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마이너리그 최다홈런 헤스맨의 은퇴..그 쓸쓸함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12.0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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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헤스맨./사진=ESPN 홈페이지



방망이에 맞추기만 하면 넘길 수 있는데….


마이너리그에서 433개의 홈런을 때려 역대 마이너리그 최다홈런 신기록을 수립한 마이크 헤스맨(37)이 19년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헤스맨은 지난달 28일 현역 은퇴를 발표했고 이제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올해 8월 그가 마이너리그 역대 최다홈런기록을 수립했다는 뉴스가 나오기 전까지 해스맨이라는 선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의 신기록 뉴스를 접하면서 “아, 그런 기록도 당연히 존재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며 그 기록의 의미를 잠시 생각해봤다.

400개가 넘는 홈런을 쳤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고 이 정도의 파워를 가진 타자라면 메이저리그에서 당장 모셔갔을 것 같은데 그는 왜 400개가 넘는 홈런을 이름도 잘 모르는 시골구석 마이너리그 구장에서 치고 있었을까. 마이너리그에서 이 같은 기록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는 물론 이 정도 파워히터의 경우 다 메이저리그로 불려가기 때문인데 그는 어쩌다가 그런 엄청난 파워를 화려한 메이저리그 무대가 아니라 마이너에서 썩혀야 했을까.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헤스맨은 지난 1996년 남가주 스포츠 명문교인 마타데이 고교를 졸업하고 그해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15라운드(총 452번째)에 지명을 받았다. 대학야구의 명문 애리조나로부터 장학금 제의를 받았으나 메이저리그의 꿈에 부푼 당시 18세 소년은 그를 거절하고 험난한 마이너리거 인생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됐던 메이저리그는 너무도 멀리 있었다.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며 구슬땀을 흘렸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부름은 오지 않았고 세월만 계속 흘러갔다. 키가 6피트5인치(196cm)에 체중 215파운드(98kg)의 거구인 헤스맨은 빗맞은 타구로도 담장을 훌쩍 넘기는 엄청난 파워를 지녔지만 문제는 방망이에 볼을 맞추는데 있었다. 19년 선수 생활 중 한 두 해를 제외하면 시즌 타율이 거의 대부분 1할대 후반에서 2할대 초반을 맴돈 그가 메이저리그에 설 자리는 없었다.

물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그에게도 전성기(?)는 있었다. 첫 번째는 2003년. 트리플A에서 타율 0.248에 16홈런을 때린 그는 그해 8월22일 꿈에 그리던 빅리그의 호출을 받았고 나흘 뒤인 8월26일 뉴욕 메츠의 좌완투수 마이크 스탠튼을 상대로 대타로 나서 홈런포로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신고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언제라도 큰 것 한 방을 터뜨릴 잠재력은 있어도 꾸준하게 메이저리그 투수의 볼을 방망이에 맞출 능력은 없었던 선수였고 결국 이듬해 곧바로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가야 했다.

200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 트리플A 톨리도 머드핸드에 배정된 그는 그해 28홈런과 74타점을 올리며 톨리도를 38년만에 처음으로 인터내셔널리그(트리플A)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해 그의 타율은 0.214에 불과했다. 이듬해에도 그는 24개의 홈런을 때리며 톨리도의 2연패를 견인했지만 그의 타율은 그 전 해보다도 훨씬 더 떨어진 0.165였다.

하지만 2007년 그는 톨리도에서 0.254라는 그로선 준수한 타율과 함께 31홈런과 101타점을 올리며 인터내셔널리그 MVP로 선정되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그 덕에 디트로이트에서 호출을 받아 17게임에 나서 타율 0.235에 홈런 4개와 12타점을 올리는 기쁨을 누렸다. 이때 그의 나이 29세.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2008년에도 여전히 톨리도에서 출발했고 중간에 베이징 올림픽에 나선 미국 대표로 선발되는 바람에 한 달 동안이나 시즌을 쉬고도 시즌 34홈런을 때렸다.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온 그는 디트로이트로 불려 올라가 12게임에서 홈런 5개를 때리며 타율 0.296을 기록해 다시 빅리그 잔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형적인 ‘커리어 마이너리거’ 낙인이 찍힌 헤스맨이 디트로이트에 설 자리는 없었다. 2009년 톨리도에서 23홈런을 때린 뒤 FA로 풀린 그는 뉴욕 메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고 2010년 트리플A 버펄로에서 뛰다가 메츠로 불려와 32게임에 주로 대타로 나섰으나 타율 0.127, 1홈런, 6타점의 초라한 성적에 그쳤다. 그리고 그는 시즌 후 방출된 후 다시는 빅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의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5개 시즌에 걸쳐 109경기에서 타율 0.188(223타수 42안타), 14홈런, 33타점이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의 오릭스 버펄로스와 계약해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가 48게임에서 6홈런과 타율 0.192로 쓰라린 실패를 맛본 뒤 2012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한 그는 트리플A 오클라호마시티에서 35홈런으로 커리어 한 시즌 최다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역시 빅리그와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그는 2014년 톨리도로 돌아가 올해까지 2년간 44홈런을 추가해 마이너리그 역대 최다홈런 기록을 다시 쓴 뒤 유니폼을 벗었다.

헤스맨은 지난 8월3일 경기에서 그랜드슬램을 뿜어내며 생애 처음으로 ESPN을 비롯한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홈런은 그의 생애 마이너리그 433호로 1937년 버즈 알렛(오클랜드 옥스)이 세운 432홈런 기록을 78년 만에 뛰어넘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닉하게도 그는 더 이상 홈런을 추가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고 결국은 커리어를 접기로 결단했다.

그의 코치는 그가 아직 3~4년은 더 뛸 수 있다고 말했지만 자신을 ‘할아버지’(grandpa)라고 부르며 “베이브 루스가 투수로 던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기도 하는 동료들과 함께 하기엔 이미 나이가 너무 들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선 이후 4년간 트리플A에서 시즌 평균 30홈런과 100타점씩을 올렸지만 그 어느 메이저리그 팀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내년에 38세가 되는 그로선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이 분명했다.

헤스맨은 “게임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면서 “난 그저 매일 매일 직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버스로 8시간씩 달려가 다음 경기를 치르는 상상도 못할 강행군을 반복해야 하는 고된 마이너리그 생활을 19년간이나 묵묵히 치러낸 헤스맨은 어쩌면 자랑스러워하기도 쑥스러운 기록을 기록집에 올려놓고 마침내 방망이를 내려놨다. 화려한 빅리그의 뒷면에 헤스맨과 같은 선수들이 있기에 메이저리그의 스타들이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영화에도 주연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제2의 커리어에 도전하는 마이너리그 홈런왕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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