국제영화제에서 벌칸상을 받은 류성희 미술감독이 당시 '암살' 미술감독이었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님이 현장에 왔다. 박찬욱 감독님과 류성희 미술감독님, 이렇게 셋이서 삼겹살을 먹었는데, 그 때 '아가씨'를 한다고 하면서 스케줄을 묻더라. 항상 사람들이 나한테 출연제안을 하면서 '앙드레김'을 언제 하는지 부터 묻는다.(웃음) 박찬욱 감독님이 두 달 뒤인 10월15일에 '아가씨' 시나리오를 보낼테니 읽어보라고 했다.

그 뒤로 '허삼관'을 한참 하고 있었는데 10월15일 아침, 불현듯 "아, 오늘 '아가씨' 시나리오를 보내주시기로 했지?"란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자 바로 박 감독님에게 "이메일로 시나리오 보냈다"는 문자가 왔다. 너무 재밌더라. 원작인 '핑거스미스'를 전혀 읽어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바로 소속사에 '아가씨'를 하고 싶다고 연락했다.

-백작 캐릭터가 왠지 하정우의 전작들에서 본듯한 이미지인데.

▶내 생각이지만 박찬욱 감독님이 '멋진 하루' '비스티 보이즈' 같은 내 전작들을 보신 것 같다. 시나리오에서 그 영화들 속의 내 캐릭터, 대사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박찬욱 감독 영화라지만 배우로서 새로운 캐릭터가 아닌 기존에 했던 모습을 또 보여준다는 게 부담이 되지 않았나.

▶그런 걱정은 안했다. 무엇보다 박찬욱 감독님과 같이 작업을 해본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글쎄, 지금까지 영화 한 편으로 팔자를 고쳐보자는 생각은 없다. 새로운 건 다시 다른 곳에서 또 보여주면 되니깐. 오히려 박찬욱 감독님을 통해 새로운 작업방식을 느껴보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은 배우에게 눈빛 하나, 눈썹 각도 하나까지 정확하게 요구하는데. 그런 작업 방식은, 놀 마당을 펼쳐줄 때 제대로 놀 줄 아는 하정우로선 답답하진 않았나.

▶그렇다기 보다 굉장히 연극적이었던 것 같다. 연극처럼 준비 기간이 길었다. 리딩을 스무 번 넘게 했다. 리딩을 할 때마다 작가가 같이 참석한다. 대사가 입에 잘 안붙거나 뉘앙스가 다르게 튀어나오면 그걸 체크해서 다음 번에 계속 버전업이 된다.

6월 중순부터 촬영에 들어갔는데 2월부터 리딩을 시작했다. 프로야구 선수라고 치면 스프링캠프부터 전력투구를 시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캐릭터와 방향성을 다잡아 갔다. 나도 연극부터 시작했으니 스스로를 환기시키는 작업이었다. 연극을 한편 한 느낌이고, 트레이닝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아가씨' 이후에 한 '터널' 할 때는 기초부터 다시 배워서 한 느낌이 들더라. 오히려 '터널'에선 즉흥연기가 더욱 많았다. '더 테러 라이브'가 즉흥이 6, 준비해간 게 4였다면, '터널'은 즉흥이 7 정도였다.

-박찬욱 감독은 어떤 것을 요구하던가.

▶감정에 대한 요구는 별로 없었다. 눈의 높이, 시선, 턱의 미세한 조정 등을 하나하나 체크하셨다. 머리카락이나 넥타이 위치가 변한 것까지 알아차리더라. 단어도 장음과 단음의 처리까지 체크했다. 대사를 할 때 연출부에서 조사 하나하나 바뀐 적까지 체크해서 알려줬다. 이번에는 "은"인데 "는"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그렇게 장, 단음까지 체크했다면 일본어 발음도 굉장히 엄격하게 체크했을텐데.

▶일단 현장에 일본어 선생님 3명이 늘 대기했다. 살벌했다.(웃음) 나, 김민희, 김태리, 조진웅 등 일본어 대사를 하는 사람들은 일본어 전담 선생님에게 리딩할 때부터 후시녹음할 때까지 계속 배웠다. 처음에는 한글로 일본어 발음을 적었다가 다시 히라가나, 가타가나를 배워서 일본어를 읽을 만큼 배우고 다시 뉘앙스까지 배웠다. 제작사 사무실에 아예 네 배우의 일본어 교육 정도가 도표로 적혀있었다. 어느 정도까지 일본어 공부가 진척이 됐는지를 각자가 수시로 체크했다. 거의 매일 사무실에 나갔다. 결석 하면 보충수업도 받았다.

-백작 캐릭터와 감정은 어떤 걸 요구하던가.

▶깊은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지만 아마도 두 여배우(김민희, 김태리) 사이에서 브릿지 역할을 하길 원했던 것 같다. 상업적으로도 내가 맡은 백작 역할이 관객에게 브릿지 역할을 하길 원했던 것도 같고. 기존 캐릭터를 반복했던 건 관객에게 다가가기 더 쉬운 캐릭터이길 원했던 것도 같다. '아가씨'에서 쉼표 같은 역할이랄까. 축구로 치자면 미드필더, 윤활유 역할이었다. 시나리오를 보면 바로 그런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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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사진=임성균 기자


-'아가씨'는 총 3막으로 구성돼 있다. 1막과 2막은 같은 장면을 다른 시선으로 그려지는데. 같은 장면을 다르게 연기하려 했다거나 그런 차이들이 있었나.

▶앞면과 뒷면을 1막과 2막에서 다르게 보여준 것이니 차이는 없었다. 일단 현장에선 1막으로 촬영을 하고, 2막으로 같은 장면을 또 다시 촬영했다. 박찬욱 감독님은 카메라를 한 대 쓰니, 여러 대를 쓰는 다른 촬영현장과 차이는 있었지만, 감정 연기를 하는 데 다른 점은 없었다.

-2막에서 보여지는 김민희의 낭독회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그 장면에서 하정우의 리액션이 이후 백작 캐릭터를 이해시키는 장면이기도 하고. 같이 찍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김민희 낭독 장면 따로, 백작을 비롯한 다른 남자들의 리액션 장면 다 따로 찍었다. 날짜까지 달랐다. 일단 김민희가 연기한 걸 모니터로 보고 그 장면들을 외웠다. 카메라가 나에게 점점 다가오는데, 어느 정도 다가오면, 이런 반응을 하고, 어디까지 오면 어떻게 반응할지, 일일이 포인트를 짚어서 준비를 했었다. 김민희 낭독 어느 어느 부분마다 다 다른 반응을 드러냈어야 했으니깐.

테이크를 많이 갈 때는 16번 정도 갔다. 넥타이 위치 조정까지 하나하나 다 하셨으니깐.

-박찬욱 감독은 배우를 미쟝센처럼 도구로 활용하는데.

▶내가 연출을 안 해봤다면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 '허삼관' 등을 연출해봤더니 박찬욱 감독이 배우를 도구로 활용한다기보단, 배우를 어떻게 생각하고 영화에 맞게 활용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더라.

-김태리, 김민희, 조진웅 등은 어땠나.

▶김태리는 알려졌다시피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신인이다. 철저하게 박찬욱 감독님이 트레이닝을 시켰다. 그리고 우리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아주 많이 만들어주셨다. 자연스럽게 촬영감독님, 미술감독님들과도 어울리는 자리를 계속 만들어주셨다. '범죄와의 전쟁' 때 김성균도 그랬는데, 그렇게 김태리도 '아가씨'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김민희는 '러브픽션'을 같이 할 뻔도 했었고, '군도'도 같이 할 뻔 했었다. 늘 또래 여배우를 추천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연기적으로 주고받는데 전혀 불편하거나 신뢰가 떨어지는 건 없었다. 칸국제영화제 뤼미에르 극장에서 '아가씨'를 봤을 때 김민희가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너 진짜 압도적이다"라고 말했었다. 디테일이랄까, 보여지는 매력이랄까. 현대물에서 꼭 한 번 다시 해보고 싶다.

조진웅은 처음에는 노인 역할이라 걱정을 했었다. 분장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그런데 뭐 너무 자연스러웠다. 주요 남자배우가 둘 뿐이다보니 예전보다 훨씬 돈독해졌다.

-조진웅과 3막의 장면은, 김민희와 김태리 둘만의 장면 만큼 인상적인데.

▶'빤스' 하나 입고 찍다보니 허전하긴 했다.(웃음) 그냥 웃겼다. 너무 웃으면서 찍었다. 나오는 문어는 CG기도 하고.

-김민희에게 사기를 치려다 어느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나.

▶그랬다. 낭독회 장면부터 흔들려서 일본으로 신혼여행 갔을 때, 옆에서 김민희가 자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그때부터 완전히 흔들렸다고 생각했다. 그 느낌을 주려 했고. 그래도 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순진한 건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인 만큼 거리를 두는 모습도 같이 보여주려 했다.

-이번에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리 강렬하진 않는데.

▶하던대로 했는데 박찬욱 감독님이 강조하지 않은 것 같다.

-박찬욱 감독과 작업은 감독 하정우에겐 어떤 영향을 줬나.

▶'허삼관'을 하고 난 뒤 계속 반추했다. '암살' 최동훈 감독, '아가씨' 박찬욱 감독, '터널' 김성훈 감독과 작업을 떠올리며 계속 반추했다. 그러면서 일단 마음자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박찬욱 감독님 정도 대가도 '박쥐'를 끝나고 원래 '아가씨'를 바로 하려다 한 번 접고 '스토커'를 먼저 했었다. 그 당시 '아가씨'를 접은 건 확신이 안들었기 때문이었다더라. 영화를 만들 때 확신이 스타트의 지점이구나, 란 생각을 하게 됐다.

-8월이면 소속사와 계약 기간이 끝나는데.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터널' 이후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를 찍는다. 그 이후는.

▶아마도 '앙드레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시나리오 방향점이 어느 정도 확실해졌다.

-TV드라마를 할 생각은.

▶좋은 인연이 있다면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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