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희 "정치색? 거북이 같이 성장하는 배우 소리 듣고파"(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10.2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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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희/사진=이기범 기자


누구는 이천희에게서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를 떠올릴 것이다. 순박하고 어리한, 그래서 좋은 사람. 어쩌면 그런 모습이 진짜 이천희와 닮았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천희의 영화 출연작을 살펴보면 분명한 색이 느껴진다. 결혼을 하고 어느 순간부터 적어도 영화에선 이천희의 색은 점점 더 짙어져 가고 있다.


고 김근태 의원의 고문 사건을 그린 '남영동 1985', 집 없는 사람들의 설움을 그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그리고 22일 개봉한 '돌연변이'까지, 이천희의 색은 더 짙어졌다. '돌연변이'는 제약회사 임상 실험에 참여했다가 생선인간이 된 88세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청년 실업, 좌우 편가르기, MBC 파업, 황우석 사태 등 지금 한국의 여러 문제들이 깨알 같이 담겼다.

이천희는 '돌연변이'에서 지방대 출신으로 방송사 정규직 기자가 되기 위해 생선 인간 사건을 쫓는 시용 기자 역할을 맡았다. 생선 인간이 된 청년에 자기 모습을 보면서도, 정규직이 되기 위해, 이용해야만 하는 그런 청춘. 그러면서도 왜 스스로 기자가 되려 했는지를 계속 고민하는 젊음. 이천희이기에 '돌연변이'는 설득을 얻었다.

이천희는 왜 점점 색을 띠려 하는 걸까.


-'돌연변이'는 왜 했나. 계속 사회성이 짙은 영화들은 하는데.

▶계속 그런 영화들을 하니깐 이천희가 (정치)색깔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난 색깔이 없다. 그것보다 휴머니즘이 짙게 녹아있는 작품이 좋다. 그런 것에 흥미를 느껴서 계속 그런 영화들을 하는 것 같다. '남영동 1985'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영동 1985'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나 '돌연변이'나 다 제작비가 적은 영화들이다. 돈도 많이 못 받고, 그렇다고 상업적인 장르도 아니다. 영화에 더 안착하기 위해선 다른 상업성이 짙은 영화를 택할 법도 한데.

▶돈은 별로 상관 없다. 마음에 들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느냐, 내가 만족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광수, 박보영 등 '돌연변이' 팀들과 밤새도록 바닷가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게 좋다.

-주위에서 색깔이 있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면 작품 선택에 자기 검열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글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면서 배운다. 색깔 없는 내가 공감을 하면 관객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내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응원해 준다.

-'돌연변이'에서 방송사 면접을 보면서 "사회정의를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단순한 면접용일 수도 있었던 말이 어느새 자기가 왜 기자를 하고 싶어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된다. 배우 이천희에게 연기도 그런가.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막연했다. 무대에 단순히 서고 싶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서울예대에 들어갔는데 정말 무대에 서기가 싫더라. 동기 중에서 제일 연기를 못하는 애였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연기를 잘하고 싶고, 칭찬을 받고 싶더라. 그러다가 나중에는 포스터에도 얼굴이 나오고 싶고, 주인공도 되고 싶어지고. 그런 욕심들이 생기니 정작 내가 왜 연기를 시작했는지를 잊는 것 같다.

'돌연변이'를 찍으면서 왜 내가 연기를 하려 했는지, 뭐를 행복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도 그냥 연기가 좋다. 초심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 재밌고 행복하니깐.

-'돌연변이'는 지금 한국의 많은 문제를 깨알 같이 담았다. 한편으론 너무 많은 걸 담으려 한 것도 같은데.

▶좀 많다. 많은 걸 조금조금 건드린 느낌이긴 하다. 처음에는 문제의 제약회사를 인수한 대기업 이름도 누구나 바로 알 수 있는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이창동 감독님이 권오광 감독님에게 너무 직접적이지 않냐고 조언을 해줘서 바꾸기도 했다. 그래도 권오광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오래 준비하면서 최선을 다했다. 영화에서 직접 삭발까지 하면서 출연도 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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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희/사진=이기범 기자


-기자 역할이다. 기자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나.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사람이니깐. 영향력도 있고. 배우도 대중을 상대하니깐 한 마디 한 마디가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왜 내가 공인이야 싶다가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에게 피해를 입은 경험은.

▶마음 아픈 경험 많다. 울어도 되나.(웃음) 지금은 다 잊었다.

-'돌연변이'가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됐는데. 현지 반응은 어땠나.

▶엄청 뜨거웠다. 사실 그게 (이)광수의 힘이었다. 다들 광수를 보고 "와"했는데 외신들은 잘 모르니깐 마치 '돌연변이'에 대한 반응인 줄 알았나 보다.(웃음)

-생선인간으로 영화 내내 탈을 뒤집어 썼던 이광수나 외모와 달리 거친 입담을 자랑했던 박보영과 호흡은 어땠나.

▶광수는 손으로 다 했다. 탈을 뒤집어 쓰면 앞도 잘 안 보이고, 잘 들리지도 않는다. 공기가 잘 안 통하니 산소호흡기도 달아야 했고. 그런 상황에서 힘든 티 한 번 안내고, 손으로, 어깨로, 공기 흐름으로 그 감정을 전해줬다.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라고 해도 절대 먼저 이야기 안 한다. 탈을 벗고 쉬라고 해도 "괜찮다"고 한다. 슛이 들어가려면 한 시간 정도 더 걸릴 것 같으니 쉬라고 하면 그제야 "그럴까요"라고 한다. 그런 모습들이 영화에 다 녹아들어 간 것 같다.

박보영은 정말 열심히 한다. 영화에 활력을 넣고. 두 사람이 너무 잘 하니깐 나는 오히려 너무 연기를 티 나지 않게 한 것인가 불안하기도 했다. 역할이 연기를 한 듯 안 한듯한 느낌이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아무 것도 안 한 게 아닌가란 고민도 많이 했다.

-영화 속 인물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고 싶나. 지금은 가정도 아이도 있는데.

▶사실 그러고 싶다. 하지만 결혼을 했고, 애가 유치원도 가고, 밥도 잘 먹으니깐.(웃음) 그러다 보니 타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이유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도움은 안 되지만 정신적으로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아내는 오히려 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응원해준다. 굉장히 세심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편인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보고 처음 칭찬해 주더라.

-그래서 점점 더 색이 짙은 영화를 찾게 되는 건가. 돈은 TV드라마로 벌고.

▶차기작으론 드라마를 해야 할 것 같다.(웃음) '남영동 1985'를 찍을 때 정지영 감독님이 "너 왜 연기를 그렇게 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고문하는 역할인데 도저히 그 감정을 못 쫓아 가겠더라. 그랬더니 정지영 감독님이 "넌 휴먼 쪽이 맞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 뒤 KBS 단막극에서 복면 검사를 했는데 너무 후련하더라.

그런 게 나와 맞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나쁜 사람의 경계가 다른 사람과 좀 다른 것 같다. 난 종이 잔을 구기면 어떻게 저렇게 나쁜 짓을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나쁜 사람을 영화 속에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다른 사람과 기준이 다르니깐. 그래서 더 휴머니즘 쪽을 찾게 되는 것도 같다.

-'패밀리가 떴다'로 많은 인기를 누렸었는데. 최근에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많은데 출연 계획은 없나.

▶처음에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아내(전혜진)의 역할이 컸다. 아내는 아역배우로 자라서 보통사람처럼 살고 싶은 게 꿈이었다. 지금도 이천희 전혜진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더 노출을 시키고 싶진 않다. 물론 가끔 육아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 애도 귀여운데"라는 사소한 질투를 하곤 한다. (웃음)

-'돌연변이'로 이천희에 대한 재평가란 소리도 나오는데.

▶재평가란 소리는 딱히 듣고 싶진 않다. 예전 모습도 내 모습이었으니깐. 그런 것보다 이천희가 잘 흘러가고 있구나, 거북이 같지만 그래도 성장하고 있구나란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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