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52년 전통의 흑역사②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5.11.21 07:00 / 조회 : 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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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회 대종상 남녀 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불참한 배우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황정민, 유아인, 하정우, 손현주, 엄정화, 김윤진, 한효주, 전지현, 김혜수/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대종상.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영화시상식. 정부가 주관하는 영화 부문의 유일한 상.


수식어는 화려하지만 그 권위는 결코 최고(最高)이지 못했다. 지난 20일 열린 제 52회 영화제가 빈축을 샀던 '대리수상 불가방침'에 이어 남녀 주연상 후보의 전원 불참, 역풍의 대리수상 퍼레이드로 망신살이 뻗쳤지만 어디 올해만의 일이랴. 대종상의 흑역사는 이미 전통이 깊다.

대종상은 1958년 현 교육부에 해당하는 문교부에서 제정한 '국산 영화상'이 그 시작. 주관 기관이 공보부로 옮겨가며 1961년 대종상으로 명칭이 변경, 1962년 1회 시상식을 열었다. '정부 주관' 정도가 아니라 '정부 주도'의 영화상이었던 셈.

덕분에 군사정부 시절인 1970년대, 1980년대에는 반공 메시지를 담거나 국가정책 홍보 성향이 짙은 영화들이 다수 수상했다. 1966년부터 '우수반공영화상', '반공영화각본상'(중앙정보부장상) 등이 만들어져 1985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친정부적이고 반공 메시지를 담은 영화에 아예 따로 상을 안겼을 정도다. 자연히 사회나 정부에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은 외면받기 일쑤였다.

비리도 만연했다 '방화'라 불리던 한국 영화보다 외화 수입이 더 짭짤한 수익을 안기던 시절, 1966년부터 외화수입 자유화가 되기까지 대종상의 부상으로 외화 수입 쿼터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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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두 여자 이야기' 포스터


수상작 논란의 역사 또한 깊다. 1984년 시상식 중에는 배우 고 장동휘가 강대선 당시 영화인협회 이사장에게 공로상을 시상할 수 없다며 수상자 이름이 쓰인 봉투를 찢어버렸다가 영화인협회에서 제명당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고 장동휘는 1년 뒤 복권되긴 했으나, 강대선 이사장은 2009년에도 대종상 공로상을 수상, 한 영화상에서 2번 공로상을 받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1년에는 미군에게 성폭행당하고 매춘부로 살아가는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장길수 감독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아예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돼 논란이 됐다. 1994년에는 극장가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두 여자 이야기'가 작품상을 비롯해 6관왕에 올라 눈총을 받았다. 당시 경쟁작이 강우석 감독의 흥행작 '투캅스', 베를린영화제에서 수상한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 '그 섬에 가고 싶다'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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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깽' 이미지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96년 벌어진 이른바 '애니깽' 사태다. 당시 개봉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던 '애니깽'은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여우조연상 등 주요 3개 부문을 수상해 파란을 불렀다. 함께 경쟁했던 작품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꽃잎', '테러리스트', '은행나무 침대' 등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예선에서 탈락한 터. 편집도 안 끝나 개봉하지 못한 영화의 수상에 영화 평론가들이 공식 항의에 나서는 등 사태가 커졌다. 논란 끝에 삼성이 스폰서십을 끊었고, 후원사로 남았던 쌍방울이 IMF 당시 위기를 맞으며 1998년에는 대종상 시상식이 아예 열리지 못했다.

'친구'가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무관에 그친 2001년에는 '하루'가 감독상(한지승)과 여우주연상(고소영) 등 4개 부문을 휩쓸어 논란에 휘말리는가 하면, 2005년에는 당시 출연 영화가 6편이 넘었던 김래원이 2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던 공형진 등과 경합 끝에 신인상을 수상해 빈축을 샀다. 2009년에는 '해운대'와 '내 사랑 내 곁에'의 하지원이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빠진 반면 후보작 선정 당시 미개봉 영화였던 '하늘과 나라'의 장나라가 여우주연상 후보가 돼 논란을 불렀다. '신기전'이 작품상을 수상한 그 해,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남우조연상 1개 부문 수상에 그쳐 또 뒷말이 무성했다.

2011년에는 '써니'의 심은경이 영화제 참석하지 못한다고 전한 뒤 석연찮은 이유로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빠져 논란이 됐다. 영화제 측은 '로맨틱 헤븐'으로 심은경에게 여우조연상을 수여했지만, 심은경은 "상을 받아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며 SNS에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이듬해 2012년에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무려 15개 부문을 싹쓸이해 '광해상', '광종상'이란 비아냥을 얻었다.

그리고 올해, 대종상이 또 사고를 쳤다. 시작부터 불길했다. 2013년부터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이 지난 3월 방산비리로 구속됐다. 지난 10월 공식 기자회견에선 조근우 집행위원장이 "참석이 불가능하면 상을 주지 않겠다"며 '대리수상 불가' 방침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참석상''출석상'이 아니냐는 비난이 들끓었으나 대종상 측은 시상식 당일까지 이에 대해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했다. 여기에 유료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인기상 수상자를 선정하고, 본상 수상에도 20%를 반영하면서 '돈벌이' 논란까지 더해졌다. 그마저도 후보자 사진과 이름을 잘못 표기해 이틀이 더 걸려 수정하는 촌극을 빚었다.

결국 역풍이 불었다. 황정민(국제시장) 하정우(암살) 손현주(악의 연대기) 유아인(사도, 베테랑) 남우주연상 후보 전원과 김윤진(국제시장) 전지현(암살) 김혜수(차이나타운) 한효주(뷰티 인사이드) 엄정화(미쓰 와이프) 여우주연상 후보 전원이 20일 오후 열린 대종상 시상식에 불참했다. 작품 없이 인기상 수상자가 된 김수현 공효진도 마찬가지다. 감독상 후보를 비롯해 주요 후보들도 대거 불참했다. 이 와중에 중견배우 김혜자에게 영화와 상관없는 '나눔화합상'을 주겠다며 이래저래 말을 바꿔 또다시 비난을 샀고, 정작 시상식에서는 엉뚱하게 "시상자가 불참했다"며 김혜자의 이름조차 호명하지 않았다.

흑역사는 계속된다. 이 역사가 과연 계속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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