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의 또 다른 주인공 박정민 "오래오래 기억되기를"(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2.05 09:57 / 조회 : 2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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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의 배우 박정민 / 사진=김창현 기자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제작 루스이소니도스)는 제목처럼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보고 나면 시인만큼 묵직하게 남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눈에 들어온다. 동갑내기 독립운동가 송몽규다. 윤동주보다 석 달 먼저 태어나 함께 자라고 수학했으며 후쿠오카 감옥에서 한 달 늦게 숨을 거둔 송몽규는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열사다. 영화는 송몽규를 윤동주의 가족이자 친구요, 심지어 뛰어난 글솜씨와 성적으로 열패감을 안긴 라이벌로 묘사하면서 그가 윤동주의 삶과 시에 미친 영향을 되짚는다.

영화에 묘사된 것만으로도 '이런 분을 모르고 살았나' 싶다. 만주 명동촌에서 태어난 송몽규는 19살 나이에 콩트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였고, 그해 학업을 중단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열혈 청년이었다. 윤동주가 낙방한 교토 제대에 단번에 입학했으나 유학생들을 조직해 일을 벌이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결국 29살 나이에 일본에서 옥사했다. 뼛조각 하나 일본 땅에 남기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시신은 고향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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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의 배우 박정민 / 사진=김창현 기자


배우 박정민(29)이 동그란 검정 뿔테 안경을 쓰고 스크린에 되살아난 청년 송몽규가 됐다. '파수꾼'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영화에서 활약했고, 드라마와 영화에서 통통 튀는 캐릭터로 시선을 붙들어온 젊은 연기파 배우다. 하지만 송몽규는 박정민에게도 숨이 턱 막혀오는 인물이었다. 처음 받아든 크고 묵직한 역할에 감격해 시나리오를 건넨 매니저에게 "이게 나한테 온 게 맞냐"고 몇 번을 물었을 정도였지만 기쁨은 곧 말 못할 부담으로 바뀌어 갔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땐 '오, 멋있는데, 멋있다' 이랬어요. 그런데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멋진 분이신 거예요. 알면 알수록 더 멀리 가는 것 같았어요. '아니 어떻게 여기서 이런 결정을 했지, 이런 행동을 했지' 하는 와중에 그 분은 점점 더 멋있어져서 제게서 도망가버리는 느낌이었어요. 압박감은 점점 심해지지, 촬영 날은 다가오지 미쳐버리겠는 거예요. 잠도 못 자고 가만히 있지도 못하면서 계속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하고 다닐 정도였어요."

박정민에겐 그저 대본을 계속 읽는 것 말고는 다른 답이 없었다. 답이 나와 있지는 않아도 대본을 한 번 더 읽고 두 번 세 번 더 읽으면 그때마다 다른 깨우침이 있곤 했다. 그것으로도 성에 안 차 아예 당장 중국행 비행기 표를 끊어 송몽규가 살던 옛 북간도 땅을 밟았다. 비석 하나로 남은 초라한 무덤도 눈에 담았다. 그때 찍은 사진이 영화 막바지 등장하는 연표의 자료사진으로 쓰였다. 박정민은 "그분이 제게 답을 주실 것을 기대했는데 그게 잘못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뭔가 그분에게 드릴 차례였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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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의 배우 박정민 / 사진=김창현 기자


"평상시 캐릭터를 갖고 놀며 구성하는 작업을 재미있어 해요. 인형 옷을 입히는 것처럼 '요건 요렇게 만들어 볼까' 하면서. 그런데 이건 그런 작업이 아예 없었어요. 그 시대 그 마음, 그 한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중국에 다녀온 것도 그런 마음이었고요. 지난 영화들과 달리 그분은 그 순간 이미 그렇게 선택하고 행동한 분이잖아요.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라 왜 했는지, 그 마음을 느껴보려고 애썼어요. 아주 발광을 했죠. 안 하던 짓거리를 한 거예요. 더 힘들었던 것 같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필요가 많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진심이 중요한 거구나."

소규모 스태프가 모인 단출한 현장은 다들 "결의에 찬 느낌"이었다. 박정민은 "분장실 막내까지 긴장하고 숨죽인 공기가 느껴졌다"며 "그 스태프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주연이 아니었기에 가끔 가는 현장에서 스태프에게 살갑게 다가가기가 '뻘쭘'했다는 박정민은 이번엔 매일 감독, 스태프와 함께하며 그들과 더욱 가까이서 함께했다. 촬영이 끝난 뒤 이준익 감독과 강하늘, 스태프와 함께 그 날을 정리하며 술을 기울이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물론 술자리가 파하면 또다시 자는 시간을 줄여 대본을 파고들고 노트를 정리하는 자기와의 싸움이 있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막중한 역할"이었다며 박정민은 다시 송몽규를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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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의 배우 박정민 / 사진=김창현 기자


"늘 '우리 영화 어떻게 봐주세요' 이런 말은 안 해요. 그 때문에 관객이 다른 걸 놓치실 수도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송몽규 선생을 오래오래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결과는 내놓지 못했지만 뜻을 모아 함께했던 다른 사람들도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결과물이 아름다운 사람은 몇이 안 되지만,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선 안 되는 또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동주'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또 70년 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지가 결정된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그런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어요. 내가 나서서 뭘 해야겠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어떤 행동을 할 때 올바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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