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칸 가는 한국영화들은 왜 '시빌워'를 피했나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5.02 11:17 / 조회 : 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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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빌워, 곡성, 아가씨, 부산행


제69회 칸국제영화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는 4년만에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경쟁부문에 초청된 데 이어,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비경쟁에,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미드 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다. 과거라면 이미 한국영화계는 칸영화제 체제에 돌입했어야 했다.

5월 개봉 일정을 잡고, 스크린 확보와 홍보에 집중했어야 할 시기다.

하지만 올해는 '곡성'만이 12일 개봉을 확정했을 뿐이다. '아가씨'는 6월 초, '부산행'은 7월 개봉을 준비 중이다. 각자의 셈범이 다른 탓이다.

'곡성'은 '추격자' '황해'로 스릴러에 일가견이 있는 나홍진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한적한 시골 마을에 기괴한 일본인이 찾아오면서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자 이를 해결하려는 경찰과 무당의 이야기를 다룬다. 당초 '곡성'은 지난해 칸영화제를 겨냥했었다. 촬영이 늦어지면서 칸 출품이 무산되자 아예 후반작업을 8개월 여 동안 하면서 해를 넘겼다. '곡성'을 투자배급한 이십세기폭스 코리아는 어차피 해를 넘겼기에 일찌감치 5월 개봉을 확정했다.

'곡성'은 칸영화제 초청 확정도 사실 아슬아슬했다. 발표 이틀 전에 최종 편집본을 칸 측에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칸영화제 쪽에서 '추격자' '황해'로 초청 경력이 있는 나홍진 감독의 신작을 일찍 주목했지만 후반작업 일정이 아슬아슬했던 것. 그 만큼 나홍진 감독이 마지막까지 세심하게 살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십세기폭스 코리아는 '엑스맨: 아포칼립스' '인디펜던스 데이2' 등 배급작들이 5월과 6월로 예정돼 있기에 '곡성' 개봉을 더 늦출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공세가 거셀 것으로 예상했지만, '곡성'은 미스터리에 스릴러 장르인 만큼 관객층이 다를 것이란 기대가 있어 결국 5월12일로 낙점했다.

'아가씨'는 처음부터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이 유력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미 신작을 내놓으면 칸영화제에서 초청이 당연시되는 마스터 급이다. '깐느박'이란 애칭답게 '올드보이' '박쥐' 등 경쟁부문 출품작마다 상을 받기도 했다.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에서 근친상간이란 테마를 선보였다면, '아가씨'로는 레즈비언 이야기를 들고 왔다고 공언했다. 여러모로 문제작이 될 공산이 크다. 신예 김태리를 오디션으로 뽑을 당시 노출, 베드신 수위 조절 불가라고 못 박기도 했었다.

CJ E&M이 칸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아가씨'를 6월로 미룬 건 '시빌워' 뿐 아니라 내부 교통정리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130억원이 든 대작이다. 이 정도 제작비가 든 영화는 통상 7월 블록버스터 시장이나 12월 연말연시를 노린다. 그럼에도 CJ E&M이 '아가씨' 카드를 여름 시장에 내놓지 못한 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데다 레즈비언이란 소재에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란 내부 판단 때문. 5월이 가정의 달이란 것도 고민의 한 요소였다.

그렇다고 칸영화제와 너무 멀리 개봉 일정이 떨어져선 안되는 데다 '시빌워'와 맞붙을 수는 없다는 판단이 한몫했다. 올해는 유난히 CJ E&M 라인업이 많기에 조정도 필요했다. 결국 '탐정 홍길동'이 5월4일 개봉으로 결정됐다. CJ E&M은 '인천상륙작전' '조작된 도시' 등을 여름 시장에 차례로 선보이는 걸 고려하고 있기에 결국 6월 초로 '아가씨' 개봉을 결정했다.

올해 칸에서 '아가씨'가 수상을 한다면, 특히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아든다면, 개봉 일정 조정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CJ E&M은 내부적으로 '아가씨'를 6월2일 개봉할 계획이다. 수상 결과에 따라 5월 말로 앞당길 수도 있다.

'부산행'은 오히려 '괴물'의 전철을 밟을 계획을 일찌감치 세웠다. 투자배급사 NEW는 '부산행'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행'은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떠나는 KTX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돼지의 왕' '사이비' 등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대표주자로 떠오른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다.

사실 '부산행'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서도 러브콜을 받았었다. 연상호 감독은 과거 '돼지의 왕'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었다. 이후 공식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도 '부산행'에 러브콜이 왔다는 후문. NEW로선 자연히 '부산행'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자신감이 붙을 수 밖에 없었다.

NEW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뒤 두 달이 지나 7월에 개봉하면서 흥행몰이를 한 전례를 재현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부산행'이 흥행에 성공하면 프리퀄 격인 애니메이션 '서울역'도 8월 말에 선보일 생각이다.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을 먼저 제작한 뒤 '부산행'을 만들었다. 제작 순서와는 반대로 개봉하는 건, 그만큼 NEW가 '부산행'을 자신한다는 뜻이다.

올 여름 극장가에 다른 메이저 투자배급사에서 뚜렷한 텐트폴영화가 없다는 것도 NEW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각자의 셈법으로 칸에 가는 한국영화 기대작들 개봉 일정에 차이가 나면서, '시빌워'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뚜렷한 경쟁작이 없기에 첫 주 400만명 가량을 동원했다. 70%에 달하는 스크린을 확보하며 무주공산을 활보하고 있다.

다들 최선의 방법을 택했겠지만, 그래도 씁쓸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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