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박제된 윤동주를 숨쉬게 만든 흑백 사기

[리뷰] 동주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2.1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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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8할은 부끄럼이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다. 부끄럼이 넘치는 세상. 싸우지 않고 시를 쓰는 윤동주는 부끄러웠다. 시를 쓰려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라며 부끄러워했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그런 윤동주의 부끄럼을 청동거울 삼아 부끄럼 넘치는 이 시대를 조망한다.


'동주'는 윤동주, 그리고 그와 같은 해 같은 집에서 나고 자란 사촌형 송몽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시인의 삶을 살려 했던 윤동주와 일제에 저항하며 살려던 송몽규를 동전의 양면처럼 비췄다.

소년 윤동주는 시가 참 좋다. 정지용의 시집을 볼라치면 세상을 얻은양 기뻐한다. 시인이 되고자 밤새 원고지를 붙든다. 그렇지만 딱히 시에 관심조차 없는 것 같은 몽규를 세상은 더 높이 평가한다. 몽규가 쓴 시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자 마을에선 잔치가 열린다. 동주는 몽규를 축하하지만 속이 아린 건 어쩔 수 없다.

그럴수록 동주는 시를 붙든다. 몽규는 조국을 되찾고자 중국으로 훌쩍 떠난다. 그런 몽규에게 부끄러워 동주는 더욱 시를 붙든다. 돌아온 몽규는 동주에게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에 가서 넓은 세상을 맛보자고 권한다. 그렇게 한양으로 떠난 두 사람. 그곳에서 동주는 시를 쓰지만, 몽규는 세상을 바꾸려는 글을 쓴다. 동주는 시를 무시하는 것 같은 몽규가 언짢고, 몽규는 일제 치하에 시에만 천착하는 동주가 언짢다.


어느덧 일제는 학교에서 조선말을 쓰는 것도 금지하고, 성도 일본어로 바꾸길 강요한다. 몽규는 어차피 똑같다면 일본으로 유학을 가자고 동주에게 권한다. 성을 바꿔가며 떠난 유학길. 동주는 부끄러웠다. 더 부끄러운 건 그렇게 떠나지만 원하던 교토제국대학에는 몽규만 합격했다는 것이었다. 낙방한 동주는 결국 릿쿄대학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 더욱 시에 빠진다.

몽규는 일본유학길에 다른 뜻이 있었다. 그는 징집된 유학생들을 궐기시켜 일제에 항거할 계획을 세웠다. 다른 길을 걷던 두 사람. 동주는 그토록 바라던 첫 시집 발간을 눈앞에 뒀다. 몽규는 거사를 눈앞에 뒀다. 하지만 둘의 바람은, 몽규의 계획이 일제에 발각되면서 물거품이 된다. 그리고 둘은 감옥에서 무슨 약물이 담겨있는지 모를 주사를 맞으며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의 시 한두 구절을 읊지는 못해도 들어는 봤다. 그렇게 윤동주는 교과서에 박제됐다. 그의 시는 알아도, 그의 삶은 모른다. 그저 만신전에 모셔 놓고 숭배한다.

이준익 감독은 박제된 윤동주를 살아 숨쉬게 만들었다. 흑백이란 사기를 치면서.

'동주'는 흑백으로 만들어졌다. 6억원 남짓한 돈으로 찍은 만큼 어쩌면 흑백은 피할 수 없었다. '동주'에서 흑백은 사기다. 윤동주가 나고 자란 용정과 서울, 그리고 일본 등 칼라로 찍었다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을 터. 흑백으로 그 차이를 덮었다. 비싸게 찍었다면 도드라졌을 흑백의 명암은, 싼값에 찍은 터라 그저 빛바랜 흑백사진 같다. 넓은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흑백사진.

하지만 이 사기는 '동주'와 맞았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윤동주. 박제된 죽은 시인이, 빛 바랜 사진 속에서 살아 움직일 때, 비로소 그의 선명한 삶이 드러났다. 빠르지도, 강렬하지도, 경쾌하지도 않은, 느린 호흡 속에서야 그의 부끄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준익 감독은 '동주'를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야기로만 집중했다. 시를 사랑한 청년과 세상을 사랑한 청년. 부끄럼 넘치던 시절, 어떤 삶이 더 옳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둘을 거울처럼 바라만 보게 했다. 그리고 윤동주의 시를 내레이션으로 곱게 얹혔다. 그리하여 만신전에 높여있던 윤동주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모그의 음악은 탁월하다. 늬앙스를 높이지 않고, 담담히 따라간다. 윤동주의 시에 음악을 입혔다면 바로 이랬을 것만 같다. 윤동주를 연기한 강하늘, 송몽규를 맡은 박정민. 눈이 참 맑다. 드러낼 수 있었던 게 눈뿐이었을 '동주'에서 둘은 부끄럼과 높은 꿈을, 맑은 눈으로 잘 그려냈다.

'동주'는 시대착오적이다. 쳐죽이고 싶은 적을 만들어내고, 기어코 무찔러야 박수치는 지금과는 안 맞다. 적과 싸우기보단 자신과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동주'가 반가운 건, 부끄럼이 넘치는 지금, 부끄럼을 안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2월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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