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장근석 "난 외계인이었다"(★FULL인터뷰)

[스타뉴스 2016 ★신년인터뷰]

문완식 기자 / 입력 : 2016.01.01 08:00 / 조회 : 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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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근석 /사진=임성균 기자


"'양화대교'는 제 노래에요. 아버지는 택시를 모셨고,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셨죠. 외아들 하나를 위해 제천에서 단돈 20만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오신 분들이에요. 전 그래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게 가족을 지키는 길이었고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었어요."

장근석은 화려하다고 생각했다. '슈퍼카', '재산', 인터넷상 그의 '연관 검색어'다.
'아시아 프린스'라는 화려한 수식어도 있다. 인터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인터뷰 1시간 만에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솔직했다. 진중했고, 때론 격렬했다. 목표가 확실했다.

2016년, 그를 꼭 인터뷰할 이유가 있었다. 장근석은 지난해 힘든 시기를 겪었다.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 촬영까지 다 마쳤지만 '통편집' 아픔을 겪었다. '세금'이 문제였다. 회사 실수였지만 세상은 온통 그를 비난했다.

장근석은 지난 1년을 학생으로 지냈다. 그리고 석사과정(한양대 연극영화과)을 끝냈다. 그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제일 편했다. 몸도 마음도"라고 했다.

이 시기 엠넷에서 그에게 '프로듀스101' MC 제의를 했다. 장근석은 학업을 이유로 고사했다. 엠넷은 그가 방학이 될 때까지 기다려줬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MC를 넘어 슈퍼바이저 역할을 할 예정이다. 일종의 '국민 프로듀서' 역할이다. 총 101명의 지원자 중 오직 11명만이 데뷔할 기회가 주어진다.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에요. 아이들에게 강의를 해주고, 트레이닝도 해주죠.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요. 아이들이 저를 장 대표님이라고 불러요. 스태프들도 그렇고요. 11명의 친구들은 물론 제가 선발하지는 않아요. 시청자분들의 투표로 뽑죠. 제 인생 큰 목표 중 하나가 아시아 프린스 주니어 혹은 아시아 프린세스 주니어를 만드는 거예요. 저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어떤식으로 시스템이 이뤄지는지 실제적으로 배우는 게 많죠. 근데 101명을 통제하는 건 너무 어려워요(웃음)."

장근석은 "101명의 친구들이 있지만, 빛나는 친구들은 딱 보인다"며 "스스로 빛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안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안타깝다. 더 안타까운 건 평가에서 낮게 나왔다고 울고 불고 하는 친구들이다. 그런 걸 보면 어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난다. 아역 때 오디션을 많이 보러 다녔는데 나도 그때 그랬으니까. 사실 그게 내 인생을 결정하는 잣대는 아닌데, 세상 끝난 것 마냥 안타까워하던 내 아역 시절이 많이 생각한다. 내 새끼들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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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근석 /사진=임성균 기자


장근석은 1992년 5살 때 카탈로그 모델로 데뷔했다. TV 데뷔는 1997년이다. 그는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는다.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제가 방송에 안 나오니까 숨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제 죄가 아니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너무 화살이 날라오니까 당황스러웠던 게 사실이에요. 전 단지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요. 머리카락만 나오더라며 놀림도 많이 받았어요. 전 아직도 제가 찍었던 '삼시세끼'를 보지 않았어요. 얼마 전에 나영석 PD님을 만났는데 그 프로가 아니더라도 다음에 꼭 함께 하자고 하더라고요. 진심을 알아주는 어른들이 많아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장근석은 "대학원은 내게 많은 걸 가르쳐줬다"며 "같이 공부한 분들 중에는 현업에 계신 분들도 많은 데 이미 많은 걸 이뤄 놓은 분들이 여전히 기본을 열심히 다지는 모습에서 많은 걸 느꼈다"고 했다.

장근석은 학교에서 밥도 많이 샀다고 했다. 단 매번은 아니었다. "호의가 권리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꼭 필요할 때만 샀다. "전 밥 사는 걸 동기들에 대한 예의라고 여겨요. 단 꼭 필요할 때 제대로 사죠."

재밌는 얘기도 했다. "학교에서 제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해요. 회장님들이나 연예인들이 학교에 안 나올 때마다 제 얘기를 한대요. 장근석도 나오는데 왜 안나오냐고요. 하하하."

그는 밥만 사는 학생은 아니다. 정기적으로 학교에 기부도 한다. 그가 낸 돈으로 학업을 마친 학생들이 적잖다. 최근에는 가슴 뭉클한 경험도 했다.

"단편영화를 찍고 있는데 스태프로 일하던 친구들 몇 명이 와서 다짜고짜 '형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이유를 물었더니 "형이 제 학비 내주셨잖아요' 이러는 거예요. 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저는 그 친구들 얼굴도 몰랐거든요. 그 친구들이 제 도움을 받아 학교를 마치고 '서부전선' 같은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도 하고 그랬대요. 박애주의가 뭔지 실감 나는 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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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근석 /사진=임성균 기자


장근석은 "제가 돈이 많다고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며 "현재 통장에 2억5000만원있다. 차도 리스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얘기를 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돈을 목표로 살았어요. 서울에 올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20만원 들고 올라왔어요. 어머니가 제천에서 저를 키우다 너를 이렇게 키울 수는 없다며 올라오신 거죠. '양화대교'가 제 노래에요. 아버지는 택시를 운전하셨고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셨어요. 집도 없고, 교복 살 돈도 없었죠. 그때부터 10년 동안 우리 가족의 목표는 오직 돈이었어요. 저도 그랬고요. 그게 우리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자 효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웃긴 게 10만원만 벌면 되겠지 하고 나중에 10만원을 벌면 100만원에 대한 욕심이 생겨요. 100만원 벌면 1000만원에 대한 욕심이 생기고요. 욕심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렇게 계속 가다 보니 어느 순간 의미가 없어지더라고요. 돈 버는 게요."

그는 다시 학교 얘기로 돌아갔다.

"현장에서 60만원 정도 받으며 열심히 꿈을 키우고 있는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들어요. 계급장 떼고 붙으면 가끔 제가 질 때도 있어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거든요. 뒤지지 않으려고 저는 더 열심히 해야 하죠. 제가 언제까지 한류스타로 살 수 있겠어요. 한류 이제 다 죽었는데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게 제 목표에요. 많이 준다고 무조건 어디 가서 활동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제가 후배를 키우는 것. 그게 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후배를 키우는 것. 그리고 세상을 돕는 것. 그게 서른 살 장근석 마음속에 있는 큰 울림이다.

"보통 연예인들은 소리 소문 없이 기부를 해요. '기부 천사' 같은 방법으로요. 그런데 저는 티를 내야 한다고 봐요. 도움 줄 때 확 도와야죠. 그리고 싹 사라져야죠합니다. 그 도움이란 게 꼭 돈은 아니라고 봐요. 제일 필요한 게 뭔지 알아야 합니다. 일본에서 지진이 났을 때 제일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더니 춥대요. 그래서 담요 1만5000장을 사서 바로 보냈어요. 돈보다 적시 적기에 정말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는 게 진정한 도움인 거죠. 사람들은 인류 가치를 높이는 게 돈이라고 보는데, 아닙니다. 이게 서른이 되면서 깨달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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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근석 /사진=임성균 기자


장근석의 '최근작'은 지난 2014년 방송한 KBS 2TV '예쁜 남자'다. 2년 넘게 작품 활동이 없다. 그도 이를 안다. 작품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한류스타라는 게 방패와 칼을 같이 갖고 있어요. 제가 관계되는 작품이면 꼭 돈이 엮여요. 이게 지금의 한류 위기를 만들었다고 봐요. '연기쟁이'가 연기를 해야 하는데 계산기를 두드리면 안되죠. 지난 5년을 돌아보면 '미남이시네요' 출연할 때까지는 철저하게 연기 대본을 붙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정신이 없더라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문화를 만드는 사람인 내가 흔들리고 있었어요. 원인은 결국 저였죠."

"지금은 극복했느냐"고 물었더니 "일본은 약이자 독이였다"며 "제 삶은 늘 외로웠다. 그 누구와도 그런 고민들을 얘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중국 진출 생각은 아직 없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중국은 제게 너무 과분한 것 같아요. 제가 중국인이 아닌데 중국 작품에 출연하는 것보다는 한국 작품으로 한국에서 인정을 받고 진출하는 게 자연스럽죠. 급할 게 없다고 봐요.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게 순리죠."

장근석은 "올해부터는 국내에서 공격적으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정말 큰 사랑을 받았어요. 라이브 공연도 많이 했죠. 수익은 사실 없어요. 좀 더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기 위해 무대에 돈을 많이 들였거든요. 제가 받은 사랑만큼 최고의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한국에서는 작품을 잘하고 싶어요. 저 사실 위험 하거든요. 하하하. 잘 되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한류스타로, '아시아 프린스'로 큰 사랑을 받은 장근석. 하지만 그는 '위기'를 얘기했고, '변화'를 약속했다.

"저는 누구보다 제 이미지, 제 자신을 잘 알아요. 저의 단점이 무엇이고 어떤 이미지가 문제인지를요. 늘 공부하고 있어요. 저는 일부러 연예인들과 친하게 안 지내요. 제 옆에 있으면 그 친구들이 다치거든요(웃음). 괜히 저 노는 거 보고 옆에서 저처럼 놀았다가 큰일 나요. 장근석이라는 날라리 때문에 그 친구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잖아요. 저요. 보이는 것처럼 가벼워요. 그런데 가벼운데 가볍지 않죠. 저는 위기대처 매뉴얼이 있어요.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는 음주, 도박, 마약, 스캔들은 없었잖아요. 전 치밀하게 제게 해가 되는 걸 원칙적으로 봉쇄하죠. 안 될 때는 매니저의 도움을 받고요.

지금까지의 장근석은, 지난 5년간의 장근석은 외계인이었던 것 같아요. 일본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니고. 그냥 머리 기르고 다니고, 여자인지 아닌지, '근짱'인지 장근석인지 저도 헷갈릴 때가 많았어요. 하는 드라마마다 다 망하고. 네이버에 제 이름을 치면 '재산' 밖에 안 나와요. 확실한 목표는, 놀 만큼 놀고 해볼 만큼 해봤으니 이제 배우로서 끝장을 볼 생각이에요. 저의 20대는 위스키로 치면 원액이었어요. 이제 오크통에 들어가 숙성이 돼야 할 시기에요. 언제 테이스팅 할지는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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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근석 /사진=임성균 기자


장근석은 연애는 싫지만 결혼은 좋다고 했다.

"연애요? 하고 싶은데 바빠요. 차라리 친구들 만나는 게 낫죠. 제가 출연했던 '메리는 외박중'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제가 문근영에게 했던 대사인데요, '너 나 좋아하면 안돼'. 전 그 대사가 너무 좋아요. 모든 만나는 여자들에게 얘기하죠. 그러면 이상하게 쳐다봐요. 결혼은 빨리 하고 싶어요. 가족을 빨리 만들고 싶어요. 어렸을 때 기억에 저희 세 가족이 너무 단란했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가장이 돼서 행복했던 그 기억을 다시 살리고 싶어요. 이제 놀 만큼 놀아봤어요. 클럽은, 너무 위험해요!"

장근석은 "요즘 나를 외롭지 않게 해주는 친구가 있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애묘 '끼끼'라고 했다. 끼가 많아서 '끼끼'다.

"아비니시안 종이에요. 호랑이처럼 생겼어요(웃음). 어느 날 문득 외로워서 고양이나 사볼까 해서 고양이 가게에 갔다 만났어요. 고양이들이 귀여워서 '얘들아 이리 와'라고 했었는데 얘만 안오더라고요. 매력 있었어요. 건방진데 매력있는 녀석이었죠. 여자 고양인데 집에 여자가 놀러 오면 발 깨물고 도망가요. 요즘 '끼끼' 보는 낙으로 살아요. 애교가 정말 많아요. '끼끼' 때문에 '순이'라고 회사에서 키우는 강아지 인기 순위가 떨어졌어요. 그 자리를 '끼끼'가 박차고 들어왔죠."

배우로서 인정받고 있는 장근석이지만 그에게는 '아티스트 장근석'으로서 음악에 대한 꿈도 여전하다.

"음악은 상당히 좋은 옵션이 있죠. 시간의 제약이 없거든요. 차 안에서도 곡을 쓸 수 있고, 술 취해서도 곡을 쓸 수 있어요. 그런데 드라마는 모든 스태프들이 구성이 돼야 하고 현장에서 찍고 방송에서 틀어야 비로소 결과물이 나오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음악은 제게 큰 메리트인 것 같아요. 그게 재밌어요.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연기를 하고 싶은데 그게 아니잖아요. 음악은 쉬지 않고 할 수 있어서 계속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끼가 많은 사람들은 옴짝 달싹 못하면 미쳐요. 음악은 제게 분출구죠. 한국 분들은 제가 음악을 하는 걸 잘 모르지만 일본에서 전 음악을 '딥'(deep)하게 해요. 밴드도 하고 EDM도 하고요."

일본 얘기가 계속 됐다.

"제가 일본에 가게 된 이유를 말씀드릴까요. 제천에서 서울에 올라와 아버지는 택시 모시고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저는 속옷 CF를 찍었는데 중학교 때 집에 여전히 돈이 없었어요. 이과나 문과 고등학교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인데 저는 중학교 3학년 내내 진로에 '유학'이라고 썼어요. 중학교 때 애들이 제 속옷 사진 가져와서 놀리는 것도 싫었고요. 엄마 아빠 용돈 받고 사는 애들이 집을 위해 돈을 버는 저를 놀리는 데 화도 많이 낫죠. 어쨌든 어머니가 돈을 모으셨는데, 전 거기에 대고 영국으로 보내달라,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했죠. 그런데 집안 사정을 따라야 했기에 뉴질랜드로 갔어요.

촌구석이었죠. 한국 학생은 우리 학교에 5명인가 있었어요. 운동할 때만 같이 하고 정신적 교감은 오히려 일본인 친구들과 많이 했어요. 영어를 배우러 갔는데 오히려 일본어가 늘더라고요. 서로 문화적 교류를 하면서 전 일본 문화를 배웠는데 기무라 타쿠야라는 사람이 눈에 띄더라고요. 어제 내가 본 비디오에서는 분명 드라마에 나왔는데 오늘은 예능에 나오는 거예요. 또 어느 날은 MC로 등장하고요. 그걸 보는 순간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배우는 연기만, 가수는 노래만 했거든요. 아, 일본에 가면 이 모든 걸 다할 수 있구나. 10년 안에 무조건 일본에 메이저로 가야겠다 다짐했죠. 10년 목표를 세웠는데, 9년 만에 일본 도쿄돔에서 공연을 했어요. 감개무량했죠."

일본에서 '아시아 프린스'가 될 수 있었던 비결도 공개했다.

"사람들은 제가 드라마 한방으로 일본에 가서 확 떴다고 생각해요. 그게 맞죠. 그런데 저는 일본에 가기 전에 이미 많은 준비가 돼있었어요.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스무 살에 처음 갔어요. 50만원 들고요. 근데 그 당시 이미 회화가 가능했어요. 처음 간 나라에서요. 오히려 그쪽에서 놀라더라고요. 어, 쟤 일본어 할 줄 아네, 이러면서요. 그렇게 일본에 가보니까 깨달았죠. 아, 이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구나. 죽어라 열심히 하면 이뤄지는구나. 그때부터 영어를 공부했어요. 미국도 갈 수 있겠다 자신할 정도로 영어 실력도 쌓았죠. 근데 미국에는 안 갔어요. 차라리 아시아에 집중하자. 아시아를 떠올렸을 때 장극석을 떠올리게 하자. 아시아의 미래로 보이게 하자고 전략을 세웠죠."

장근석은 "앞으로 10년은 안에서 명예회복을 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계급장 떼고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연기를 해보는 게 앞으로 목표"라고 했다.

장근석은 또 다른 목표도 얘기했다. '아시아 프린스 주니어' 프로젝트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세대 한류스타를 직접 키우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목표가 7개 정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시아 프린스 주니어'를 찾는 거예요. 연기자든 가수든 제가 간 길을 편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줄 생각이에요. 조건은 없어요. 열심히 일하면 돼요. 제가 걸어온 길을 열심히 따라오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하면 되죠. 가수를 만든다면 제가 일본에서 만드는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 설 수도 있고, 연기자를 만든다면 저와 같이 작품에 출연할 수도 있겠죠. 제2의 장근석, 제3의 장근석을 만들려고 해요. '아시아의 미래'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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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장근석 신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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