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케이틀 "韓첫방문 늦었다고요? 이렇게 왔잖아요"(인터뷰)

[제20회 BIFF]

부산=김현록 기자 / 입력 : 2015.10.03 12:41 / 조회 : 3765
  • 글자크기조절
image
하비 케이틀 / 사진=김창현 기자


"왜 이렇게 늦었냐고요? 왜 질문하면서 웃었는지 알겠네요."

하비 케이틀(Harvey Keitel, 76)는 인터뷰 일성부터 '포스'가 남달랐다. 그는 노년을 깊이있게 성찰하는 파울로 소렌티노의 신작 '유스(YOUTH)'를 들고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첫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으로, 한국 방문 자체가 처음이다.

1939년생인 하비 케이틀은 쿠엔틴 타란티노, 웨인 왕, 마틴 스콜세지, 아벨 페라라, 웨스 앤더슨 등 여러 거장과 수많은 작품을 함께하며 사랑받아 온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다. 누군가에겐 '인생영화'의 주인공이고, 누군가에겐 '저수지의 개들'의 충격이고, 누군가에겐 '라스트 갓파더'의 황망함이기도 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 배우와의 만남이 지난 2일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의 한 부스에서 이뤄졌다.

대배우의 존재감은 입장부터 '어마무시'했지만, 당당한 걸음걸이에 여유있는 미소로 함께한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모습에선 몸에 밴 매너와 여유가 묻어났다. 중후하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음성이 영화 속 그대로였다. 그는 배우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 '경험' 그 자체임을 거듭해 강조하면서, 짧은 방문 기간 동안 경험할 수 있는 한국을 최대치로 경험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단어로 규정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며 내가 죽기 전에나 전화해 알려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왜 이렇게 늦게 왔나.

▶왜 늦었냐고요?(웃음) 더 빨리 오고 싶었지만 지금에야 왔다.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은 타고 온 대한항공 비행기였는데 쾌적해서 인상적이더라. 1일 날 본 스펙터클한 개막식,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행사와 아름다운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늦었지만 이렇게 한국에 오지 않았나.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걸 경험하고 싶다. 여러분은 이미 그 경험의 일부다.

-신작 '유스'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게 됐는데.(인터뷰 당일은 '유스' 시사 전이이었다.)

▶영화를 본 분이 없으니 이를 고려해 다르게 답해 보겠다. 영화를 들고 한국에 왔지만, 영화만 초청되고 저는 안 왔을 수도 있지 않나. 저는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영화제에 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화 그리고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유스'로 모든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하며 우리의 이야기와 경험을 나누고 싶다. 같은 이야기를 보고서 느끼는 것들이 어떻게 다른지도 이야기하며 말이다. 저의 이야기, 여러분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가 서로 나뉠 때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 그건 문화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창조의 과정은 어느 문화가 바탕이든 늘 비슷하다. 그런 것이 늘 저를 생각하게 만든다. 정치인들도 이렇게 하길 바란다. 그가 감독이 되고 작가가 되고 연기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치하고 뻣뻣하고 폐쇄적인 모든 행동을 그만뒀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연설을 하면 어디서든 표를 못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난 (정치인이 아니고) 여기 있으니까 괜찮다. (웃음) 한마디 덧붙이자면, 제가 연기한 캐릭터가 무엇인지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여러분이 제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맞다. 그러고 나면 우리가 더 잘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image
하비 케이틀 /사진=김창현 기자


-이런 교류가 당신을 계속 연기하게 하는 힘인가.

▶그렇다. 어렸을 적 자란 브루클린을 벗어나 다른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 준 것이 바로 영화였다. 브루클린 브리지를 지나 맨해튼으로 넘어갔을 때 정말 엄청난 아티스트를 만났다. 이 탐험을 그들이 하고 있었다. 그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내 삶은 달라졌다. 그것은 내가 '유스'라는 영화와 함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모크'를 인생의 영화로 꼽는 이들도 있다. 뒷이야기를 알고싶다. 또 나의 인생의 영화가 있다면?

▶'스모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지만 그 질문에 답을 하면 문제가 생길 것 같다.(웃음)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는 폴 오스터가 각본을 썼는데 정말 시나리오가 두꺼웠다. 페이지가 얼마나 많았는지 읽고 또 읽다가 지쳐버렸다. 폴 오스터를 만나서 '이 영화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많이 쓴 걸 봐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긴 하니 영화에 참여하겠다'고 했다.(웃음) 그렇게 폴 오스터, 웨인 왕,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아름다운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같은 코너에서 매일매일 같은 장면을 찍는다는 건 정말 놀라운 아이디어가 아닌가. 그건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 모두가 머리 속에 그런 카메라를 하나씩 가지고 매일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계속해서 경험해야 하고 또 부족하다고 느끼나.

▶여전히 그러고 있는 걸로 봐서 그런 것 같다. 제가 지금 인생에서 걷고 있는 단계는 모두가 경험할 단계이기도 하다. 어떤 단계든, 인생의 어떤 시절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하면서 저도 좀 슬프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떠올리면 더 그렇다. 정말 많은 생명들이 너무 빨리 지고 있는 것 같다.

경험이란 앎에 대한 경로라고 덧붙이고 싶다. 약간은 얻었지만 더 많이 알아가고 자각하고 싶다.

-한국에서 특별히 해보고 싶은 경험이 있다면.

▶특별한 건 없다. 며칠만 머물 예정이라 사람들과 만나고 경험하고 싶다. 사람들을 만날 거다. 여기가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걸 안다. 뉴스를 통해 본 북한의 이미지가 있는데, 내가 학자는 아니지만 어떻게 한국과 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브루클린에 살던 소년 시절 한국전쟁에 대해 들었다. 미국 또한 생성 과정에서 남북전쟁을 겪었고, 나는 이 과정이 어떻게 우리를 지금의 여기로 이끌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그런 생각이 지금 든다.

말씀드렸다시피 많은 걸 자각하고 서로에 대한 무심함을 파괴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부산국제영화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모든 이야기가 모일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것을 극복하게 하는 곳이다. 김동호(BIFF 명예집행위원장)란 분이 영화제를 시작했다 하는데,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감사드리고 싶다. 아마 그 분의 내면에는 모든 국적의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생각을 공유하게 하고 싶다는 깊은 욕망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심형래 감독이 연출한 '라스트 갓파더'에 출연한 인연이 있다. 심형래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굉장히 재능있고 창조적인 배우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한국에 대한 아름다운 코미디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재미있었고 어떤 지점에서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정말 기발하고 코믹한 방법으로, 심지어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할 만한 이야기, 작업이었다.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등으로 웨스 앤더슨 감독과 많이 작업했다.

▶웨스 앤더슨은 놀랍고 이미지로 가득한 무비 메이커다. 그와 일하는 것은 늘 재미있다. 얼마 전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새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 연기를 하게 돼 몇 주 전 녹음을 했다. 첫 작품부터 같이 했는데 굉장히 매력적이고 지금도 여전히 매력이 넘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도 한국에서 인기가 많았다.

▶제 액터 스튜디오의 여자 동료가 전화해 '당신이 마음에 들어 할 시나리오가 있다'고 했다. 그게 '저수지의 개들'이었다. 그녀가 영화의 시작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맞았다.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앞으로도 더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다.

-많은 배우가 '섹시스타', '액션배우' 등 자신을 설명하는 수식어를 갖고 산다. 그러나 하비 케이틀이란 배우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 본인을 설명하는 단어를 꼽아줄 수 있나.

▶절대로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다. 미국식 조크이긴 하지만 '저녁에 늦었다'는 얘기처럼 절대로 안 듣고 싶다. 내가 뭘로 불려도 상관은 없지만 그렇게 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장난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스스로 제 칭찬을 하는 게 좀 쑥쓰럽다고 할까. 내가 죽기 전에 전화를 해서 무엇이 생각나는지 얘기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 그 때 저를 정의할 수 있는 말을 정해달라. (웃음)

기자 프로필
김현록 | roky@mtstarnews.com 트위터

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