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진 "'사도' 오열 장면, 어찌 맨정신으로 할 수 있겠냐"(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5.09.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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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진/사진=이기범 기자


연기경력 17년에 아직 배우라는 호칭이 낯설단다. 두 아이의 엄마 역할과 유명해진 남편의 아내 노릇, 그리고 배우까지 세 가지를 모두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단다. 그리하여 '사도'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더랬다.

전혜진(40)에게 '사도'는 어쩌면 운명이었다. 사람들에게 배우 전혜진보단 이선균의 아내 전혜진이 더 익숙한 건 지금까진 당연했다. 하지만 '사도' 이후 전혜진은 '사도'의 전혜진, 유아인의 엄마, 영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추석 극장가를 강타한 '사도'는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송강호와 유아인이 출연했다.


전혜진은 '사도'에서 아비가 두려운 아들이 불쌍하고, 어미를 사랑하는 아들이 애달픈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역할을 맡았다. 남편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을 죽여 달라고 전한 슬픈 엄마 역할이다. 전혜진이 '사도'에서 "내 잘못 아니지"라고 오열하는 장면은,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관객도, 전혜진에게도, 배우로 기억할 영화를 드디어 만났다.

-'사도'에서 오열하는 장면이 화제다. 그 장면을 술을 먹고 찍었다던데.

▶그걸 어찌 맨 정신으로 할 수 있겠냐. 처음부터 술을 마실 생각을 하고 집에서 와인을 준비했었다. 주위에서도 한 잔 하고 하라더라. 이준익 감독님이 술 한 잔 할 생각 있냐고 해서 달라고 했다. 스태프가 소주를 사러 갔다 오는 5분이 그렇게 길더라.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숨을 죽이고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사실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원래 대사도 그게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그 장면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텐데.

▶사실 시나리오를 볼 때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유아인이 "우리 엄마 나가신다"라고 외치는 장면이었다.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그리고 이 영화가 눈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나까지 그러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을 했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순간을 많이 경험했었나.

▶매 순간 그렇다. 사실 나 스스로 배우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배우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란 생각을 했었다. 영화에 들어가고 싶어서 이 길로 들어섰는데 여배우가 내 길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때만 해도 여배우에게 어떤 덕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남편이 멜로 연기를 많이 하는 배우라서 그런지, 일부러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느낌도 드는데.

▶배우란 길이 지금도 많이 힘들다. 배우라는 말이 아직도 낯설다. 이선균이 유명해지니깐 더 숨게 되더라. 난 뒷일을 더 좋아한다. 이제 스스로를 배우라고 하게 된다면 계속 이선균의 아내로 남는 건 아닐 것 같다. '사도'를 못 만났으면 다시 굴로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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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진/사진=이기범 기자


-'사도'는 어떻게 하게 됐나.

▶처음에는 이준익 감독님이 나를 어떻게 알아서 연락을 했나란 생각이 들었다. 제작사 대표님이 '더 테러 라이브'를 보고 점찍어 놨다더라.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덩어리가 크구나란 생각에 겁이 나서 던져 났었다.

'사도'로 내 배우의 길이 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지방에서 계속 촬영을 하니깐 두 아이들에게 엄마의 부재가 크게 느껴지기도 했을 테고. 촬영하다가도 큰 아이에게 "엄마, 어디야"라고 전화가 오면 많이 흔들리기도 했었다. 내가 욕심이 많은 건가라고 자책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사도' 촬영을 계속 하면서 동료, 선후배, 감독님에게 태도를 배웠다. 난 민간인과 엔터테이너를 오가며 살았다. 눈에 띄는 것도 싫었고, 배우란 말이 아직도 쑥스럽다. '사도'를 하면서 연기를 하는 게, 해야 하는 게 맞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유아인이 "우리 엄마 나가신다"라고 하는 장면에서 말한 것처럼 울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던데.

▶눈물이 안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울컥 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배우들이 가마를 들어주는데도 모든 게 송구스럽더라. 처음 4배 장면을 찍을 때는 며느리도 딸도 안 보이고, 오로지 아들만 보였다. 그런 마음들이었던 것 같다.

-'사도'를 하고 난 뒤 앞으로는 배우로 살 수 있을 것 같던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다. 가을에 연극을 하고, 곽경택 감독의 '희생부활 보고서'를 찍는다. 과거에는 영화로 내 시대, 내 나이와 고민에 맞는 그런 걸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 순간들이 그냥 지나가버렸다. 이준익 감독님이 조연은 조연의 역할이 있고, 단역은 단역의 역할이 있다고 하더라.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앞으로는 정말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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