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마이너 계약 이대호, 아웃조항 확보했을까?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6.02.0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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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과 계약을 맺고 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대호. /사진=뉴스1



이대호가 결국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메이저리그 계약이 아닌 마이너리그 계약이기에 계약 후에도 이대호는 시애틀의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았다.


계약조건은 인센티브 포함, 최고 400만달러라는 보도가 나왔으나 그것은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을 때 이야기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실제 연봉은 훨씬 적을 것이 확실하다. 친정팀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1년에 5억엔(425만달러) 또는 3년간 18억엔(1,500만달러)를 오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대호는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감수한 계약을 한 것이다.

이대호는 올 6월에 만 34세가 된다. 선수로서 전성기가 지난 적지 않은 나이는 새로운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데 있어 절대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로 인해 그의 위상과 걸맞지 않은 마이너리그 계약을 받아들여야 하는 위치가 됐다. 웬만한 선수라면 이런 조건은 말도 안 된다며 바로 소프트뱅크 복귀 쪽을 선택했겠지만 이대호는 달랐다. ‘안정’과 ‘돈’보다는 ‘모험’과 ‘꿈’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대호가 체결한 마이너리그 계약이란 어떤 것이고 메이저리그 계약과 어떻게 틀릴까. 흔히 메이저리그 계약은 최저 연봉(2016년 50만7,500달러)을 보장받고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마이너리그 계약은 훨씬 적은 액수로 마이너리그에서 뛴다는 식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극히 일부의 차이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액수와 관계없이 선수 신분 측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선수로서의 서러움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한 실감하기 쉽지 않다. 우선 계약을 얻는 것부터 많은 경우 스스로 팀을 찾아가 자신을 알리는 등 온갖 서러움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마이너리그 계약은 이대호같은 베테랑 프리에이전트(FA) 선수들이 구단과 맺는 경우를 이야기하며 고교 졸업 후 갓 입단한 선수가 체결하는 마이너리그 계약과는 다른 것이다.

같은 FA로 계약했지만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와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메이저리그 계약이어서 계약 직후 팀의 40인 로스터에 이름이 올랐다. 심지어는 룰5 드래프트를 통해 LA 에인절스에 입단한 최지만도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이대호는 팀의 ‘비-로스터 초청선수’(Non-roster invitees)에 포함됐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한 마이너리거 이학주와 같은 급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아직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정식 멤버가 아니라는 말이다.

매년 스프링 트레이닝 시즌이 다가오는 이맘때쯤이면 베테랑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구단과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이 동반된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오프시즌 내내 계약할 새로운 팀을 찾았으나 찾지 못한 베테랑 선수들이 마지막으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수단이 베테랑 마이너리그 계약이다. 이런 계약은 액수와 관계없이 신분 안정감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언제라도 방출될 수 있는 것이다.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중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만 메이저리그에 남을 수 있다. 이런 계약을 감수하지 않으면 메이저리그 도전의 기회조차 잡을 수 없기에 선수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한편 구단 입장에선 스프링 캠프에 베테랑 선수들을 마이너 계약으로 불러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밑져야 (거의) 본전인 투자이기 때문이다. 잘하면 빅리그 경험을 지닌 쓸만한 백업선수를 건질 수 있고 만약 잘 안되더라도 시즌 시작 전에 방출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는 데는 선수 입장에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똑같은 마이너리그 계약이라고 별 생각 없이 계약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베테랑으로 마이너 계약을 체결하는 이유는 메이저 진출에 가장 유리한 통로를 찾기 위한 것이다. 과연 어느 팀에 가야 메이저 진출 가능성이 높을 지 신중히 고려해야한다. 그 팀의 로스터 상황은 물론 새로 계약하는 선수들과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올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들, 그리고 똑같이 마이너계약으로 스프링캠프에 초청되는 선수들이 누가 있는지를 모두 살펴봐야 한다.

팀이 메이저리그 계약이 아닌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시했다는 것은 그만큼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서럽더라도 자신을 입증하기 좋은 최상의 조건을 찾아야한다. 최소한 당장 시즌 개막과 함께 메이저리그에 진입하지 못하더라도 시즌 중간이라도 빅리그에 불려올라갈 여지가 있는 팀을 골라야 한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과연 그 팀이 포스트시즌에 도전할 경쟁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그 팀이 시즌 절반도 지나기 전에 하위권으로 떨어져 플레이오프 가능성이 사라진다면 굳이 나이 많은 베테랑선수를 투입하기 보다는 장래를 생각해 팀의 어린 유망주들에게 경험을 쌓게 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메이저리그 근처에도 못가고 마이너에서 시즌 전체를 썩을 수도 있다.

구단 프론트오피스의 진실성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고려사항이다. 계약 당시에는 “당장은 40인 로스터에 자리가 없지만 금방 네 자리가 생길 것”이라며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마이너 계약을 종용하지만 나중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입을 씻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비-로스터 초청선수들은 스프링 캠프동안 공평한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지만 실제 그 약속이 다 지켜지길 기대하긴 힘들다.

그렇기에 마이너리그 계약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계약 금액이 아니라 계약서의 신분조항이다. 가능하다면 메이저리그 팀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잔여계약을 종료시키고 FA로 나갈 수 있는 아웃조항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아웃조항이 없을 경우 시즌 내내 구단에 메여버리는 ‘노예계약’이 될 가능성이 있다. 구단과 협상 시 아웃조항에 관해선 구두합의가 아니라 계약서에 반드시 명시해 놓아야 한다.

이 아웃조항의 가치는 단순히 그 구단에 1년 내내 묶여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조항으로 인해 메이저리그로 불려갈 가능성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 마이너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베테랑 선수가 아웃조항을 갖고 있다면 팀은 그 선수를 잃지 않기 위해 그를 메이저로 부르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좋은 경기력만 보여준다면 아웃조항 유무에 따라 메이저리그 호출이 오느냐, 오지 않느냐가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대호가 이번 계약에서 아웃조항을 확보했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고려조건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시애틀의 선수 구성 상황을 보면 이대호는 주전 1루수로 낙점된 애덤 린드의 백업 또는 플래툰 파트너로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시애틀은 우승후보로는 거론되지 않아도 쉽게 하위권을 떨어질 팀도 아니며 새로 팀의 단장이 된 제리 디포토 단장 역시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무조건 선수를 붙잡아 놓고 보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다.

현재 시애틀이 비-로스터 초청선수로 스프링캠프에 부른 선수는 단 7명에 불과하고 이중 내야수는 이대호 포함, 2명뿐이다. 상대적으로 이학주가 소속된 샌프란시스코의 경우는 현재까지 무려 21명이 초청됐고 내야수도 이학주 포함, 7명이나 된다. 이런 숫자는 앞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에 섣부른 판단은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팀들이 마이너리그 유망주를 포함, 이미 20여명 이상의 초청선수를 부른 것을 감안하면 시애틀의 경우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대호로선 나쁜 조짐이 아니다.

돈과 명예가 보장된 안정된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바닥부터 출발하는 이대호의 건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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