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에 참여한 김구 외종손 임성철을 알아야 하는 이유(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 조회 : 39,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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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철/사진=임성균 기자
임성철/사진=임성균 기자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임성철(40)은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귀향'을 만들기 위해 꼬박 7년 여를 쏟았다. 처음에는 배우로, 나중에는 프로듀서로 온전히 '귀향'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기는 희귀질환 쿠싱병에 걸린 줄도 몰랐다. 뼈가 부러진 줄도 몰랐다. 일도 그만두고 돈을 쏟아부었다. 전세에서 월세로 옮겼다. 장모님 집까지 담보를 잡았다. 부인과 형까지 '귀향'에 스태프로 참여시켰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임성철은 그렇게 했다. '귀향'을 기획한 게 조정래 감독이라면, 만든 건 임성철이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성철은 2010년 배우가 되고 싶어 평소 친분이 있던 배우 김병춘을 찾아갔다. 마침 판소리 고수로 그곳에서 공연 중이던 조정래 감독이 그를 보고 찾아왔다. 조 감독은 처음 만난 임성철에게 '귀향'에 대해 2시간 동안 설명하면서 "일본군 악역이 주인공인데 꼭 필요한 얼굴"이라고 같이 하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고난이 시작됐다.

원래 임성철은 배우가 꿈이 아니었다. 미술 공모전에서 두 차례 당선된 뒤 입시 미술학원을 차렸다. 잘 나갔다. 한 달에 천만원, 이천만원씩 통장에 들어왔다. 어릴 적 교회에서 한창 연극에 빠지긴 했었다. '여명의 눈동자'를 패러디해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었다. 당시 채시라 역할을 맡았으니 그때부터 위안부와 인연이 있던 셈이기는 했다.


그래도 '귀향'에 빠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독립운동가 김구의 외종손이긴 했지만 거창한 뜻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꿈을 꿨다. 1년 동안 같은 꿈을 계속 꿨다. "꿈에서 하나님이 디즈니 같은 건물을 보여주면서 너를 선한 사업가로 불렀다"는 내용이었다.

임성철은 특공대를 전역한 뒤 어머니가 사람 되라며 개척교회에서 10년 여 동안 일주일에 6~7일씩 봉사를 하게 했던 전력이 있었다. 그랬기에 임성철에게 1년 동안 계속된 그 꿈은 다르게 다가왔다. 계시처럼 느껴졌다.

디즈니 같은 건물을 꿈에서 봤으니 영화쪽 일인 것만 같았다. 전혀 문외한이니 어디 배우라도 해보면서 영화쪽 일을 배워봐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인연이 있는 김병춘을 찾았다. 그리고 조정래 감독을 만나 '귀향'에 합류했다.

조정래 감독은 임성철에게 "내년 봄쯤이면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기대에 부풀었다. 연기학원도 다녔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귀향'팀에선 그와 조정래 감독을 제외하곤 대부분 떠났다. 기약이 없기 때문이었다.

주위에선 임성철을 비웃었다. "허언증 환자 아니냐" "무슨 영화를 한다고 그러냐" "어디 내놔봐라"고 했다. 한 달에 천만원, 이천만원씩 들어오던 통장에는 빚이 한달에 천만원, 이천만원씩 쌓여갔다.

그래도 임성철은 "사람들이 떠나는 걸 이해 못했다"고 말했다. "언젠가 반드시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수능 공부를 다시 해서 추계대 동양화과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다. '귀향'에 필요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쌓은 실력으로 '귀향'에 배우 뿐 아니라 아트워크 감독과 스토리보드 작업까지 같이 하게 됐다.

이리저리 떠돌던 '귀향' 팀이 사무실을 얻자 친형에게 공짜로 인테리어를 부탁했다. 그 친형은 그렇게 '귀향'에 미술감독으로 참여하게 됐다.

마침내 2014년 드디어 '귀향'이 촬영에 들어가게 됐다. 천만원만 크라우드 펀딩을 해보자고 했는데 6시간만에 3천만원이 모이더니 2억 5천만원이 만들어졌다. 누군가가 1억원을 더 구해줬다. 그렇게 3억 5천만원으로 2014년 4월15일 '귀향'이 첫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에 앞서 조정래 감독이 임성철을 불렀다. 제작실장이란 걸 맡아달라고 했다. 프로듀서 역할이다. 그게 뭔지도 몰랐다. 조정래 감독은 "촬영과 조명감독은 도와주기로 한 사람이 있는데 미술이나 액션, 후반작업할 사람들을 모와 주는 게 제작실장"이라고 했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제작실장은 돈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써 있었다. "뭐 못할 게 있냐"며 배우 겸 아트워크 감독 겸 스토리보드 작업 겸 제작실장을 같이 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촬영을 한 달 여 앞두고 그만 쓰러졌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그래도 2주 만에 퇴원해 '귀향' 촬영에 돌입했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작업인가.

촬영에 들어간 지 4일 만에 조정래 감독에게서 돈이 다 떨어졌다는 연락이 왔다. 세트에 밥차에 촬영기자재에 다 어찌어찌 싸게 구했지만 돈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다.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이 무보수로 배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숙소비용까지 돈이 모자란 게 당연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조정래 감독이나 임성철이나, 다 모르니깐 촬영에 들어간 것이었다. 당장 4천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성철은 자신에게 나름 빚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 300명에게 전화를 돌렸다. 다들 피했다. 넋이 나간 채 카센터를 찾았다. 그의 차를 '귀향'팀에서 공용차로 사용한 탓에 타이어가 다 닳았기 때문이다. 임성철은 카센터에 주저앉아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평소 친분 있던 카센터 사장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임성철은 다짜고짜 "위안부 영화를 만드는데 4천만원만 줘"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카센터 사장이 동네 카센터 사람들 돈까지 모아서 4천만원을 '귀향'에 후원금으로 내놨다. 그 카센터 사장은 어찌어찌 나중에 1억2500만원까지 후원했다. 그 카센터 직원도 힘을 보탰다. 자기 차를 '귀향' 팀에 내놨다. 결혼 선물인 금목걸이도 내놨다.

임성철/사진=임성균 기자
임성철/사진=임성균 기자


그래도 일주일 뒤면 돈이 또 떨어졌다. 임성철은 원인은 모르겠지만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을 계속 찾았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돈을 구하면서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친구가 2억 5000만원을 빌려주고, 거창에 사는 말 그대로 귀인이 수억원을 보탰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후원자들이 나섰다. 동네 배관공 형이랑, 동네 세탁소 형도 돈을 보탰다. 사실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돈들이었다. 수익의 80%를 준다고 했지만 개봉이 안되면 유튜브에 올린다고 했으니깐. 그래도 돕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나왔다.

임성철은 당당하게 돈을 빌렸다고 했다. 그는 "김구 선생님 생각을 많이 했다. 독립운동 자금을 당당하게 빌렸던 것처럼 '귀향' 만드는 돈도 당당하게 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성철은 '귀향' 촬영에 들어가면서 의인 의식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귀향'에 훈도시를 입고 칼을 뽑아든 채 소녀들을 겁간하는 일본군 장교로 나온다. 촬영이 끝나면 간이침대에 쓰려졌다. 몸이 너무 아팠으니깐. 그러면서 "김구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귀향' 촬영이 6월23일 끝나고 바로 동네 병원에 입원했다. CT에 MRI 등 별의별 검사를 다 했다. 의사가 간경화 초기 증세 빼고는 별 이상이 없으니 괜히 아픈 척하지 말라고 했다. 한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쿠싱병이란 걸 병원에서 확인했다.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진 것도 그제서야 병원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다른 국립암센터로 옮겼다. 쿠싱병 증세대로 얼굴이 달덩이처럼 붓고 팔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었다. 임성철은 차라리 감사하다고 했다. "만일 촬영 전에 이 병인 걸 알았다면 '귀향'을 아예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없었다면 돈도 못 구했고, 무엇보다 조정래 감독이 못한다고 했을 것이었다. 조정래 감독은 울면서 "'귀향' 끝나고 내 간을 이식해 줄게"라고 했다.

8월에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너무 아팠다. 임성철은 "가족에겐 미안하지만 너무 아프니깐 차라리 죽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수술 잘 끝났다"고 형에게 전화했다. 형은 '귀향' 미국 후원자 시사회 때문에 당시 미국에 있었다. 형제는 말 없이 울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물었다. 임성철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며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보여준 그 꿈을 믿었다. 돈 마련하느라 전세에서 월세로 옮기고, 장모님 집까지 굳이 담보로 잡혀야 했냐고 물었다. 임성철은 "조금 가난해졌을 뿐"이라고 했다.

'귀향'은 2월24일 개봉 첫날 15만명을 모았다. 할리우드 영화 '데드풀'까지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예매를 하고, 응원을 한다. 기적 같은 일이다. 아니 기적의 연속이다.

그래도 임성철은 담담했다. 오히려 "이제는 좀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약기운이 떨어지면 우울증이 몰려온다. 쿠싱병은 극도의 우울증을 동반한다. 밤이 되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매일 든다. 기도하지만 마음잡기가 쉽지 않다. 웃고 있으면 사람들은 웃는 줄 안다. 괜찮다고 하면 사람들은 정말 괜찮은 줄 안다.

임성철은 그래도 지금도 여전히 돈을 구하러 다닌다. '귀향' 미국과 일본 시사회를 여는 비용을, 전부 제작사가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원자들에게 '귀향' 표를 주기로 했는데, 그 극장표도 제작사에서 사서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귀향' 개봉 이튿날 인터뷰를 하면서도 4천만원을 구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임성철은 말했다. "미술 입시학원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서포터해주는 데서 보람을 느꼈다. 그게 내 기쁨인 것 같다." 그는 다시 말했다. "이제 그 꿈처럼 선한 사업가가 될 때까지 계속 영화일을 할 생각이다." 임성철과 조정래 감독은 '귀향' 차기작으로 일제 강점기 때 해외로 떠돌게 된 한국인들을 그린 영화 '아리랑'을 준비 중이다.

그의 꿈이 언젠가 이뤄질지, 어쩌면 그 꿈은 이미 응답받은 것도 같다. 그리고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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