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나홍진이 돌아왔다..지옥문이 열렸다

[리뷰] 곡성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5.0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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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이 돌아왔다. 지옥문이 열렸다. 악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듣고 싶은 걸 들을 뿐.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험난한 세상에선 거짓말이 진실의 옷을 입고 활보할 뿐.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은 그런 이야기다.

3일 '곡성'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곡성'은 '추격자' '황해' 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영화. 박찬욱, 류승완 등 앞서 영화를 접한 감독들의 칭찬 세례와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 등으로 '곡성'에 대한 기대는 사뭇 컸다.


'곡성'을 투자,배급한 이십세기 폭스의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토마스 제게이어스 대표가 이례적으로 기자시사회를 찾았다. 그 만큼 기대가 컸다는 뜻이다.

'곡성'은 전라남도 곡성의 한 마을에 수상쩍은 일본인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멀쩡한 남자가 갑자기 미쳐 가족을 난도질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남자는 온 몸에 붉은 두드러기가 가득 찼으며 눈이 돌아갔다. 나중에 몸마저 돌아간다.

아내와 장모, 딸과 같이 사는 경찰 종구는 이 끔찍한 사건에 "이게 뭔 일이다냐"라며 몸서리친다. 이 끔찍한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여자가 가족을 죄다 죽이고 불 지른 뒤 목을 매 자살한다.


끔찍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은 이 사건의 그림자에 이곳에 흘러 들어온 일본 남자가 있다고 쑥떡 인다. 이 남자가 발가벗고 고라니를 산채로 찢어먹고 있었다는 둥, 수작 거는 여자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둥, 별의별 소문이 나돈다. 종구도 그 남자가 영 의심쩍다.

그러던 중, 종구는 그 남자가 사람들을 죽였다는 걸 봤다는 묘한 처자를 만난다. 증인을 찾았다고 좋아하던 종구. 하지만 이내 여자는 사라진다. 탱자탱자 놀기만 하다가 증인 찾았다는 헛보고까지 한 셈이 됐으니 종구는 난감하다.

종구는 후배 경찰과 후배 경찰이 아는 가톨릭 사제와 함께 일본인 남자를 찾는다. 그 집은 음산하고 또 기괴하고 끔찍하다. 도망치듯 돌아오는 종구.

집에 왔더니 딸이 아프다. 병원 데리고 가면 괜찮을 줄 알았더니 딸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져만 간다. 단지 아픈 게 아니라 죽어갔던 마을 사람들 상태와 비슷하다. 더군다나 그 일본인 남자 집에서 딸의 실내화까지 발견한 터.

종구는 이 모든 사달이 그놈 짓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일본인 집을 찾아 행패를 놓는다. 사흘 말미를 줄 테니 떠나라고 한다. 그렇지만 딸의 상태는 더욱 끔찍해지고 만다. 그 살갑던 딸이 아비를 죽이겠다며 패악까지 부린다.

장모의 도움으로 용한 박수무당을 부른다. 박수무당은 그 일본인이 사람이 아니라며 그 놈이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크게 굿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사라진 묘한 처자는 이 일들을 지켜보고 있다.

과연 이 모든 사건들의 끝은 어디로 달려갈까? 풀릴 줄 알았던 일들을 꼬여만 가고, 예상은 종종 빗나간다.

'추격자'로 한국 스릴러 장르 붐을 일으켰던 나홍진 감독은 '곡성'을 스릴러에 미스터리, 그리고 오컬트까지 아우른 비빔밥 같은 영화로 내놨다. 이 비빔밥은 재료가 그러니 끔찍하다. 기괴하다. 눈 딱 감고 먹는다면, 중독되기 쉽다.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한국의 무속과 기독교 신앙, 그리고 시골. 이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조합은 그렇기에 음산하고 적절하다. 적합하다. 성경으로 '곡성'의 문을 연 나홍진 감독은 스릴러인가 싶다가 미스터리인가 싶다가 오컬트 인가 싶다가, 다시 성경으로 문을 닫는다. '곡성'을 가장 잘 이해할 관객은 한국 관객이겠지만, 이 낯섬이야말로 한국 관객보다 서양 관객에게 더 치명적일 듯 싶다.

'곡성'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닮았다. 엇박자를 내는 상황, 그 상황으로 피식 터지게 하는 유머, 끔찍한 긴장과 한적한 이완이 교차되는 방식, 점점 극악으로 치닫는 이야기에 반전과 또 다른 반전, 지독한 미쟝센. 차이가 있다면 봉준호 감독은 한 자락 희망을 남겨놓았다면, 나홍진 감독은 지옥으로 관객을 던져놓는다.

홍준표 촬영감독은 '마더'처럼, 한적한 시골에 숨겨있는 위악을, 질리도록 선명하게 담아냈다. 이후경 미술감독은 따뜻한 시골을, 지옥 같은 낯선 시골로 만들었다. 달파란-장영규 음악감독은 음악으로 심장을 쥐락펴락했다가 어느 순간 정막으로 몰고간다. 이 조화는 당분간 여느 한국영화가 쉽게 흉내 내지 못할 것 같다.

봉준호 감독에게 송강호가 있었다면, 나홍진 감독에겐 곽도원이 있다. 그가 '곡성'의 주인공으로 곽도원을 택한 건, 그만의 엇박자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다. 곽도원은 적절한 무능과 적절한 웃음, 적절한 분노를 가장 적합한 순간마다 내놓는다. 무당 역의 황정민은, 그의 매너리즘을 탓했던 관객들이라면, 자신의 손가락질을 후회할 법하다. 짧지만 강렬하다. 눈부시다.

묘한 처자 역의 천우희는, 붓은 임자를 만나야 제 몫을 한다는 걸 입증한다. '손님'의 천우희와 '곡성'의 천우희를 비교하자면 차이가 역력하다. 일본인 역할의 쿠니무라 준은, 무표정으로 만악을 연기하는 고수를 보는 쾌감을 느낄 것이다.

'곡성'은 불친절하다. 백 명이 본다면 백 개의 다른 소감이, 만 명이 본다면 만 개의 다른 소감이 있을 것 같다. 반전에 반전, 거짓과 진실, 악인지 선인지, 켜켜이 쌓은 모호함과 질문에, 저마다 다른 답을 찾을 것 같다. 이 모호함이말로 '곡성'이란 영화의 매력이다.

'곡성'은 끝 모를 불쾌함이, 활짝 열린 지옥문이, 출구 없는 막다른 골목이, 반가운 관객이라면 악몽에 시달릴 지라도 행복할 것 같다.

5월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56분.

추신. 관람 전 콜라나 커피를 안 마시는 게 좋다. 긴장감이 방광을 잔뜩 압박한다.

추신2. 15세 이상 관람가라기엔 지나치게 끔찍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더 어울린다. 고어를 선호하는 나홍진 감독 팬들에겐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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