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 '근 오백년' 난포고택이 전하는 묵묵한 교훈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5.08.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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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밖에서 바라본 난포고택의 정면 모습.


길 떠난 날이 마침 광복 70주년 기념일. 아침부터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경북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의 난포고택에 도착한 시간엔 해가 중천에 떠올라 있었다.

“난포고택은 난포 최철견이 경북 영천 창수(현 금호)에서 현재 위치로 이거하여 명종 원년(1546년)에 지은 가옥으로...” 고택앞에는 난포고택을 설명하는 글이 객을 맞는다.


요행 알음알음 고택을 관리하는 최원규씨(52)와 연이 닿아 하룻밤을 유하기로 한 터라 찬찬히 집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담벼락부터가 정겹다. 글로 써내린 설명이 너무 건조하다는 느낌이 든다. 큰 사랑채 대청이 이고 있는 팔작지붕의 거침없고 맵시넘친 선도 그렇고 세월의 더께 진 툇마루가 그렇고 마당 한켠의 장독대와 꽃이 그렇고 수오당을 지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그렇고 텅빈 마당을 장식한 지붕의 그림자도 그렇다.

재실인 수오당(守吾堂)과 안채와 사당, 행랑채까지를 둘러보고 담너머부터 오르고싶었던 큰 사랑채 대청마루에 오른다. 낮은 담을 넘어 볏잎 파란 들을 지나 풍수에서 안산이라고 설명하는 용산(435.2m)까지가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최원규씨는, 옛말에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여름손님을 맞고서도 미소띈 얼굴로 시원한 매실차를 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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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포고택 큰사랑채의 대청. 추녀의 선이 맵시있고 활달하다.



479년. 근 오백년된 집에서 하룻밤을 잔다는 설렘을 다독이며 속 후련하게 냉매실차를 비우니 최원규씨는 잠시 쉬라하며 자리를 비운다. 그 배려에 마루를 뒹굴거리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호사를 누려본다.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다. 눈길이 다시 집을 맴돈다.

저 사랑방 문살위로 사람들은 몇번이나 풀을 쑤어 창호를 발랐을까? 이 툇마루를 밟고 디딘 버선들은 몇켤레나 닳아서 버려졌을까? 저 작은 아궁이를 뎁히자고 얼마나 많은 장작들이 몸을 살랐을까? 사당 뒷편 산으로부터 안채를 지나 사랑채를 훑어간 산들바람들은 어떤 이들의 오수를 토닥였을까? 기와를 타고내려 추녀에서 댓돌로 떨어지는 빗물소리는 누구를 심란하게 했을까?

맑고 고요한 밤, 밝은달이 대청으로 들때면 시 한수 읊조리거나 가야금을 뜯는 이도 있었으리라. 사랑채와 안채사이의 너른 마당을 빠짐없이 쓸어내리는 하인들과 어느 떠들썩한 혼례날 신랑 신부의 실루엣도 머릿속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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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이 행랑채. 사랑채(왼쪽)와 안채 사이 텅빈 마당엔 지붕의 그림자들이 시시각각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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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형의 안채.


엄부의 회초리에 팔짝거리는 아이들도 있었겠고 자모의 치마폭에서 위로받는 아이들도 있었겠다. 그들이 어느덧 자라 아이들의 엄부자모가 되었을 때 늙은 부모는 미소 지며 스러져 갔을 테다.

불현듯 대문을 두드리고 들어서 술 걸러 내오라 큰소리치는 객도 있었겠고 그런 객을 버선발로 맞아 사랑으로 잡아끄는 주인도 있었겠지.

흐뭇한 상상에 빠져 헤실거리는 얼굴 한 켠에 건조한 시선이 느껴진다. 돌아보니 하얀 진돗개 한마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심한 듯 보고 있다. “넌 이름이 뭐냐?” 했더니 삼돌이란다. “몇 살 이냐?” 했더니 다섯 살이란다. 스킨십을 좋아하는 삼돌이가, 저를 대신해 대답해주고 툇마루에 앉은 최원규씨의 손을 혀로 핥는다.

최원규씨와의 대화를 통해 이 집을 지은 난포 최철견(1525~1594)에 대해 많은 자료들이 1548년생으로 1618년 졸한 몽은 최철견과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난포의 17세손인 최원규씨(52)에 따르면 두 사람은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동명이인이다. 실제 사료상 난포는 영천 최씨, 몽은은 전주 최씨이며 난포고택은 몽은 출생 2년전인 명종 원년 1546년 건립된 것으로 나와 있고 몽은의 父가 최 력으로 알려진데 반해 영천 최씨 대동보에 기록된 난포의 父는 최 계생(季生)으로 되어 있어 몽은과 난포는 엄연히 다른 사람으로 확인된다.

1929년 조선총독부의 촉탁으로 근무했던 일본의 민속연구가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1891~1968)은 이 난포고택을 전국의 풍수적 길지에 자리한 대표적인 주택 36개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그 지형이 거주지로 가장 좋은 부용화(芙蓉花) 형상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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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의 툇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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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대청에서 바라본 전망. 앞산이 난포고택의 안산인 용산이다.


하룻밤을 묵을 사랑채에 누워본다. 여름 한낮의 강한 햇빛이 반투명 문종이를 통해 은은한 미색으로 순화된 채 얼굴을 간질인다. 간단없이 불어오는 산바람 공덕으로 살풋 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떴을 때 석양빛을 받은 문종이가 붉은 기운을 담아내고 있다. 내다보니 빈마당에 진 지붕의 그림자가 제법 길다. 그러고 보면 그저 빈 마당 조차 시간의 흐름 따라 그림을 그려내는 캔버스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파트 살이에 몸이 익어 늙어서도 아파트에 살 궁리인데 그 작정이 살짝 흔들린다. 집안에 있으면서도 집밖에 있는 양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속 후련함이 매력적이다.

어탕 잘하는 집이 있다 소리에 길을 나섰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아 대신 메기매운탕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돌아와 사랑채 대청마루에 술상을 보았다. 두런두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살이가 오백년 전이라고 달랐을까? 그때그때 이 자리에선 지금의 우리처럼 하수상한 시절 안주삼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이들이 있었겠다.

백열등 조명에 달빛과 별빛이 어우러지고 제각각의 풀벌레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백뮤직으로 깔린다. 달아오를만 하면 산바람 한줄기가 앞머리를 흔들며 취기를 다독이고 목을 빼고 안주거리를 기다리던 마당의 삼돌이도 코를 박고 졸고 있다.

“도깨비 나올 수도 있어요”라는 주인장의 농담을 끝으로 잠자리에 든다. 17대가 이어 산 집 구들에 몸을 누인다. 근 오백년을 한자리에 터 잡고 지켜온 집은 어제를 돌이켜 오늘을 제대로 살라는 교훈을 묵묵히 전해 주는 듯 하다.

삶의 갈피마다 마주치는 만남들이 모두 의미 있고 가치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포고택과의 하룻밤 인연은 먼 훗날까지 의미 있는 만남으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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